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이어 조용히 해인사 중창
완허장섭(玩虛仗涉)
輕世繁華 依師出家
雖究文字經 亦不務得貪多
因人對事主柔 何處與我有敵
侍師三十年 常自察常自
生不離師側 死亦然
一片影 掛於堂前
세상 부귀영화 가벼이 하고 스님을 의지해 출가했다.
비록 문자 경전을 연구하나 또한 많은 것을 얻으려 힘쓰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킬 때는 주인으로 겸손하며 어느 곳이든 나의 적이 있다 하였다.
스님을 모신지 삼십년 항상 스스로를 관찰하고 살펴
살아서는 스님의 곁을 떠나지 않았고 죽어서도 그랬다.
일편의 진영을 당전에 걸어 둔다.
남천한규(南泉翰圭, 1868~1936)스님이 완허장섭(玩虛仗涉, 1849~ 1900)스님에게 올린 영찬이다. 1965년 5월에 환경재수(幻鏡在修, 1887〜1983)스님은 남천스님의 영찬을 해인사 홍제암에 모셔진 완허스님의 진영에 옮겨 기록했다. 현재 이 영찬은 남천스님의 유고집인 <남천한규선사문집>에 전한다. 완허스님은 18세기 후반 해인사에 정착해 20세기 전반까지 상봉정원(霜峰淨源, 1627~1709)스님의 후손으로, 해봉유기-영허찬혜(永虛贊慧)-운곡언보(雲谷言輔)-호운지선(浩雲志旋)-예봉평신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계승했다. 예봉스님이 평생 교학에 힘쓰고 수행에 주력하면서 토지와 재산을 해인사와 산내암자에 헌납해 사찰운영을 도왔듯이 30년 동안 스승을 모신 완허스님 역시 그 가르침을 따라 토지와 재산을 내어 해인사의 중창을 도왔다.
찬자인 남천스님은 완허스님의 제자이며, 서자(書者)인 환경스님은 예봉스님의 다른 제자인 우운선주(友雲善舟)스님의 손상좌이다. 예봉스님이 검박하고 올곧은 삶을 추구하였듯 환경스님의 삶도 그러했다.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던 남천스님은 스승인 환경스님과 옹사인 예봉평신을 위해 영찬과 행장을 지어 자신의 문중만의 승풍(僧風)을 후세에 전하고자 했다. 특히 예봉스님의 영찬은 형이상학적 불교사상이나 미학적 담론보다는 자신의 눈으로 지켜본 스님의 소박한 삶과 투철한 수행관, 그리고 사찰을 위해 헌신했던 모습을 이야기하듯 담담하게 표현했다.
해제=조계종 문화부장 정안스님 설명=문화부 문화재팀장 이용윤 [불교신문32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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