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사막길 향해서 ⑩ 투루판
동서 교류가 활발했던 ‘풍요의 땅’
차사왕국은 지금의 투루판 현 북서쪽 5km에 있는 교하성에 수도를 정했다. 450년 고창국이 이곳을 합병하고, 수도를 고창성(지금의 투루판 남동쪽)으로 정했다. 사진은 고창고성..
실크로드 북 중간기착지이자
중앙아시아 통과하는 분기점
투루판 분지 북부에 있는 비옥한 오아시스의 중심부이며, 훠옌 산(火焰山) 남쪽 기슭에 있다. 북쪽으로는 해발 4000~5000m의 보거둬 산맥(博格多 山脈)이 있는데, 이 산맥의 높은 봉우리들에는 1년 내내 눈이 쌓여 있다. 이 산맥은 분지의 주요수원이다.
남쪽으로는 해발 1500m가 넘는 줴뤄타거 산(覺羅塔格山)이 있다. 분지 중앙의 지면은 대부분 바다 수면보다도 낮으며, 그중 아이딩 호(艾丁湖)의 수면은 154m로 세계에서 유명한 저지대이다. 투루판은 몇 번 다녀왔지만 여름의 투루판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투루판은 톈산 산(天山) 남북을 잇는 교통의 중심지로, 실크로드 북쪽의 중요한 중간기착지이자, 북쪽으로 우루무치를 지나 중앙아시아를 통과하는 분기점이다.
한대(BC 206~AD 220) 차사왕국은 지금의 투루판 현 북서쪽 5km에 있는 교하성에 수도를 정했다. 450년 고창국이 이곳을 합병하고, 수도를 고창성(지금의 투루판 남동쪽)으로 정했다. 640년 당나라가 고창을 평정하고 서주를 설치했다. 8세기 후반 토번의 땅이 되었다. 9세기에 위구르족들이 옮겨와 살았다. 이들을 역사상 '고창회골'이라고 한다. 원대(1279~1368)에는 화주(火洲)라고 불렀다.
이란계 유목민 ‘차사인’ 이후
현재는 위구르족, 한족 차지
투루판은 돌궐어로 ‘풍요로운 땅’이란 뜻으로, 실크로드에서 동 · 서 문화 교류가 가장 활발했다. 신장에서 발굴된 실크로드 문물의 80%가 투루판에서 출토되었을 정도로 볼거리가 가득하다.
기원전 3세기경 톈산 산맥에서 남하한 이란계 유목민 차사인(车师人)이 이곳에 도읍을 세운 이래로 수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차사인이 떠난 5세기에는 위구르족의 선조인 회골인(回鹘人)이 고창 왕국을 세웠었다. 지금은 위구르족이 인구의 70%, 한족이 23%를 차지한다.
투루판은 도심 해발이 해수면보다 60~80m 낮은 ‘사막 속의 분지 오아시스’로 여행자에게 독특한 체험을 선사한다. 사방이 높은 산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7~8월에는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해 40℃를 넘기 일쑤다. 지열 온도는 70℃에 육박하고, 연중 강수량이 20mm도 안돼 마치 건식 사우나에 들어온 듯하다.
사막 속의 분지 오아시스로
7~8월 40℃ 넘는 더위 자랑
투루판의 기후는 매우 무더우며, 지하에 구멍을 내서 만든 카레즈(감아정; 중국 신장웨이우얼 자치구에서 볼 수 있는 일종의 관개시설)으로 물을 댄다. 과거에는 양식 작물 재배를 주업으로 했다. 1954~55년 이후에는 목화 재배가 발달했으며, 지금은 면화 생산을 위주로 하는 경작작물 지역이 되었다.
실크로드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신강지방의 주식인 쇼우좌판(手羓飯:양고기 밥), 양고기 볶음국수인 빤미엔(拌面), 샤슬릭(양꼬치), 난을 먹어야 한다. 과일은 풍성하지만, 양고기를 먹는 훈련을 하지 않고는 실크로드를 갈 방법이 없다. 기온과 식사는 조사 중에 가장 큰 장애요인이 된다.
투루판산(産) 과일은 국내외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하미과와 포도로 유명하다. 서북 철도의 간선인 란저우(蘭州)-우루무치를 연결하는 란신 철도(蘭新鐵道)와 새로 건설된 투루판-쿠얼러(庫爾勒)를 연결하는 난장 철도(南疆鐵道)가 이곳에서 합류한다.
투루판의 명승고적으로는 훠옌 산(화염산), 아이딩 호, 한대 교하성의 옛터, 한대 고창성의 옛 터 및 남북조시대에 건설된 바이쯔커리커(柏孜克里克, 베제클리크) 천불동 등이 있다.
둔황, 누란, 선선과 통했던 차사인
5세기 고창 후 수차례 주인 바뀌어
차사는 동남쪽으로 둔황(敦煌)과 통하였고, 남쪽으로는 누란(楼兰), 선선(鄯善)과 통하며, 서쪽으로는 카라샤르(焉耆), 서북쪽으로는 오손(烏孫), 동북쪽으로는 흉노와 통하였고, 실크로드 상의 중요한 상업적 위치를 차지하였다. 차사국 사람들은 인도유럽어족의 토하라어를 말하였다. 고대 차사 민족에 관한 완전한 연구는 끝나지 않았지만, 두개골로 보아 코카서스와 몽골계의 사람의 특징을 지닌다.
한나라 무제 (기원전 141-87년) 때 군대를 보내 서역을 정벌하면서, 서역의 동쪽에 있는 차사도 한나라의 압력을 받게 되자 흉노와 연합하여 그 이목이 되어 한나라 사신을 공격하였다. 기원전 89년 정화(征和) 4년, 한나라는 누란 등의 나라와 연합하여 교하를 공격하자, 차사는 항복한다.
한나라 선제 (기원전 74-49) 때 시랑 정길을 파견하여, 차사의 국경 내 거리(渠犁)에 군사를 주둔하고 둔전을 시행한다. 기원전 62년 원강 4년 흉노가 두막(兜莫)을 왕으로 삼고, 일부를 데리고 보그다산 북쪽으로 옮겨와 보그다산 주변에서 나라를 세운다. 이 때문에 차사는 ‘차사전국’과 ‘차사후국’으로 양분된다.
차사인이 떠난 5세기에는 위구르족의 선조인 회골인(回鹘人)이 고창 왕국을 세웠었다. 역사를 보면 주인이 오손국(기원전 5세기-기원후 5세기), 누란국(??-기원전 77년), 서역도호부(기원전 60년-기원후 107년), 차사국(??-기원후 460년), 선선국(기원전 77년-기원후 630년), 고창국(460년-640년)으로 주인들이 많이 바꿨다.
현장스님은 인도로 다는 길에 도중 고창국(高昌國) 왕 국문태(麴文泰)의 대접(630년)을 받았다. 국문태에게 받은 극진한 대접에 귀로에서도 들르려고 했으나 이미 당나라에게 멸망해 뿔뿔히 흩어진 상황이었다고 한다. 실크로드의 흥망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문무왕 동국대 와이즈캠퍼스 외래교수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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