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행궁 상궐 및 좌전

남한산성도(영남대박물관 소장)

1909년 촬영된 남한산성

남한행궁 상궐(조선고적도보)

남한산성 하궐(조선고적도보)

복원전 상궐

복원후 상궐

상궐

재덕당

좌승당

영녕전

영녕전 삼문

남행각

 남한산성 행궁 사적480호

소 재 지; 경기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935-6번지 외

행궁(行宮)이란 임시 숙소, 또는 전쟁시에 임시 피난처나 지휘소로 왕이 머물기 위해 궁의 격을 갖추어 지은 건물을 말한다. 남한산성 행궁(南漢山城行宮)은 광해군 13년(1621) 후금의 침입에 대비하여 만든 건물로, 백제 및 신라 때 토성을 식성으로 고쳐 지은 것이다. 남한산성 행궁(南漢山城行宮)은 정무시설은 물론 다른 행궁(行宮)에 없는 종묘사직 위패 봉안 건물을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조선시대 행궁제도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또한 역사적으로 한번도 함락되지 않은 대외 항전의 전적지로서 최고의 수준에 달하는 우리나라 성곽 축조기술을 보여주는 남한산성(南漢山城)(사적 제57호)과 역사를 함께하고 있는 행궁(行宮)은 1999년부터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상궐, 좌전이 복원되었으며, 일부 건물지에서 초대형 기와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된 중요한 유적인 남한산성행궁(南漢山城行宮)을 국가지정문화재(사적)로 지정하여 보존·관리하고자 한다.『남한지(南漢誌)』에 따르면 ‘인조가 행전(行殿)에 임어(臨御)하였으며 숙종과 영조, 정조가 영릉(寧陵) 참배시 이곳에 머물렀고 유수(留守)의 아문(衙門)이 있는 곳이 아니다 ’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로 미루어 후대에는 이곳에서 유수가 집무(執務)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행궁지는 상중하의 3단(段)으로 나뉘어 있는데 맨 윗단을 상궐(上闕)터, 아랫쪽 2단을 하궐(下闕)터라 부르고 있다. 현재 상궐터에는 내행전지(內行殿址)로 추정되는 유구(遺構)가 남동향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그 남서측에는 행각지(行閣址)로 추정되는 유구(遺構)가 북동향으로 놓여있다. 하궐터는 다시 상하의 2단(段)으로 나뉘어 있는데 윗쪽 단에만 초석(礎石)이 노출되어 있으며 아랫단에는 건물지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내행전지(內行殿址)는 30여 개의 큰 초석과 기단의 일부가 남아있는데 초석배열로는 정면 7칸, 측면 4칸의 규모이나 주칸거리로 보아 정면 5칸, 측면 2칸의 본체(本體)에 사방에 한 칸씩의 퇴(退)를 두른 구조임을 알 수 있다. 현재 남한산성행궁지(상궐터)에는 상궐, 남행각, 북행각, 재덕당, 좌승당 등이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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