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종2(毅宗二) 의종(毅宗) 12년

 

〈무인〉 12년(1158) 봄 정월 갑술. 왕이 환궁하였다.

2월 을미. 〈왕이〉 나가서 흥왕사(興王寺)에 거둥하였다.

경자. 왕이 천수사(天壽寺)로 이어(移御)하였다.

무오. 왕이 환궁하였다.

기미. 인종(仁宗)의 기일(忌日)이라 하여 태평정(太平亭)에서 반승(飯僧)하였는데, 이때 왕이 불사(佛事)를 즐겨 행하였으므로 승려들이 궁궐에 가득하였으며, 왕의 은총을 믿고서 환관에게 아부하고 결탁하여 백성의 것을 빼앗아 소란케 하고 앞다투어 절과 탑을 세웠는데, 그 폐해가 날로 심하였다.

경신. 왕이 영통사(靈通寺)에 갔다.

3월 신유. 초하루 일식(日食)이 일어났다.

정묘. 사형수에 대해 감형하고 유배형 이하는 용서하여 주었다. 또 서경(西京)의 반역에 가담했다가 노비가 된 자들도 사면하였다.

임신. 왕이 수덕궁(壽德宮)에 행차하여 태평정(太平亭)에서 재추(宰樞)·대각(臺閣)·시신(侍臣)에게 연회를 베풀고, 이어 어원(御苑)의 꽃과 나무들을 노닐며 관상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임오. 국내의 노인들에게 술과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大酺].

여름 4월 을사. 평장사(平章事) 최윤의(崔允儀),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 신숙(申淑),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김영부(金永夫)에게 명하여 상춘정(賞春亭)에서 초제(醮祭)를 올려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하게 하였다.

무신. 다시 기우제를 지냈다.

5월 을축. 안화사(安和寺)에 행차하여 석정(石井)을 시제로 하여 글을 짓고, 재상(宰相)·사신(詞臣)으로 하여금 화답시를 지어 올리게[和進] 하였다.

병인. 우박이 크게 쏟아졌다.

기사. 흰무지개가 해를 꿰뚫는 듯한 현상이 있었다.

신사. 김정명(金正明) 등에게 급제(及第)를 하사하였다.

무신. 왕이 안화사(安和寺)로 이어(移御)하였다.

가을 7월 기미. 태백성(太白星, 금성)이 낮에 보였다.

신유. 또한 그러하였다〈태백성(太白星, 금성)이 낮에 보이는 현상이 있었다〉.

갑신. 왕이 환궁하였다.

8월 경자. 상서형부(尙書刑部)에서 중죄인의 판결에 대하여 아뢰었다.

을사. 박순충(朴純冲)을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로 삼았다.

병오. 〈왕이〉 나가서 천수사(天壽寺)에 거둥하였다.

계축. 왕이 안화사(安和寺)로 이어(移御)하였다.

갑인. 태사감후(太史監候) 유원도(劉元度)가 아뢰기를, “배주(白州) 토산(兎山)의 반월강(半月岡)은 실로 우리나라를 중흥시킬 땅이오니, 만일 궁궐을 짓는다면 7년 내로 북쪽 오랑캐를 병탄(竝呑)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평장사(平章事) 최윤의(崔允儀) 등을 보내어 풍수를 살펴보게 하였는데, 돌아와 아뢰어 말하기를, “산세가 조회하듯 하고 강물도 순조로우니, 가히 궁궐을 지을 만합니다.”라고 하니, 왕도 그렇게 여겼다.

9월 기미. 왕이 환궁하였다.

경신. 최윤의(崔允儀)와 지주사(知奏事) 이원응(李元膺), 내시(內侍) 박회준(朴懷俊) 등을 보내어 배주(白州)에 별궁을 창건하게 하였다. 박회준은 성격이 가혹하여 서해도(西海道)에서 정부(丁夫)를 징발하여 밤낮으로 일을 재촉하여, 얼마 안 되어 그 완공을 고하였다. 궁궐의 이름을 ‘중흥(重興)’이라 하고 전액(殿額)을 ‘대화(大化)’라 하였다. 술자(術者)가 사사로이 말하기를, “이곳은 도선(道詵)이 말한 바 〈서쪽〉 경방(庚方)의 객호(客虎)가 머리를 들고 엄습하는 형세인데도 여기에 궁궐을 창건하였으니, 국가에 위기가 닥칠까 두렵다.”라고 하였다.

계유. 왕이 국청사(國淸寺)에 갔다.

겨울 10월 정유. 안평재(安平齋)에서 곡연(曲宴)을 베풀고는 좌승선(左承宣) 이공승(李公升)을 불러 술잔을 올리게 하자[獻壽] 이공승(李公升)은 시를 지어 바쳤다.

을묘. 왕이 배주(白州)에 행차하였다.

병진. 왕이 중흥궐(重興闕)에 들어갔다.

정사. 왕이 대화전(大化殿)에서 하례를 받았다. 이 날 천지가 어둡고 컴컴해지더니 큰 바람이 불어 나무를 뽑아버리자, 왕이 크게 의심하면서 다방면으로 기양(祈禳)을 행하였다.

무오. 대화전(大化殿)에서 군신(群臣)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11월 계해. 왕이 환궁하고 사면령을 내렸다.

갑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로 치사(致仕)한 양원준(梁元俊)이 사망하였다.

경오. 팔관회(八關會)를 열고 법왕사(法王寺)에 행차하였다.

계유. 금(金)에서 고존복(高存福)을 보내어 와서 왕의 생신을 축하하였다.

계미. 금(金)의 사신을 위해 연회를 베풀었다.

만보전(萬寶殿)에 불이 났다.

12월 기축. 박순충(朴純冲)을 권판이부사(權判吏部事)로 삼았다.

계사. 부윤현(富閏縣) 사람으로 봉가(奉街)라는 자가 자기 부친과 계모를 죽이고 아울러 가동(家僮)까지도 죽여 모두 아궁이 불에 던져 버리고 도망하였다.

을미. 왕이 천수사(天壽寺)에 행차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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