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원문 후반부의 백운화상(白雲和尙) 서명 부분

발원문 중 공민왕 발원 부분 대원 바얀테무르 장수(大元 伯顔帖木兒 長壽)

복장유물 향낭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국보337호

소 재 지; 충남 청양군 대치면 장곡길 241(장곡리 15) 장곡사

청양 장곡사(長谷寺)는 통일신라 문성왕 12년(850)에 보조선사(普照禪師)가 처음 세운 절로, 그 뒤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많은 수리가 있었으나 자세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장곡사(長谷寺)에 있는 상·하 2채의 대웅전 가운데 하대웅전에 모신 불상이다. 1959년 불상 밑바닥을 열고 조사하다가 불상을 만들게 된 이유와 연도를 적은 축원문(祝願文)이 발견되어, 고려 충목왕 2년(1346)에 만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청양 장곡사(長谷寺) 금동약사여래좌상(金銅藥師如來坐像) 및 복장유물(腹藏遺物)」은 고려 후기의 유일한 금동약사불상이자 단아하고 정제된 당시 조각 경향을 잘 반영한 작품으로, 한국불교조각사 연구에 있어 중요하게 평가되어 왔다. 특히, 발원문에는 1346년(고려 충목왕 2)이라는 정확한 제작시기가 적혀있어 고려 후기 불상의 기준 연대를 제시해주고 있다. 고려 후기 불상조각 중 약합(藥盒)을 들고 있는 약사여래의 도상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온화하고 자비로운 표정, 비례감이 알맞은 신체, 섬세한 의복의 장식 표현 등 14세기 불상조각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어 이 시기 불상 중에서도 뛰어난 예술적 조형성을 지니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주조기술법에 있어서도 내외부의 주조결함이 거의 없을 정도로 높은 기술적 완성도를 보여 주는 점도 높이 평가된다. 일반적으로 고려 후기에 제작된 불상은 대부분 아미타 정토신앙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이 불상 역시 이러한 신앙적 배경과 더불어 고려 후기 유일의 금동약사여래상이라는 점에서 크게 주목된다. 따라서 이 불상을 통해 당시 아미타정토 신앙뿐만 아니라 약사 신앙의 흔적을 분명하게 알려 준다는 점에서 신앙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장곡사 불상의 지정가치를 검토하는데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부분으로 불상이 보여주는 조형적·도상적 중요성 뿐 아니라 복장발원문에 기재된 풍부한 인명정보를 들 수 있다. 장곡사(長谷寺) 불상 복장에는 약1,116명에 달하는 발원자의 정보를 담고 있다. 1천명이 넘는 발원자의 등장은 고려 후기 발원문 중 최대 규모일 뿐만 아니라 이들 시주자 인명에 대한 분석을 통해 문헌 자료가 절대 부족한 고려사 복원에 중요한 사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장점을 지니고 있다. 특히 성불원문을 지은 백운(白雲)은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1377년)』을 편찬한 백운경한(白雲景閑, 1298∼1374)과 동일인물로 추정되고, 그는 고려 후기의 대표적 선승(禪僧) 나옹혜근(懶翁慧懃, 1320∼1376), 태고보우(太古普愚, 1301∼1382)와 함께 고려 말 ‘삼화상(三和尙)’으로 추앙받았던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하는 기록이 부족하여 그의 행적과 불교사적 연구는 미진하였다. 그러나 이 성불원문이 확인됨에 따라 공민왕 이전의 그의 구체적인 신앙 활동을 엿볼 수 있어 그의 생애 연구에도 활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장곡사 불상의 제작을 주도한 계층은 고려 왕족을 비롯해 하급무관과 군부인들로 보이며, 이들은 몽고침탈기 동안 대표적인 불사(佛事) 주도층이었다. 아마도 이들은 본인이나 가족 중에 전쟁에 직접 참전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불사를 통해 자신과 가족의 무병장수와 전쟁 중에 죽은 친족의 극락왕생을 발원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명 중에는 공민왕의 몽고식 이름인 바얀테무르(伯顔帖木兒)를 비롯해 금타이지(金朶兒只), 도르지(都兒赤)처럼 몽고식 이름이 눈에 띠는데, 당시 고려 사회에 스며든 몽고 풍속의 실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는 역사의 기록 속에서 찾을 수 없는 14세기 중엽 경의 시대상을 꾸밈없이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사적ㆍ학술적 의의를 지닌다. 이러한 정황 등을 종합해 볼 때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은 미술사 뿐 아니라 불교사, 사회사적 측면에서도 고려 14세기 중반의 역사상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발원문 및 조성에 참여한 시주자가 기록된 묵서가 있는 직물편, 그리고 공예적 수준이 뛰어난 향낭(香囊)과 함께 복장유물 13건 18점으로 가치가 충분하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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