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당의 무신도 국가민속문화유산17호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통일로18가길 20(무악동 산2-12)
국사당(國師堂)에 있는 무속신을 그린 그림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원래의 국사당(國師堂)은 남산 팔각정 자리에 있었으나 1925년 일본인들이 남산에 조선신궁(朝鮮神宮)을 건립하게 되자 해체하여 지금의 자리에 복원한 것이라 한다. 국사당(國師堂) 내부로 들어서면 벽면 가득히 그림이 걸려 있는데, 무속(巫俗) 신앙에서 모시는 신을 그려 놓았다. 비단 바탕에 채색한 21점의 그림과 앞서 간 무녀의 영혼의 상징물로 여겨지는 명두(明斗) 7점이 있다. 피리를 불며 줄을 타고 있는 창부씨(唱夫氏) 또는 광대씨(廣大氏)라고도 한다, 칼을 짚고 앉아있는 별상(別上)님, 산신, 최영 장군, 출산을 관여하는 삼불제석, 민간신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칠성님, 용과 함께 그려진 용왕대신, 고깔을 쓴 무학대사(無學大師), 고려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화상(懶翁和尙), 조선 태조를 그린 아태조, 두 소년을 앞세우고 앉아있는 호귀아씨 등 여러 점이 걸려있다. 이들 위에는 더러 명두가 걸려있는데, 이는 둥근 모양의 놋쇠 제품으로 고대의 청동거울을 연상시키는 무녀 계승의 증표이다.
아태조 국가민속문화유산17-1호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통일로18가길 20(무악동 산2-12)
국사당(國師堂)에 있는 무속신 그림이다. 인왕산에 위치한 국사당(國師堂)은 무속신앙에서 신을 모신 집으로 굿판을 벌이기 쉽도록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산 속에 건립된 ‘굿당’에 속한다. 이 건물 내부로 들어서면 각종 무속신 그림이 화려하게 채색되어 벽면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로 비단 바탕에 남자의 모습을 그렸는데 어깨가 떡 벌어진 당당한 모습이다. 크고 네모난 얼굴형에 날카로운 눈매와 뭉툭한 코가 표현되었다. 머리에는 관을 쓰고 양어깨와 앞가슴에 용무늬가 그려진 곤룡포를 입고 있다. 한손은 오른쪽 무릎 위에 올려놓고 다른 한손은 가슴 앞까지 들어올린 자세로 옥좌에 앉아있다. 이 그림은 여느 당집에서 볼 수 있는 무신도에 비해 격이 있는 작품으로 보여진다. 전주의 경기전(慶基殿)에 있는 조선 태조 영정과 흡사한데, 전하는 말에 의하면 경기전 영정을 본떠서 그린 것이라 한다. 아태조(我太祖, 세로 104cm, 가로 60cm)같은 규격의 아태조(我太祖) 그림이 두장 덧걸린 뒤에 다시 전주(全州) 경기전(慶基殿) 영정(影幀)의 사진판 같은 잘 알려진 어깨가 떡 벌어진 이태조(李太祖) 영정(세로 40, 가로 32cm)이 덧걸려 있다.
강씨부인 국가민속문화유산17-2호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통일로18가길 20(무악동 산2-12)
비단 바탕에 채색한 것인데 조선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 康氏)를 그린 것으로 짐작되지만 고려 공민왕의 왕후였던 원나라의 노국공주(魯國公主)일 가능성도 있다. 이 그림은 실존했던 인물이 사후에 무속신으로 섬겨지는 예를 보여주는 것으로 여느 당집에서 볼 수 있는 무신도에 비해 격이 있는 작품으로 보여진다.
호구아씨 국가민속문화유산17-3호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통일로18가길 20(무악동 산2-12)
비단 바탕에 채색하여 호귀아씨를 그린 그림으로 호귀아씨는 전염병의 일종인 홍역을 관장하던 신이다. 어린 여자아이 둘을 앞에 세우고 뒷편 큰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머리에 화려한 관을 쓰고 활옷(대례나 혼례식 때 신부가 입던 옷)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다. 부드러운 얼굴 표정에 큰 귀가 인상적이다.
