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가 비구니 김원주(일엽)
신문학 초기 남성과 어깨 나란히… 목사 집안서 때어나 불교에 귀의
일엽(一葉) 스님으로 알려진 김원주(金元周, 1896~1971)는 1896년 6월 9일 평안북도 용강군 삼화면 덕동리에서 기독교 목사인 아버지 김용겸(金用兼)과 어머니 이말대(李馬大)의 5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14세 때 어머니가 결핵으로 별세하였고, 남동생도 생후 3일 만에 죽었다. 계모를 맞이한 아버지도 얼마 못 가 별세하였다. 살림살이는 어려웠으나, 형제들뿐만 아니라 계모와도 가족애가 두터웠다. 기독교 신자로 구세학교를 거쳐, 윤심덕(尹心悳)과 같이 진남포 삼숭보통여학교에 다녔다.
상경 후 이화학당 재학 시 어느 재산가 청년과의 파혼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파혼 위자료로 많은 돈을 받았지만, 재물이 자신의 상처를 메우지 못함을 깨달았다. 그로 인해 “창자를 위로할 만한 음식과 한서를 피할 만한 옷만 있으면 그만이다”는 인생관을 일찍이 갖게 되었다.
이화학당 대학부 예과를 졸업하고, 동대문 부인병원에서 간호원 강습을 수료한 후, 일본에 다시 유학했다. 귀국 후 연희전문학교 교수와 결혼하였으며, 숭실전문학교 교수와도 1933년까지 약 2년간 생활한다. 그러나 승려 출신 재가신도인 그의 영향으로 일엽(一葉)은 불교에 귀의하게 된다.
1907년에 쓴 ‘동생의 죽음’이란 시는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1908년)’보다 1년 먼저 나온 국문자유시란 점에서 여성문학사뿐만 아니라 국문학사에서 이채로운 존재로 주목되고 있다. 또한 일엽은 3·1운동 때 자기 집 지하실에서 전단을 등사·배포하였고, 이후 1920년 3월 한국 최초의 여성잡지 ‘신여자’를 나혜석(羅蕙錫), 신줄리아와 함께 창간하여 최초의 여성 주간이 되었다. 이 잡지는 ‘조선’ ‘동아’ 등 민족지들보다 더 먼저 나온 것으로 남편의 적극적인 지원과 이화학당의 재정 후원에 힘입은 바가 컸다.
또한 이를 위해 매주 1회 청탑회(靑塔會) 모임을 통해 새로운 사상과 문학을 토론한 것도 의미 있다. 그로부터 시작하여 김원주(金元周), 김명순(金明淳), 나혜석(羅蕙錫) 등에게 당시 신여성이란 유행어가 생겨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자유연애·자유결혼·자유이혼이란 자신의 주장을 실천한 대표적 신여성이었다. 동시에 염상섭(廉尙燮), 김억(金億), 나혜석(羅蕙錫) 등과 함께 순수 문예지 ‘폐허’ 동인으로, 1921년에는 ‘신민공론’ 편집 동인으로 활동했고 동아일보사 문예부 기자, 불교지 문화부장 등 직업적 문인으로 활약하였다.
작품 자체는 당시에 큰 평가를 받지 못하였으나, 한국근대문학 초기에 남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함으로써 이후 여성들의 사회 진출과 문학 활동에의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수상록 ‘청춘을 불사르고’ 등을 발간했으며, 1971년 1월 입산한 지 43년 만인 76세에 입적하였다. 자유롭고도 열정적으로 사랑하기를 주장하던 그는 말 그대로 “청춘을 불사르고” 여성의 신문화 창조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기고 간 신여성이었다.
이화학당 시절부터 종교에 대한 회의를 해오다, 1927년 불교잡지 불교의 문예란에 기고하면서 불교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다. 1930년대 초 서울의 선학원 등에서 참선을 하였으며, 1933년 만공선사 하에서 출가,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1971년 입적한다. 출가시 만공선사가 선수행을 위해 읽고 쓰는 것을 중단하라는 말을 따라, 20여 년 집필 활동을 중단하다 1950년대 후반에 다시 글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1962년 <청춘을 불사르고>를 발표하며, 1964년에 마지막 저서 <행복과 불행의 갈피에서>를 발표한다. 불명(佛名)은 하엽(荷葉), 도호(道號)는 백련도엽(白蓮道葉), 하엽당(荷葉堂), 본명은 김원주(金元周), 다른 이름은 원주(源珠)이다.
신영숙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기획위원장 출처; 이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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