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사막길 향해서 ⑨ 이제는 사라진 오아시스 도시
이제는 사라진...한 때 스님만 4000명 달했던 오아시스 도시
누란에 남아있는 불탑.
누란을 떠도는 소문들
누란을 진입하기 위해서 누란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던 중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최근에 누란 조사단이 누란에 들어가기 위해 야영을 하던 중 한밤중에 나가 실종되었다는 일이다. 조사원은 영원히 찾지 못했다고 한다. 누란을 떠도는 소문은 많다. 해마다 특정한 날짜가 되면 노파가 나타났는데 이제는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무수한 소문은 조사팀을 걱정스럽게 했다.
누란은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불탑과 성곽터 관청, 민가 뿐이다. 목재들은 무수하게 남아 있다. 땅의 흔적에는 마른 땅들이 남아 있는데 밟으면 깨져 나간다. GPS도 거의 먹통이 되고 위성전화기는 아예 신호를 못 잡는다. 누란과 미란의 GPS자료는 조정작업을 해서 만들었다. 구글어스에 누란지역 사진을 등록하니 사라져 버린다. 잃어버린 왕국처럼 말이다.
을씨년스러움이 가득한 곳
누란의 불탑은 누란 밖에서 보인다. 누란관리사무소를 지나 지정된 야영지에서 1박을 하고 차를 타고 들어가니 멀리서 문에 들어왔다. 차로 들어가는 길은 호수 바닥을 달리는 진동보다 더한 길이다. 차량 1대에는 관리사무소 직원이 동행해야 한다. 이유는 촬영 방지라고 하지만 딱히 촬영할 것도 안 보인다. 민가터나 탑 주변에 구슬이나 동전이 보인다. 민가터의 목재도 남아 있어 을씨년스럽다. 동물의 머리들이 보이는데 민가터 주변인 것으로 보아 그들의 식량의 흔적으로 보인다.
조그만 근처를 둘러보면 건물지가 보인다. 관청의 흔적이라고 하는데 방이 세 개라 삼첩간이라고 한다. 누란은 규모가 상당히 크다 걸어서 1시간여를 돌아도 반만 갈 수 있을 정도이다. 한쪽에는 다른 건물터가 보이는데 관리인의 말로는 봉화대라고 했다. 봉화대의 크기는 상당히 커서 멀리서도 잘보인다.
누란 관청의 흔적.
실크로드 위의 오아시스 도시
누란의 역사는 사라지고 얼마 남지 않은 문화의 흔적은 찾는 사람을 안타깝게 한다. 누란은 들어가고 나오는데 상당히 시간이 걸린다. 얼마 남지 않은 문화재를 촬영하고 비디오 촬영을 제지하기에 카메라에 달린 비디오 기능을 이용하여 영상을 기록했다.
미란(Miran)은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부 주변에 있는 실크로드 위의 고대의 오아시스 도시이다. 그곳은 로프누르 사막이 알툰샨과 만나는 곳이다. 2000년 전에는 강이 산에서 흘러나와 미란은 복잡한 관개 체계를 지녔다. 이제는 폐허가 된 도시에 도로는 빈약하고 교통은 좋지 않은 무슬림 지역이다.
고대에 미란은 비단길이 남로와 북로로 나누어진 뒤 남부지역의 붐비는 교역중심이었다. 상인들의 카라반은 사막의 불모지와 타림 분지를 건너는 여행을 피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막의 남쪽 주변을 돌아서 다녔다. 그것은 많은 사원과 사리탑이 있는 불교의 중심이기도 하였다.
미란의 불탑
역사 속으로 사라진 미란
기원전 60년경 선선국(鄯善國)은 1570호에 1만4100명의 인구와 2912명의 병사를 두었던 타림분지 남쪽 국가들 중에서 비교적 큰 나라였다. 그러나 토질의 염기 때문에 농경지가 제한되어 식량은 주변에서 구해오는 등, 목축을 위주로 한 유목 민족국가였다. 선선(鄯善)은 전한 말 사차국(莎車國; 야르칸드)의 지배하에 있다가 후한 초에는 흉노에게 강점되었다. 기원 후 1세기 후반 반 초 서역 경영 때 다시 독립하여 주변 소국들을 거느리고 세력을 확장하였다.
4세기 법현 스님의 기술에 의하면, 이곳은 불교를 신봉하고 승려가 4000여 명이나 있으며, 모두 소승을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는 이미 로프노르호 지방의 건조화가 심하여 수도는 미란에서 서쪽으로 옮긴 상태였다. 5세기 이르러 선선국이 토욕혼에게 멸망함으로써 미란은 역사 무대에서 사라졌다. 7세기 후반 토번이 미란을 타림분지로 가는 서진의 군사기지로 삼으면서 다시 무대 속에 등장하게 되었다. 9세기 후반 토번이 쇠락하여, 미란에서 철수하면서 미란은 다시 사양길에 들어섰다.
옛 영화를 보여주는 ‘천사’ 벽화
현재 미란은 완전히 사라진 도시는 아니다. 아직도 인구 약 1만 명이 사막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마을이 남아 있지만, 한때 승려만 4000명이었다던 법현스님의 불국기의 묘사와 비교해 보면 확실히 초라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현재도 미란에 그리 크지 않는 성곽이 남아 있어 옛 영화를 점치게 해주고 있다. 고고학자들은 미란은 원래 두세개의 도시로 나뉘어져 있다가 홍수가 덮쳐서 파괴되는 바람에 사람들이 분산된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누란에서도 많은 유물을 발굴했던 스타인이 정말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바로 미란에서 ‘날개 달린 천사’의 벽화를 출토한 덕이었다. 미란 성터의 이 벽화에는 가지각색의 눈빛깔, 살빛깔을 한 사내들과 여성들이 춤을 추는 장면과 날개 달린 천사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이를 통해서 우리는 미란 역시 교역지로 각양각색의 인종들이 지나다녔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또한 당의 화폐인 ‘개원통보’도 출토되어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해주고 있기도 하다. 이 지역은 미라가 상당히 많은데 미란에서는 천년이 넘은 옛날의 미라가 발굴되기도 하였다. 박물관에 가면 미라를 흔하게 볼 수 있기도 하다.
미란의 ‘날개 달린 천사’. 벽화는 영국 박물관이 소장라고 있다.
자연 앞에 한없이 연약한
미란은 한때 승려만 4000명이나 될 정도로 영화를 누리던 오아시스 도시 답지 않게 현재 상당히 메말라 있는 검은 불모지대인데, 이는 천산산맥으로부터 흘러 내려오던 물이 그 길을 바꾸어 버렸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으로 보인다. 이렇게, 물에 의해 번성하던 옛 도시, 홍수로 인해 파괴될 정도로 물이 풍족했던 도시가 다시 물에 의해 망하게 된 것을 보면 자연 앞에 한없이 연약한 인간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누란을 나오는 길에는 미란을 들어갔다. 미란은 방문당시에 발굴 조사가 한창이었다. 현장에 있는 연구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중국정부가 실트로드 개발을 위해 엄청난 규모의 비용을 쓰고 있다고 하니 언젠가는 달라진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문무왕 동국대 와이즈캠퍼스 외래교수 [불교신문 37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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