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길 행초 동춘당 필적 보물1672호

소 재 지; 경기 성남시 분당구, 대전 유성구

“송준길(宋浚吉) 행초(行草) 동춘당 필적(同春堂筆跡)”은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이 남송 주희(朱熹)의 「학고재명(學古齋銘)」과 장인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의 「우곡잡영(愚谷雜詠) 20절」을 필사한 것이다. 앞쪽에 가지런한 행서로 쓴 <학고재명(學古齋銘)>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서풍을 수용한 면모를 보여주며, 뒤쪽의 <우곡잡영(愚谷雜詠) 20절>은 송준길(宋浚吉)의 전형적인 행초 서풍을 보여준다. 특히 송준길(宋浚吉)이 율곡(栗谷) 이이(李珥) 이래로 김장생(金長生)·김집(金集) 등의 기호학파(畿湖學派)의 학맥을 이으면서도 영남학파 학자였던 장인 정경세(鄭經世)를 통해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학문을 수용하고 글씨까지 따랐던 것은 조선시대 유학사에서 특기할 만하다. 바로 이 서첩이 그러한 면모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서 송준길(宋浚吉) 노년의 서풍을 대표할 만한 필적이다. 서첩 규모도 크며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송준길 행초 동춘당 필적 보물1672-1호

소 재 지;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운중동 490) 한국학중앙연구원

“송준길(宋浚吉) 행초(行草) 동춘당 필적(同春堂筆跡)”은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이 남송 주희(朱熹)의 「학고재명(學古齋銘)」과 장인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의 「우곡잡영(愚谷雜詠) 20절」을 필사한 것이다. 앞쪽에 가지런한 행서로 쓴 <학고재명(學古齋銘)>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서풍을 수용한 면모를 보여주며, 뒤쪽의 <우곡잡영(愚谷雜詠) 20절>은 송준길(宋浚吉)의 전형적인 행초 서풍을 보여준다. 특히 송준길(宋浚吉)이 율곡(栗谷) 이이(李珥) 이래로 김장생(金長生)ㆍ김집(金集) 등의 기호학파(畿湖學派)의 학맥을 이으면서도 영남학파 학자였던 장인 정경세(鄭經世)를 통해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학문을 수용하고 글씨까지 따랐던 것은 조선시대 유학사에서 특기할 만하다. 바로 이 서첩이 그러한 면모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서 송준길(宋浚吉) 노년의 서풍을 대표할 만한 필적이다. 서첩 규모도 크며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모두 8장으로 성첩되어 있고, 한 면에 3자씩 해서로 남색전지(藍色箋紙)에 묵서로 필사하였다. 내용은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서술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마음은 비어 있길 바라고 心要在腔子裏
앉을 때는 진흙으로 빚은 인형같이 하라 坐如泥塑人
당에 오를 때는 소리를 반드시 내며 將上堂聲必揚
문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아래를 보라 將入戶視必下
발은 삐딱하게 걷지 말며 足毋蹶
옷은 날리지 말라 衣毋撥
태만하거나 황음하지 말며 毋怠荒
종일토록 단정히 하라 終日端

 

 송준길 행초 서증손 병하 보물1672-2호

소 재 지; 대전 유성구 도안대로 398(상대동 488) 대전시립박물관

“송준길(宋浚吉) 행초(行草) 서증손(書贈孫) 병하(炳夏)”은 조선중기의 학자ㆍ문신ㆍ명필인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이 송(宋)나라 양시(楊時)의 칠언절구「저궁관매기강후(渚宮觀梅寄康侯)」를 장지(壯紙) 네 장을 이어 붙여 대자 행초로 쓴 것이다. 말미에 “숭정기유청화춘옹서증손병하(崇禎己酉淸和春翁書贈孫炳夏)”라 하여 1669년 사월에 64세의 할아버지가 손자 송병하(宋炳夏)를 위해 써주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서축(書軸)은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이 남긴 여러 필적 가운데 규모가 제일 큰 대폭으로 손자 송병하(孫炳夏)라는 수증자와 1669년이란 필사연대를 완벽하게 갖춘 예이다. 또 종택에 전해오던 필적으로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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