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사막길 향해서 ④ 천산남로의 보물 키질 석굴

 

석굴의 오랜 흔적을 따라 남겨진 시대의 변화들

 

석굴 사이에 비어있는 공간이 대형 불상이 있던 자리다.


키질 석굴의 대상굴(큰 불상)은 지금은 사라졌다. 흔적만이 그 굴의 위용을 보여준다.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대불은 사진이나마 남아 있지만, 세월에 사라진 큰 불입상들은 슬픔을 느끼게 한다.

키질 석굴 불상은 감실(불상이 들어가는 방)이나 받침에 봉안하거나 굴 앞쪽에 부조 형식으로 모시고 있다. 석굴의 본실의 천정은 궁륭형, 말각조정형, 복두형, 아치형 등 다양한 형식으로 나타난다.

승방굴(僧房窟) 형식은 스님들이 수행하고 생활하는 주거의 공간이다. 일반적으로 전실, 방, 창고, 통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방 중에는 제40굴과 같이 난방용 화로(火爐)가 설치되어 있고 창이 나 있는 예도 있다. 이 형식은 주거 공간이기 때문에 난방과 일조, 조망 등이 중요시됐다. 통로는 좁고 길며 통로 끝에 작은 공간인 창고가 마련되어 있다. 통로의 좌측 혹은 우측에는 방이 있다. 그리고 대체로 이 석굴 앞에는 목조 형태의 전실이 마련되었다.

승방굴은 수행과 생활이 중심이기에 벽화는 거의 없다. 승방굴 형식은 통로의 규모, 작은방의 있고 없음 등에 따라 구조적 변화가 있거나, 개조하여 다른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승방굴 형식의 수량은 석굴 수의 4분의1 정도이다.

위쪽과 옆쪽에 있는 굴들이 승방굴이다.


세 번의 시기에 걸친 석굴의 변화
키질 석굴의 변화는 3시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기는 골짜기 서쪽인 곡서구로 집중되어 있는데 석굴을 파기 시작했던 초창기로 3~4세기경 조성된 석굴이다. 예배굴은 중심주굴과 대상굴이 중심이다. 중심주굴로 제13굴, 제38굴이 대표적이며, 대상굴로는 제47굴이 있다. 이 시기의 승방굴은 불상이나 벽화가 없는 굴로 제6굴, 제80굴이 속한다. 1기의 석굴은 구조가 간결한 것이 특징이며, 불상과 중심 벽화의 주제는 석가불, 미륵불, 열반불이 중심이다. 주변 벽화는 마름모형 문양 안에 설화도, 인연도, 불전도 등이 그려졌다.

2기는 4세기에서 5세기 전반기로 예배굴과 승방굴 등이 결합된 복합한 형식의 굴이 등장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도 예배굴은 중심주굴과 대상굴이다. 중심굴은 1기와 동일하지만 본실이 후실보다 폭이 넓은 것이 특징적이며 제17굴, 제104굴, 제171굴이 대표적이다.

대상굴도 1기와 거의 변화가 없으며 제77굴, 제139굴이 이 시기에 속한다. 승방굴도 1기에서 조금 변화되어 제17굴과 같은 대형 승방굴이 등장하고 제35굴, 제36굴과 같은 상하 2층의 굴이 나타나고 있다. 강당의 용도인 방형굴이 등장하는 시기로 전실 벽면 중앙에 문이 있는 형식과 한쪽에 문, 다른 쪽은 창문이 있는 형식이 특징적이다. 제14굴, 제39굴, 제92굴, 제118굴 등이 이에 속한다.

키질석굴 48굴 천정화. 푸른색 안료로 채색돼 있다.


2기의 대표적인 특징은 복합형굴의 유행이다. 제171, 172굴은 예배굴과 승방굴이 결합됐고, 제2~4굴, 제38~40굴, 제103~105굴은 예배굴과 강당굴, 승방굴이 결합됐으며, 제222~223굴은 강당굴과 승방굴이 결합된 형식이다. 제96~98굴은 복수의 예배굴과 강당굴이 결합되고, 제96~105굴은 복수의 예배굴과 강당굴, 승방굴이 결합된 형식이다. 이 시기의 석굴은 복합적인 형식으로 발전하고, 구조가 복잡해지고 있다. 정벽 좌우 통로의 입구에 아치형 감실형 장식이 등장하며, 복두형, 돔형, 평형 등의 다양한 천정 형식이 나타나고 있다. 채소와 벽화는 도안화되는 경향이 강하다.

