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용주사 삼장보살도

화성 용주사 삼장보살도

 

“정조, 용주사 건립…수륙재 때 걸었던 불화”

삼장보살 옷 화려한 문양 금니
왕실발원 불화 특징 잘 보여줘

18세기 궁중 회화에서 보이는
책가도·도석인물 등장도 주목

용주사서 성대하게 거행되던
사도세자 극락왕생 발원 수륙재
새로운 바람 담아 복원됐으면…

조선시대 정조가 화성 용주사를 완성하고 거행하였던 수륙재에 걸었던 불화 삼장보살도(1790년, 비단에 채색, 174.5×319.5cm).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화면 상단 중앙에 천장보살, 왼쪽에 지장보살, 오른쪽에 지지보살이 배치되어 있다. 삼장보살의 옷에 그려진 화려한 문양과 금니의 사용 등에서 왕실 발원 불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경기 화성 용주사는 조선 후기에 새로운 문화의 부흥을 일으킨 정조(1752~ 1800)가 아버지 사도세자(1735~1762)의 명복을 빌기 위해 건립한 사찰이다. 정조는 1789년 사도세자의 능을 화성으로 옮기고, 1790년에 능침사찰로 용주사를 창건했다. 용주사는 조선 왕실에서 직접 창건한 유례없는 사찰로, 사찰의 구조와 봉안된 성보문화재는 당대 왕실문화를 그대로 반영했다는 특색이 있다.

이번 소개할 성보는 삼장보살도(1790년 조성,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정조가 용주사를 완성하고 거행하였던 수륙재(水陸齋)에 걸었던 불화이다. 수륙재란 물과 육지에 떠도는 외로운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불법(佛法)을 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의식이다. 수륙재는 중국 남북조 시기 양나라 무제(武帝)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왕실의 천도재, 가뭄과 기근 소멸 등을 기원하기 위해 거행됐다.

971년 고려 광종 22년에 갈양사(葛陽寺)에서 수륙재가 개최됐다는 기록이 있다. 혜거국사의 건의로 개최됐는데, 광종은 갈양사에 많은 재화와 땅을 지급하여 혜거국사가 지속적으로 도량을 베풀어 국가를 위한 추복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

갈양사는 용주사의 전신으로 알려져 있다. 1917년 이능화가 지은 <조선불교총보(朝鮮佛敎總報)>에 실린 혜거국사비(惠居國師碑) 내용에 의하면, 갈양사는 854년(문성왕16)에 염거국사(廉巨國師(?~844)가 창건하였으며, 970년(광종21)에 혜거국사(惠居國師, 899~974)가 중건했던 사찰이다. 이 비는 남아 있지 않으며, 현재의 용주사와 갈양사의 관계, 혜거국사비의 설립연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의 여러 이견들이 있으며, 앞으로 연구할 과제이다.

‘금불’ 봉안하며 무차대회 개최
현재의 용주사 모습은 1790년 정조 때 완성됐다. 정조는 용주사를 완성하고, 마지막으로 1790년 9월 금불(金佛)을 봉안하면서 무차대회(無遮大會)를 개최했다. 이 무차대회는 망자의 천도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수륙재라 할 수 있다. ‘금불’은 대웅보전에 봉안된 ‘목조삼세불상’이다. 중앙의 석가모니불과 향우측의 약사불, 향좌측의 아미타불로 구성되어 있다.

용주사에서 무차대회가 개최된 날은 ‘목조삼세불상’이 봉안되는 1790년 9월30일이다. 이때 용주사에서 성대하게 치러진 무차대회 모습은 이덕무(李德懋)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잘 나타나 있다. 용주사를 창건한 후 정조를 비롯한 문무백관 등이 사찰에 가서 금불이 완성된 날 무차대회를 열었으며, 이 때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이 지은 ‘화산용주사상량문(花山龍珠寺上樑文)’을 읽었다.

고려와 조선 전기까지 왕실에서 거행하는 국행수륙재가 크게 유행했지만, 조선 후기에는 왕실 수륙재는 중지되고, 사찰과 개인이 개최하는 수륙재가 시행됐다. 용주사 수륙재는 왕실에서 직접 건립한 용주사에서, 왕실에서 거행하는 수륙재가 개최된 것으로 그 의의가 더욱 크다.

천상 지상 지하…여러 신중 초청
이 때 무차대회 의식을 거행하기 위한 불화로 ‘삼장보살도’와 ‘감로도’가 조성됐다. 따라서 ‘삼장보살도’와 ‘감로도’는 1790년 용주사 무차대회의 성격과 모습을 잘 보여주는 불화이다. 무차대회를 지낼 때 단을 차리고 불화를 봉안했다면, 대웅보전 내 후불벽을 상단으로 하고 중단에는 ‘삼장보살도’, 하단에는 ‘감로도’를 걸고 의식을 거행했거나 대웅보전 밖에 괘불도를 걸고 좌우에는 ‘삼장보살도’와 ‘감로도’를 걸고 의식을 했을지도 모른다.

