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령자(丕寧子) 거진(擧眞) 합절(合節)
비령자(丕寧子)의 고향과 일족의 성씨는 알 수 없다.
진덕왕(眞德王) 원년 정미(丁未, 647)에 백제(百濟)가 많은 군사로 무산성(茂山城)·감물성(甘勿城)·동잠성(桐岑城) 등을 공격해 왔다. 유신(庾信)이 보병과 기병 1만 명을 거느리고 그것을 막았다. 백제(百濟) 군사는 매우 날쌔어, 고전(苦戰)하였고 이기지 못해 사기가 떨어지고 힘이 다하였다.
유신(庾信)은 비령자(丕寧子)가 힘써 싸우고 깊숙이 들어갈 뜻이 있음을 알고, 불러서 이르기를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松栢)가 늦게 낙엽짐을 알 수 있는데, 오늘의 일이 급하다. 그대가 아니면 누가 용기를 내고 기이함을 보여 뭇 사람의 마음을 분발시키겠는가?”라고 하였다. 인하여 그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 간절함을 보였다.
비령자(丕寧子)가 두 번 절하고,
“지금 수많은 사람 중에서 오직 일을 저에게 맡기시니, 저를 알아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실로 마땅히 죽음으로써 보답하겠습니다.”고 하였다.
나가면서 종(奴) 합절(合蓈)에게,
“나는 오늘 위로는 국가를 위하여, 아래로는 나를 알아주는 분을 위하여 죽을 것이다. 나의 아들 거진(舉真)은 비록 나이는 어리나 굳센 의지가 있어 반드시 함께 죽으려고 할 것이다. 만약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죽으면 집사람은 장차 누구를 의지하겠는가? 너는 거진(舉真)과 함께 나의 해골(吾骸骨)을 잘 수습하여 돌아가 어미의 마음을 위로하라!”고 하였다.
말을 마치고 곧 말을 채찍질하여 창을 비껴들고 적진에 돌진하였다. 몇 사람을 쳐 죽이고 죽었다.
거진(舉真)이 이것을 보고 가려고 하였다. 합절(合蓈)이 청하여,
“어르신께서 ‘합절(合蓈)로 하여금 낭군과 함께 집에 돌아가 부인을 편안하게 위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자식이 아버지 명을 거역하고 어머님을 버리는 것이 어찌 효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고는, 말고삐를 잡고서 놓지 않았다.
거진(舉真)이,
“아버지가 죽는 것을 보고 구차히 사는 것이 어찌 효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곧 칼로 합절(合蓈)의 팔을 쳐서 끊고 적중으로 달려나가 싸우다 죽었다.
합절(合蓈)이,
“나의 하늘이 무너졌으니, 죽지 않고 무엇을 하겠는가?”라고 말하고는 또한 서로 싸우다가 죽었다.
군사들이 세 사람의 죽음을 보고는 깊이 느껴 다투어 나갔다. 가는 곳마다 적의 칼날을 꺾고 진을 함락하였으며 적병을 대패시켜 3천여 명을 목베었다.
유신(庾信)이 세 사람의 시신을 거두어 옷을 벗어 덮어주고 매우 슬피 울었다. 대왕(大王)이 그것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예로써 반지산(反知山)에 합장하였다. 처자(妻子)와 9족(九族)에게는 은혜로운 상을 더욱 풍부하게 내려 주었다.
'세상사는 이야기 > 삼국사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47권(卷第四十七) 열전(列傳) 필부(匹夫) (0) | 2020.06.12 |
---|---|
제47권(卷第四十七) 열전(列傳) 죽죽(竹竹) (0) | 2020.06.11 |
제47권(卷第四十七) 열전(列傳) 열기(裂起) 구근(仇近) (0) | 2020.06.09 |
제47권(卷第四十七) 열전(列傳) 김흠운(金歆運) (0) | 2020.06.08 |
제47권(卷第四十七) 열전(列傳) 관창(官昌) (0) | 2020.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