향료의 길① 유향

 

아라비아 북서부의 향료무역 거점 울라의 석상(국립중앙박물관 아라비아 특별전).
 
최고 공양물 유향, 아라비아에서 신라까지 건너오다

고급 향은 주로 아라비아, 인도, 베트남 등
남방에서 전래되어 왔다. 그들 외국 향중에서
으뜸은 단연 ‘유향(乳香)’…인도에 수출된 유향은

불교의 동전(東傳)과 함께 2~3세기에는 중국으로
전래됐다. 8세기 이후에는 이슬람 확산과 더불어
해로를 통해 동남아시아로 전해졌다. 당나라에서
유향은 궤양과 장의 병증에 처방되기도 했다.

아랍의 유향이 배에 실려 동남아시아로 가면
오늘의 수마트라인 해상왕국 삼불제(三佛齊) 사람이
중개무역을 하는데, 이 왕국이 향의 중간 집산지…

모든 종교 의례에서 향이 중요하다. 향은 잡 내음을 없애줄 뿐 아니라 신묘한 정신을 불러일으키고 영감을 얻게 해준다. 제도종교뿐 아니라 무속에서도 향은 신을 불러들이는데 매개자이며, 유교 전통의 국가적 의례와 제사에도 향이 쓰인다. 성경에 아기 예수의 탄생을 경하하며 동방박사가 동방에서 베들레헴에 가져온 물건 중에 유향과 몰약이 있다.

석가탑에서 발견된 유향
향 공양은 부처님에게 드리는 최대 공양 중 하나다. 따라서 아무 향이나 쓸 수 없으며, 유향·침향 등 외국에서 들여온 최고급 향을 봉헌했다. 신라의 신앙결사체인 만불향도(萬佛香徒)가 고려까지 전해졌으며, 조선의 향도·황두·상두 전통까지 이어졌다. 고급 향은 주로 아라비아, 인도, 베트남 등 남방에서 전래되어 왔다. 그들 외국 향 중에서 으뜸은 단연 유향(乳香)이었다.

1966년 경주 불국사 석가탑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유향이 발견됐다. 불교 의식에 쓰였을 유향 세 봉이 비단에 쌓인 채 발견되었는데, 유향(儒香)으로 기록된 것이 특이하다. 먼 아라비아에서 신라까지 전해온 귀한 향이다. 이로써 아라비아와 신라의 무역로가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유향 자체가 비싼데다가 먼 거리를 이동해왔으므로 상당히 귀한 향이었기에 석가탑에 봉안한 것이다.

아라비아에서 수천 년 동안 다루어진 진귀한 향인 유향과 몰약은 서양에 비단과 후추가 전파되기 전까지 가장 대표적인 사치품이었다. 기원전 1500년경 아랍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향을 낙타에 실어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지중해 연안으로 운반했다. 이미 기원전 3500년 무렵 이집트와 바빌론의 귀족은 향의 가치에 눈을 떴다. 기원전 1000년 중반부터 헤로도토스, 플리니우스, 프톨레마이오스, 스트라보, 같은 많은 학자들이 향을 언급했다.

아라비아의 향 교역품은 유향나무에서 채취한 유향과 몰약나무에서 채취한 몰약이었다. 이 두 식물종은 아랍 남부와 소말리아 북부의 고지대에 잘 자랐다. 유향과 몰약은 종교적, 세속적으로 모두 주목받았다. 고대에는 거리와 광장, 건물에서 악취가 많았으며, 향은 이를 제어하는 효과가 있었다. 향은 의약품과 방부제, 미용, 성적 용도로 쓰였다. 아라비아반도에서 유럽과 이집트, 근동으로 수출된 유향으로 인해 향 교역로가 형성됐다. 유향 교역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아랍 남서부의 왕국은 기원전 1000년 중엽부터 6세기까지 지중해 연안으로의 향료 교역을 주도하여 부와 권력을 누렸다.

인도에 수출된 유향은 불교의 동전(東傳)과 함께 2~3세기에는 중국으로 전래됐다. 8세기 이후에는 이슬람 확산과 더불어 해로를 통해 동남아시아로 전해졌다. 당나라에서 유향은 궤양과 장의 병증에 처방되기도 했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따르면, 도교에서는 유향을 불로장생의 약으로 간주했다. 이들 유향이 신라에도 전해져서 석가탑에서 발견된 것이다.

오만의 유향나무.


‘훈륙향’으로 불리운 유향
이븐 바투타는 “오만에 유향나무가 있는데 잎사귀가 보드랍다. 잎사귀를 찢으면 우유 같은 액이 방울방울 솟아나다가 곧 아교처럼 굳어버린다. 이 수교(樹膠)가 바로 유향이다”라고 했다. 송의 <제번지>에서는 아랍의 유향이 배에 실려 동남아시아로 가면 오늘의 수마트라인 해상왕국 삼불제(三佛齊, 스리비자야) 사람이 중개무역을 하는데, 이 왕국이 향의 중간 집산지라고 했다. 그가 기록하기를, ‘유향은 훈륙향(薰陸香)이라고도 한다. 대식(大食, 아라비아)의 미르바트(麻拔), 아시시르(施曷), 도파르(奴發)의 깊은 골짜기에서 난다’고 하였다.