‘용주사 삼장보살도’는 1790년 조성된 불화로, 화기에 의하면 황덕순과 윤흥신이 감독했다고 하는데, 두 사람 모두 정조의 명을 받들어 용주사 불사에 관여했던 주요 인물들이다.

가로 324cm, 세로 188cm의 가로로 긴 화폭에 삼장보살과 33명의 권속들을 함께 그린 불화이다. ‘삼장보살도’의 주인공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천상세계의 교주인 천장보살(天藏菩薩), 지상세계의 교주 지지보살(持地菩薩), 명부세계의 교주인 지장보살(地藏菩薩)이다.

수륙재를 행할 때는 먼저 도량을 청정하게 한 후에 불교의 여러 신중들을 모신다. 천상과 지상, 그리고 지하 불교의 모든 신중들을 불러 모시고, 공양을 드린 후에야 불교의 삼보를 청하여 공양하는 의식을 행하는데 이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삼장보살도’이다.

이 불화의 구성은 화면 중앙에는 천장보살을, 향우측에는 지지보살을, 향좌측에는 지장보살이 배치되어 있다. 이 세 보살은 나뭇결 문양이 있는 긴 대좌 위에 나란히 앉아있으며, 각 보살 주변으로는 관련 여러 신중들이 함께 그려져 있다.

천장보살은 높고 화려한 보관을 쓰고, 두 손으로 경책을 들고 있다. 천장보살의 협시로는 소매가 넓은 옷을 입은 천신의 모습으로 두 보살이 양쪽에 서 있다. 협시보살은 앞을 보고 있으며, 보살의 양쪽 옆에는 2위의 천녀가 과일, 책, 정병 등이 놓인 접시를 들고 몸을 틀어 협시보살을 향해 서 있다. 천장보살의 대좌 위 좌우에는 하얀 부채를 든 선인과 영지 등 풀이 담긴 바구니를 든 선인, 어깨에 나뭇잎을 두른 선인, 복숭아를 든 여러 선인들이 둘러싸고 있다.

지지보살은 천장보살과 마찬가지로 보관을 쓴 모습이다. 오른손은 가슴 부근으로 들어 올리고, 왼손에는 경책을 들고 있다. 협시로는 용관(龍冠)을 쓰고 두 손으로 칼을 잡은 용왕(향우측)과 두 손에 긴 칼을 잡고 있는 용왕(향좌측)이 앞을 향해 서 있다. 협시로 신장상 중에서 용왕을 채택하여 부각시켰다. 지지보살 옆에는 무기를 들거나 합장한 호법신들이 배치됐다.

두건을 쓴 지장보살은 오른손은 가슴 위로 들어 손가락을 맞대고, 왼손은 가부좌한 오른발 위에 올렸다. 협시로는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이 합장하고 서 있으며, 좌우로 10위의 시왕과 판관 등이 지장보살을 둘러싸고 서 있다.

당대 최고 화원·화승들이 조성
용주사 창건 시 조성된 불화들은 당대 최고의 화원과 화승들이 참여했는데, ‘삼장보살도’도 마찬가지이다. 민관(旻官)이 수화승이었으며, 돈평(頓平)·학인(覺仁)·처성(處性)스님 등이 함께 조성했다. 민관스님은 경기 지역에서 활약한 화승으로, 용주사 불사 때 ‘삼장보살도’ 뿐 아니라 용주사 대웅전의 단청 도편수(都片手)로도 참여했다. 1794~1796년에는 화성성역(華城城役)에서 참여하는 등 국가에서 장인으로 인정받았던 인물이다.

이 불화는 밝은 다홍색과 짙은 녹색과 황토색 등을 적절하게 배열하였고, 화면을 크게 상단과 하단으로 나누었다. 상단의 세 보살은 좌상이지만 늘씬한 모습이며, 하단에 서 있는 협시와 주변 인물들은 얼굴에 비하여 신체가 유난히 짧은 모습이다. 그러나 협시들은 정면을, 그 주변 인물은 보살을 향하게 하여 화면의 지루함을 덜어주도록 표현하는 등 적절한 배치가 돋보인다. 삼장보살의 옷에 그려진 화려한 문양과 금니의 사용 등에서 왕실 발원 불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18세기 궁중 회화의 책가도(冊架圖)나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畫)에 보이는 인물들이 ‘삼장보살도’에 등장하는 것이 주목된다. 이와 같은 궁중 회화의 모티프를 불화에서 수용한 것은 수화승 민관스님이 경기지역 출신의 역량 있는 작가라는 점과 연관되어 보인다.

‘삼장보살도’는 한동안 명맥이 끊겼던 왕실에서 거행했던 수륙재에 사용했던 불화라는데 더욱 그 가치가 크다. 용주사에서 사도세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성대하게 치러졌던 수륙재가 하루속히 복원되길 기대해본다. 다시 열린 수륙재엔 새로운 기원과 바람이 담길 것이다.

이분희 문화재전문위원·불교중앙박물관 팀장 [불교신문369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