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공왕(惠恭王)


대력(大曆) 초년에 강주(康州) 관서(官署) 대당(大堂)의 동쪽 땅이 점점 가라앉아 못을 이루니 세로는 13자이고 가로는 7자였다. 어떤 책에는 대사(大寺) 동쪽의 작은 연못이라 하였다, 홀연히 잉어 대여섯 마리가 서로 계속하여 점점 커지더니 못도 따라서 커졌다. 2년 정미(767)에 이르러서는 또한 천구성(天狗星)이 동루(東樓)의 남쪽에 떨어졌다. 머리는 항아리 같았고 꼬리는 3자 가량이었으며 색은 뜨겁게 타는 불과 같았는데 천지가 또한 진동하였다. 또 같은 해에 금포현(浦縣)의 5경(五頃) 정도 되는 논의 모든 쌀 낟알이 모두 이삭이 되었으며, 7월에는 북궁(北宮)의 정원 가운데 먼저 두개의 별이 떨어지고 또 한 개의 별이 떨어져, 세 개의 별이 모두 땅 속으로 들어갔다. 이보다 앞서 대궐의 북쪽 측간 속(圊中)에서 두 줄기의 연(蓮)이 나고 봉성사(奉聖寺)의 밭 가운데(田中)에서도 연(蓮)이 났다. 호랑이가 궁성 안에 들어와 추격하여 찾았으나 놓쳤다. 각간(角干) 대공(大恭)의 집 배나무(梨木) 위에 참새(雀)가 셀 수 없이 많이 모였다. 안국병법(安國兵法) 하권(下卷)에 이르기를 “천하에 커다란 병란이 일어난다.” 하였는데, 이에 왕은 죄수를 사면하고 살피고 반성하였다. 7월 3일에 대공(大恭) 각간(角干)이 적도(賊盜)가 되어서 일어나고, 왕도(王都)와 5도(五道) 주군(州郡)의 96각간(角干)이 서로 싸워 대란이 일어났다. 대공(大恭) 각간(角干)의 집안이 망하였고 그의 재산과 보물 비단 등은 왕궁(王宮)으로 옮겼다. 신성(新城)의 장창(長倉)이 불에 타므로 사량(沙梁)·모량(牟梁) 등의 마을 안에 있던 역당들의 재물과 곡식들을 역시 왕궁(王宮)으로 운반해 들였다. 난리는 석 달 만에 그쳤는데, 상 받은 사람도 자못 많고 목 베어 죽은 사람도 셀 수 없이 많았다. 표훈(表訓)의 말대로 나라가 위태롭다는 것이 이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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