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포석정지 사적1호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배동 454-3
경주 남산 서쪽 계곡에 있는 신라시대 연회장소로, 젊은 화랑들이 풍류를 즐기며 기상을 배우던 곳이다. 포석정지(鮑石亭址)는 경주 남산(南山) 서쪽 계곡의 포석계(鮑石溪)의 계류(溪流)가에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처용랑(處容郞) 망해사조(望海寺條)에 보면 「헌강왕(憲康王)이 포석금(鮑石今)에 놀러나와 남산신(南山神)의 춤을 보고 왕이 따라 추었는데 이 춤을 어무상심(御舞祥審) 또는 어무산신(御舞山神)이라 했다」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경애왕(景哀王) 4년(927) 11월에 왕이 포석정(鮑石亭)에 나가서 잔치를 하고 놀다가 후백제 견훤(甄萱)의 기습을 받아 왕은 죽고 왕비와 신하들이 모두 함몰되는 비극의 기사가 실려있다. 중국의 명필 왕희지(王羲之)는 친구들과 함께 물 위에 술잔을 띄워 술잔이 자기 앞에 오는 동안 시를 읊어야 하며 시를 짓지 못하면 벌로 술 3잔을 마시는 잔치인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하였는데, 포석정(鮑石亭)은 이를 본따서 만들었다. 만들어진 때는 확실하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로 보이며 정자는 없고 풍류를 즐기던 물길만이 남아있다. 물길은 22m이며 높낮이의 차가 5.9㎝이다. 좌우로 꺾어지거나 굽이치게 한 구조에서 나타나는 물길의 오묘한 흐름은, 뱅뱅돌기도 하고 물의 양이나 띄우는 잔의 형태, 잔 속에 담긴 술의 양에 따라 잔이 흐르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