유향이 아랍에서 온다는 사실은 중국도 잘 알고 있었다. 송나라 신종 연간(1078~1085)에 조서를 내려 “유향은 무용하므로 진공하는 것을 불허한다”라고 했다. 무역 손실을 크게 입을 정도로 유향이 너무 많이 수입됐던 것이다. 그러나 돈이 되기 때문에 유향의 범람을 막기가 어려웠다. <송사(宋史)>에서는, “유향은 사신이 올 때마다 번번이 떼로 짊어지고 와서는 사사로이 상인과 거래하며 잇속을 챙겼다. 팔지 못한 것은 외부(外府)에 주면 좋은 값을 받을 수 있어 오는 자가 더욱 많았다”고 하였다.

명(明)의 마환은 <영애승람>에서 토산품으로 유향(乳香)이 있는데, 수지(樹脂)로 만든 향이라고 했다. 그 나무는 느릅나무처럼 생겼으나 잎이 뾰족하고 긴데, 이 지역 사람들은 매번 나무를 베어 향을 취해 판매한다. 중국의 보선이 이곳에 와서 황제의 조서를 읽고 상을 내리자 국왕이 우두머리로 하여금 백성들에게 두루 알리게 하니 모두 유향과 혈갈(血竭), 알로에(蘆), 몰약(沒藥), 안식향(安息香), 소합유(蘇合油), 목별자(木鱉子) 따위를 가져와서 모시 실이나 자기 등과 맞바꾸었다고 기록했다.

팍스이슬라미카와 대식국 상인
대식국(大食國)은 고려와 조선도 익히 알고 있던 나라다. 드넓은 바다를 무대로 ‘대식’이라는 천하의 국제무역 상인이 인도양을 휘젓고 인도와 중국, 심지어 고려까지 넘나들었다. 9세기 대식국의 지리학자 이븐 코르다드베흐는 일찍이 ‘실라(신라)’를 지도에 명기했다. 그만큼 아랍은 세계정세에 밝고 구석구석까지 누비는 투철한 상인의 나라이자 항해의 나라였다.

단일 무슬림 사회는 코스모폴리탄적 세계를 탄생시켰으며, 고급 사치품뿐 아니라 일반 소비재가 거래되는 거대 시장을 형성했다. 팍스이슬라미카(Pax Islamica) 아래 상업은 번성했으며 중요 해상과 육로 교통이 발전했다. 이슬람 제국은 로마 제국보다 더 넓은 영토를 차지했는데, 특히 상업적 요소가 중요했다. 이슬람은 인도양을 지나 인도와 중국에 이르는 무역 노선을 경영했다. 육상실크로드와 해상실크로드 두 노선이 국제적으로 운영됐다.

이슬람의 동진과 더불어 동쪽으로 중국과 교류하게 되면서 해양실크로드가 활기를 띠었다. 활력을 얻은 아랍인은 다방면에서 문화적 부흥을 경험했다. 당대의 가장 위대한 문학, 예술, 수학, 천문학이 꽃핀 곳은 로마나 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 파리가 아닌 다마스쿠스, 바그다드, 코르도바 등이었다. 무역로를 따라서 유향이 조선에도 들어왔다. 조선 후기 유희(柳僖)는 <물명고(物名考)>에서, 유향은 대식국에서 나오는데 나무는 소나무와 비슷하고, 도끼로 찍어서 나무의 진액이 엉기기를 기다렸다가 얻는 것이라 하였다. 유향을 다양하게 분류할 정도로 다양한 종류가 조선으로 들어왔다. 수입과정에서부터 엄정하게 가격이 매겨져서 들어왔을 것이다. 심지어 페르시아의 몰약도 들어왔다.

<물명고>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마마향, 천택향, 휸륙향과 같다. 명유(明乳, 유향의 일종)는 둥글고 크며 투명하니, 적유(유향), 간향(유향 가운데 최상등품)과 같다. 병향(甁香)은 병에 거둔 것이다. 작삭(斫削, 유향의 일종)은 잘게 부수기 어려운 것이다. 유탑(乳, 유향의 일종)은 모래와 돌이 섞인 것이다. 흑탑(黑)은 빛깔이 검다. 수습탑(水濕, 유향의 일종)은 물에 담그면 빛깔이 손상되는 것이다. 전말(纏末, 유향의 일종)은 널리 퍼뜨려서 먼지처럼 된 것이다.” 이들 향이 절에서도 쓰였음은 당연하다.

주강현 해양문명사가 [불교신문 37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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