용왕대신 국가민속문화유산17-4호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통일로18가길 20(무악동 산2-12)
아랫부분에는 파도가 표현되고 그 위에 용왕대신(龍王大神)이 근엄한 표정으로 용을 누르듯 타고 있는 모습이다. 머리에는 벙거지모양의 관을 쓰고 소매가 넓은 옷을 입고있는데 푸른색과 자주색의 조화가 아름답다. 용의 머리는 앞에서 눌려져 위를 향하고, 꼬리는 용왕대신의 머리 뒤에서 들려있다. 여백에는 구름무늬인 듯한 표현이 되어 있어 전지전능한 신을 더욱 신비롭게 감싸고 있다.
산신님 국가민속문화유산17-5호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통일로18가길 20(무악동 산2-12)
부채를 든 한 노인이 호랑이를 타고 앉아있다. 그 뒤에는 한 명의 동자가 신선이 사는 나라에 있다는 복숭아(仙桃)를 들고 있다. 무섭고 다가가기 힘든 존재인 호랑이를 편안한 자세로 타고 앉아 여유를 부릴 수 있다는 구상이 전지전능한 신격을 드러내고 있는 듯 하다.
창부씨 국가민속문화유산17-6호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통일로18가길 20(무악동 산2-12)
액을 막아주는 신인 창부씨(唱夫氏)를 그린 것이다. 피리를 불며 줄을 타고 있는 모습으로 공중에 떠있는 듯한 자세가 기묘하게 표현되어 마치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흥겹게도 보인다. 머리에는 갓모양의 모자를 썼는데 턱에 묶는 끈이 구슬로 되어있고, 인물의 움직임에 맞추어 옷주름과 허리띠의 방향도 잘 표현되었다.
신장님 국가민속문화유산17-7호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통일로18가길 20(무악동 산2-12)
인왕산 국사당(國師堂) 벽에 걸려 있는 무속신 그림이다. 국사당(國師堂)은 민간신앙에서 신을 모셔놓은 당집으로, 요란한 굿판을 벌이기 쉽도록 민가에서 멀리 떨어진 산 속에 마련되어 있다.
무학대사 국가민속문화유산17-8호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통일로18가길 20(무악동 산2-12)
건물내부에 나란히 걸려 있는 여러 무속신 중 ‘아태조’상 왼쪽에 있다. 머리에 고깔을 쓴 무학대사(無學大師)의 모습을 비단 위에 채색하였다. 고깔은 전체적으로 둥글게 테두리가 있고 얼굴이 보일 수 있게 삼각형 모양으로 접혀 있다. 굵고 짙은 눈썹 아래로 눈꼬리가 위로 올라 간 눈이 가늘게 그려졌다. 콧잔등과 입주변에 거무스름하게 수염이 있는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고 손은 왼쪽으로 비스듬히 기운 듯 합장을 하고 있다. 국사당이 남산에서 일제에 의해 이전될 때 이곳 인왕산을 택한 이유가 조선 태조와 무학대사(無學大師)가 기도하던 곳이기 때문이고, 국사당(國師當)이란 명칭이 태조때의 왕사(王師)였던 무학대사(無學大師)를 모시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지는 것을 보면, 그의 높은 불도를 선망한 백성들에 의해 믿고 섬기는 무속신 중의 하나가 된 듯하다.
곽곽선생 국가민속문화유산17-9호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통일로18가길 20(무악동 산2-12)
곽곽선생은 중국 동진(東晋)시대에 역술에 능하였던 학자 곽박(郭璞)이 무속인들에 의해 조상신으로 모셔진 것인데, 국사당의 곽곽선생은 맹인풀이의 대상신으로 주로 안질환자들이 신봉하였다고 한다. 가로 57㎝, 세로 93㎝ 크기의 그림으로 곽곽선생과 그 부인으로 보이는 여인이 한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다. 왼쪽에 앉은 곽곽선생은 중앙에 동그란 무늬가 있는 두건을 쓰고 있는데, 그 두건은 어깨까지 내려와 있다. 청색의 도포를 입었고 가슴에 띠를 묶었다. 의자 손잡이 아랫부분으로 팔이 내려와 있으며, 발은 여덟 팔(八)자로 벌어져 있다. 오른쪽에 있는 여인은 머리에 족두리를 쓰고 비녀를 꽂았다. 양손은 소매사이로 넣어 보이지 않고 곽곽선생과 한 의자에 앉긴 했지만 약간 뒤로 물러나 있는 듯이 보인다.
