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령산성 서쪽 복원 치(雉)

침령산성 1호 집수시설

침령산성 2, 3호 집수시설

침령산성 1호 집수시설 출토 토기

청자류

침령산성 1호 집수시설 출토 철기류

침령산성 1호 집수시설 출토 명문 열쇠

침령산성 출토 기와

침령산성 출토 목간

장수 침령산성 사적571호

소 재 지전북 장수군 계남면 침곡리 1090-1 일원

장수 침령산성(砧嶺山城)」은 둘레 497m의 산성으로 7세기 초 백제가 축조한 후 고려 초기까지 사용했으며, 낙동강 유역의 신라세력과 금강 유역의 백제 세력의 접경지역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침령(砧嶺)’은 침령산성(砧嶺山城)이 위치한 고개의 지명으로 「만기요람」, 「대동지지」, 「해동지도」, 「대동여지도」 등의 문헌자료에 ‘침치’, ‘침치고성’, ‘침령(砧嶺)’ 으로 기록된 바 있으며, 침령산성(砧嶺山城)으로 불린다. 침령산성(砧嶺山城)은 2005년 정밀지표조사를 시작으로 2014년부터 2020년까지 5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집수시설, 건물지, 치(雉, 성벽의 일부를 돌출시켜 적의 동태를 살피거나 공격하고 성벽을 타고 오르는 적병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는 시설), 문지( (門址, 문이 있던 자리) 등의 유구와 유물이 발견된 바 있다. 특히, 산성 내부에서 발견된 3기의 집수시설은 축조기법이 정교하고 규모도 커 고대 집수시설 축조기술을 파악할 수 있다. 북고남저(北高南低, 북쪽이 높고 남쪽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지형)의 지형에 축조된 침령산성은 남벽과 북벽이 길고, 동벽은 짧고 서벽이 긴 부정형(不定形, 일정하지 않은 모양이나 양식)으로 남벽과 북벽, 동벽 일부구간이 남아있으며, 그 높이는 약 5~10m이다. 집수시설과 건물지에서는 다량의 유물도 출토되었는데, 특히 집수시설에서는 전라북도 동부지역의 지배체제 변화 양상을 이해할 수 있는 ‘직구단경호(곧은 입에 목이 짧은 항아리, 백제)’, ‘소호(작은 단지, 신라), ‘청자 완편(사발 조각, 고려) 등이 출토된 것을 비롯해 기와, 금속 열쇠, 목간(글을 적은 나뭇조각) 등 다양한 종류와 시기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침령산성(砧嶺山城)은 삼국시대부터 고려 초까지 한반도 고대국가 간의 치열한 각축전이 일어난 역사적 장소이며, 출토유물 등을 통해 정치체의 지배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뛰어난 학술적·역사적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으로 평가된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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