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속에 ‘환화’로 나투다
율암찬의(栗庵贊儀)
這箇龍象幻容云
是栗庵和尙師之庵也
栗以所建師之儀兮
贊之孰能欲眞面
月色又水聲一笑
無言坐庵空義亦空
空裡現形
幻化住煥乎
저 하나의 용상은 허깨비 모습이라 하고
이는 율암화상의 암자이다.
율은 지켜온 스님의 위의이다.
찬으로 무엇을 하고자하는 진면목인가
돌! 달빛과 물소리 함께 웃고
말없이 암자에 앉아있으니 공한 뜻 또한 공하다.
공속에 나툰 모습
환화공신이 진영으로 머문다.
율암스님 진영은 20세기 초 유행한 사진을 보고 형상을 옮겨 그리는 기법으로 제작됐다. 이런 이유로 진영 속 율암스님의 모습은 실물을 보는 듯 사실적이며 배경은 인물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어둡게 처리했다. 1929년 12월에 정사영진당(精舍永眞堂)에서 금명보정(錦溟寶鼎, 1861~1930)스님이 율암찬의(栗庵贊儀, 1867~1929)스님을 위해 지은 영찬이다. 이 찬문은 금명스님이 입적하기 3개월 전에 쓴 것으로 현재 송광사에 모셔진 율암스님 진영 상단에는 스님의 친필로 적은 ‘율암대선사진찬(栗庵大禪師眞贊)’이 그대로 붙어있다. <조계고승전(曹溪高僧傳)>에 의하면 1929년 4월에 율암스님이 입적하고 문인(門人)이 방장실에 스님의 진영을 모셨다고 한다.
금명스님의 찬문은 이 진영을 보고 지은 듯하다. 진영을 용상환용(龍象幻容)이라 이르며 이를 율암스님의 암자라 칭하고, 정면을 응시하는 스님을 말없이 암자에 있는 형상처럼 공(空)하고 공해 보이지만 결국 공 가운데 불빛을 머금은 환화(幻化)로 세상에 그 모습을 나툰다는 표현은 율암스님 진영에 관한 묘사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율암스님과 금명스님은 원응계정(圓應戒定), 성호(誠浩) 경운원기(擎雲元奇), 화일(化一), 육파기운(六波奇雲), 청봉세영(淸峯世英)과 더불어 칠처고붕(七處高朋)이라 일컬을 정도로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한편 금명스님은 영찬 외에도
“여수 가산은 옛날 율촌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사문이 됐다. 길거리 술통으로 교화해 마치니, 빠른 발로 내달린 세상을 놀라게 한 혼이다(麗水佳山古栗村 魯齊一變作沙門 衢樽滿醉化儀畢 迅足驚世魂)”
라는 율암스님에 관한 찬송(贊頌)을 남겼다. 여수 율촌 출신의 사문은 율암스님으로, 선학들을 앞지를 정도로 뛰어났으며(足後發前至者), 술로 다른 이를 취하게 해 세속에서 벗어나 진리에 들어가는 교화(入眞出俗 滿醉十千斗之衢樽)를 펼치기도 했다. 이 찬송은 금명스님의 또 다른 저서인 <조계고승전>에서 율암스님의 행장으로 풀이되어 오늘날까지 전한다.
해제=조계종 문화부장 정안스님, 설명=문화부 문화재팀장 이용윤 [불교신문32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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