3기는 대부분 곡동구에 집중되고 있는데 석굴 구조, 채소, 벽화 등이 간략화되는 경향이 있다.

중심 주굴은 제8굴, 제107굴, 제180굴, 제197굴, 제201굴 등이 있다. 대상굴은 제70굴과 제148굴로 중심주굴 형식에 후실이 없고 본실의 정벽에 대불입상이 봉안된다. 승방굴은 2기의 비슷한 편이며 장식적인 경향을 보인다. 3기에는 승방굴의 문과 통로 부분을 예배굴로 변경한 장방형의 평면이 나타나고 있다. 이 형식은 제189굴의 통로와 제190굴이 대표적이며, 감실에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천불도 벽화가 주로 그려졌다.

3기의 복합형 굴은 제181~191굴로 중심주굴, 승방굴, 강당굴 등이 결합되어 있다. 3기의 특징은 구조, 채소, 벽화 등이 모두 간략화되어있다는 점이다. 소형굴이 나타나고 새로운 형식의 대상굴도 등장하고 있다. 본존불상은 입상보다 좌상이 많고, 벽화는 천불도가 유행했으며, 연주문 장식이 나타나고 있다.

키질 석굴은 푸른색 안료인 라피스라줄리(청금석)으로 파란 채색이 되어 있다. 그래서 푸른석굴로도 불린다.

 

쿠무툴라 석굴.


키질 석굴 다음가는 ‘쿠무툴라’
키질 석굴 다음으로 유명세를 가진 쿠무툴라(Kumutula) 석굴은 한자로 고목토랍(庫木土拉)으로 표기하며 신장 위구르 자치구 쿠차(庫車) 현에 있는 석굴 사원이다. 쿠차현 성에서 서남쪽으로 약 30km 떨어진 무자트 강 하류를 지나 초르타크(確爾達格) 산 입구의 동쪽 절벽에 위치한 이곳은 쿠차에서 키질 석굴 다음으로 많은 석굴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현재 알려진 석굴은 총 122개소이며, 굴의 형태가 완전하게 남아 있는 석굴은 60여 개다.

쿠무툴라 석굴은 키질 석굴이나 키질가하 석굴보다 늦은 5~10세기 사이에 조성됐다. 무자라트 강이 구릉 지대로부터 평지로 흘러들어오는 곳의 동쪽에 하류로부터 제1, 제2의 계곡이 있는데 이곳에 개설된 석굴 사원의 벽화는 완전한 키질 양식을 보인다.

그러나 7세기 이후 당나라의 직접 지배를 받은 이후로는 당나라 불교 미술의 주요 주제인 변상도와 아미타삼존, 약사삼존 등의 벽화가 등장해 둔황에 직결되어 있어 8세기 이후 동아시아에 널리 행해진 무늬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아프사라스(飛天) 동굴의 미륵정토도와 같이 당나라 회화와는 다소 느낌을 달리하는 혼합양식이 보이는 석굴도 있어서, 표현이 꼭 일정한 것만은 아니다. 제3 계곡에는 한문의 기록들이 많으며, 특히 9세기 후반의 연대나 승려의 이름이 많이 발견되어 이 석굴의 최성기를 시사해준다.

쿠무툴라 석굴 안쪽에 위치한 제68~72호까지의 다섯 석굴은 하나의 출입구로 들어가 복도로 연결된 동굴로 ‘오련동’으로 명명할 만큼 쿠무툴라 석굴만의 특징적인 구조적 특성을 갖고 있다. 네 개 석굴은 각기 본존을 모시는 예배굴이고, 제69호 굴은 승려들이 모여 법회를 보던 법당굴이다. 쿠무툴라 석굴은 특히 키질 석굴에는 나타나지 않는 천불도, 대승 불교의 각 경전을 표현하고 있는 경변상도 등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당삼채(당나라에서 세 가지 색깔로 칠한 도자기)의 영향을 받아 불상이나 보살상을 채색한 흔적도 나타나고 있다.

각 시대별 흔적에 따라 키질 석굴은 상당히 오랜 기간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천왕의 호국신앙 같은 중요한 흔적도 동아시아로 향했다.

문무왕 동국대 와이즈캠퍼스 외래교수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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