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선정왕후(宣正王后) 유씨(劉氏)
남편 왕위계승 자격 줬지만 쿠데타로 폐위
선정왕후(宣正王后) 유씨(劉氏, 생몰년 미상)는 목종의 제1비이다. 친아버지는 종친인 홍덕원군(弘德院君) 왕규(王圭), 양아버지는 성종이다. 어머니 문덕왕후(文德王后)가 처음 홍덕원군과 혼인했고, 뒤에 성종과 재혼하였다. 재혼녀가 왕비가 되었다는 점은 매우 놀랍다. 조선시대 영조는 과부와 혼인할 수 없어 66세에 15세의 정순왕후와 혼인하지 않았던가! 이는 고려와 조선의 성에 대한 관념 차이를 명백히 보여준다.
당시 왕궁에는 성종의 누이인 천추태후(千秋太后)의 아들 왕송(王訟, 뒤에 목종)도 있었다. 981년 성종 즉위 시 왕송(王訟)은 우리 나이로 두 살이었고, 선정왕후(宣正王后)의 나이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둘이 혼인한 것을 보면, 비슷하거나 혹은 조금 연상이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둘은 거의 오누이처럼 함께 컸다 할 수 있다. 997년 성종이 죽고 목종이 즉위하였다. 목종은 선정왕후와 혼인해 성종의 사위 자격으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성종의 친딸이 아니었지만 양딸도 친딸과 다름없었음을 알 수 있다. 선정왕후는 동성혼을 피해 할머니 태조비 신명순성왕태후(神明順成王太后)의 성씨인 충주 유씨(忠州劉氏)를 칭하였다. 목종과 혼인한 뒤 그녀의 삶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성년인 남편을 제치고 시어머니인 천추태후가 섭정을 했으며, 남편은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고려사에 보면 목종이 ‘성품이 침착하고 굳세어 어려서부터 임금의 도량이 있었지만 활쏘기와 말타기를 잘 하고 술을 즐기며 사냥을 좋아하여 정무에 유의하지 않았다’고 되어 있다. 또 남색을 즐겼다는 이야기도 나오니 부부간의 금실이 좋았을 것 같지도 않다. 둘 사이에는 자식도 없다. 목종에게는 그녀 외에 후궁이 한 명 있었다. 요석택(邀石宅)에 거주하는 궁인 김씨로, 그녀의 집안은 잘 알 수 없다. 어느 때 경주 출신의 융대(融大)라는 사람이 양민 500명을 노비로 만들어 김씨와 평장사 한인경, 시랑(侍郞) 김낙 등에게 뇌물로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볼 때 그녀가 왕의 총애를 배경으로 정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한인경 등은 뒤에 쿠데타를 일으켜 목종을 몰아내고 현종 옹립에 공을 세운 사람들이다. 목종이 이 사실을 알고 궁인 김씨 등을 처벌하기는 했지만, 목종에 대한 반대 세력이 이렇게 공공연히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재위 12년 되던 해인 1009년 쿠데타로 목종이 폐위되었다. 목종은 천추태후를 모시고 충주로 가던 도중 시해되었다. 선정왕후(宣正王后)에 대한 이야기는 사료에 전혀 보이지 않으나 그녀 역시 목종과 함께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후에 시호를 선정왕후(宣正王后)라 하고 목종 사당에 합사하였으며, 뒤에 여러 번 시호가 추가되었다. 선정왕후의 삶은 고려시대의 재혼, 가계 계승에 대해 여러 가지 점을 시사한다. 그녀는 모계혈통이 중시되던 고려시대에 남편에게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였다. 그러나 개인적인 삶은 그다지 행복했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권순형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출처; 이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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