단군 국가민속문화유산17-10호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통일로18가길 20(무악동 산2-12)
인왕산 국사당(國師堂)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이다. 국사당(國師堂)은 민간신앙에서 무속신을 모셔놓은 당집으로, 요란한 굿판을 벌이기 쉽도록 민가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에 마련되어 있다. 내부에는 화려하게 채색된 각종 무신도가 걸려있다. 세로 32㎝, 가로 24㎝의 나무액자에 넣어진 단군(檀君)상은 내부 정면의 왼쪽 구석에 걸려 있다. 목판에 ‘단군천신’이란 글자가 있는 이 그림은 국사당을 이곳으로 옮기기 전인 남산에 있을 때부터 존재한 것이다.
삼불제석 국가민속문화유산17-11호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통일로18가길 20(무악동 산2-12)
제석천은 원래 불법을 지키며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수호신이다. 민간신앙에서는 불교에서의 고유의 역할 대신에 가신의 하나로서 출산을 주관하는 삼신(三神)의 의미로 변화되어 섬겨지는데 삼불제석(三佛帝釋)으로도 불리워진다. 제석은 산신(産神), 수신(壽神), 농신(農神) 등의 성격을 갖는다. 귀한집의 무남독녀 당금애기가 중의 아들 3형제를 낳은 것이 삼불제석(三佛帝釋)이 되었다고 전한다. 승복을 입고 고깔을 쓴 3명의 제석신들이 연꽃 위에 걸터앉아 있는 모습이다. 앞의 두 제석신 어깨사이로 뒤에 있는 나머지 제석신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제석신으로서 각각 사람의 목숨, 삶의 행복, 농사의 풍요를 맡고 있어서 그것을 상징하는 물건을 들고 있다. 엄숙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은 편안하면서도 위엄을 느끼게 한다.
나옹님 국가민속문화유산17-12호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통일로18가길 20(무악동 산2-12)
국사당(國師堂)은 민간신앙에서 신을 모셔놓은 당집으로, 요란한 굿판을 벌이기 쉽도록 민가에서 멀리 떨어진 산 속에 마련되어 있다. 내부에는 화려하게 채색된 각종 무신도들이 걸려 있다. 나옹님은 고려시대 공민왕의 왕사였던 혜근(나옹화상)을 그린 그림이다. 가로 63㎝, 세로 106㎝의 비단바탕 위에 채색하였다.
칠성님 국가민속문화유산17-13호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통일로18가길 20(무악동 산2-12)
인간의 수명장수를 관장하는 신인 칠성(七星)님을 가로 59㎝, 세로 103㎝의 비단 위에 그린 그림이다. 구름문양 위에 두손을 옷자락 속에 감추고 정좌를 틀고 앉아있는 7인의 모습이다. 모두 옛날 중국인들이 썼던 모자를 쓰고, 앞 이마부분에 각기 별을 상징하는 둥근 광채가 박혀있다. 눈매는 날카로우나 인자함이 흐르고 있고, 칠성님 뒤쪽으로 남신으로 보이는 3인의 인물상이 그려져 있다. 칠성님으로 섬기게 된 설화가 전라도 북부와 충청도 이남에서 전해오는데 다음과 같다. 천하궁 칠성님과 지하궁 임자부인이 결혼을 하여 아들 일곱을 낳았는데, 칠성님이 없는 사이에 임자부인이 죽고, 칠성님이 둘째 부인인 천하궁 옥녀부인을 맞이한다. 그러나 옥녀부인의 시샘으로 일곱아들이 위험에 처하게 되지만, 임자부인의 덕으로 죽음을 모면한다. 그 뒤 일곱아들은 각각 칠성신에 봉해지고 자손발복과 수명장수를 관장하게 되었다 한다.
군웅대신 국가민속문화유산17-14호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통일로18가길 20(무악동 산2-12)
인왕산 국사당(國師堂) 벽에 걸려 있는 무속신 그림이다. 국사당(國師堂)은 민간신앙에서 무속신을 모셔놓은 당집으로, 요란한 굿판을 벌이기 쉽도록 민가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에 마련되어 있다. 내부에는 화려하게 채색된 각종 무신도들이 걸려 있다. 가로 63㎝, 세로 104㎝의 비단 위에 채색한 이 그림은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별상님으로 보기도 한다. 군웅신(軍雄神)의 성격은 확실하지 않으나 흔히 액을 막아주는 신으로 모셔지는데 제주도의 무속신앙에서는 가문이나 가업의 수호신으로 섬겨지고 있다.
금성님 국가민속문화유산17-15호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통일로18가길 20(무악동 산2-12)
인왕산 국사당(國師堂) 벽에 걸려 있는 무속신 그림이다. 국사당(國師堂)은 민간신앙에서 신을 모셔놓은 당집으로, 요란한 굿판을 벌이기 쉽도록 민가에서 멀리 떨어진 산 속에 마련되어 있다. 당 왼쪽 온돌방에는 4매의 무신도가 있는데, 금성님(錦聖)은 그 중 오른쪽에서 두번째에 걸려 있는 그림이다. 전립을 쓰고 조선시대 무관들이 갖추어 입던 구군복을 입고 있으며 칼을 잡고 앉아있는 모습이다.
민중전 국가민속문화유산17-16호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통일로18가길 20(무악동 산2-12)
민중전(閔中殿)이라고 하는 이 그림은 활옷과 비슷한 색동옷을 입고 족두리를 쓴 주신이 서 있고, 그 아래쪽 양옆에는 두명의 여자아이가 시중을 들고 있는 듯 서 있다. 후덕해 보이고 복스러운 둥근 얼굴의 주신은 양손을 모은 채 금방이라도 절을 할 것만 같은 모습이다. 시녀로 보이는 아이들도 한복을 멋스럽게 차려입고 두손을 모은 다음 긴 천으로 덮고 있다.
최영 장군 국가민속문화유산17-17호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통일로18가길 20(무악동 산2-12)
국사당(國師堂)은 민간신앙에서 무속신을 모셔놓은 당집으로, 요란한 굿판을 벌이기 쉽도록 민가에서 멀리 떨어진 산 속에 마련되어 있다. 내부에는 화려하게 채색된 각종 무신도가 걸려 있다. 그림은 가로 65㎝, 세로 110㎝ 비단 바탕에 채색되었다. 왼손은 무릎에 올려져있고 오른손은 칼끝이 위로 향하도록 들고 있는 모습이다. 최영 장군(崔瑩將軍)은 고려 후기 명장수로 활약하였으나 이성계에게 패하고 억울하게 죽어 원혼이 되었기 때문에 무속신앙의 숭배대상이 되었다. 전국적으로 모셔지지만 특히 그가 죽은 경기도 지방을 중심으로 신봉되는데 국사당에서도 무당이나 치성자들이 가장 중시하는 신으로 받들여진다.
명도 국가민속문화유산17-18호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통일로18가길 20(무악동 산2-12)
국사당(國師堂)에 보관된 원형의 무구 7점으로 명두(明斗)라고도 한다. 국사당(國師堂)은 무속신앙에서 신을 모신 집으로 굿판을 벌이기 쉽도록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산 속에 건립된 ‘굿당’에 속한다. 이 건물 내부의 무속신 그림 사이에 함께 걸려 있다. 명도(明圖)는 무녀를 계승할 때 넘겨주는 증표이다. 큰무당이 자기의 대를 물려줄 사람을 선정하여 그 상징물로 명도를 물려주고, 이것을 받은 무녀는 자기의 수호신처럼 귀하게 여기고 위하게 된다. 지역별로 ‘명도’라 불려지는 물건은 다르지만 중·북부 지방에서 의미하는 명도는 놋쇠로 만들어진 것으로 앞면은 밥그릇 뚜껑처럼 약간 불룩하고, 뒷면에는 작게 해와 달, 별, 글자 등을 도드라지게 새긴다. 뒷면 중앙에는 끈을 매기 위한 고리가 붙어 있다.
'우리나라 유산 > 국가민속문화유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가민속문화유산 19호 (0) | 2014.10.30 |
---|---|
국가민속문화유산 18호 (0) | 2014.10.29 |
국가민속문화유산 16호 (0) | 2014.10.28 |
국가민속문화유산 15호 (0) | 2014.10.28 |
국가민속문화유산 14호 (0) | 2014.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