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길 따라 지명 산책(4)

 

‘회야강’은 ‘논배미 돌아 흐르는 강’에서 유래

상아골, 항아골에서 변천…‘항아’는 달속에 사는 선녀
어울물 등 방언이 지명으로…친근한 이정표 향수 담아내

 

▲ 강동동 어물 산두골. 산 정상을 뜻하는 두리에서 리가 탈락해 생긴 지명이며 현재는 한 두 채의 농가만 남아 있다.

 

산두골(山頭谷)

북구 강동동 어물의 ‘산두골’은 황토전 앞을 흐르는 금천 상류 물청치이 계곡의 길을 따라 줄곧 서쪽으로 오르면, 계곡중턱쯤에 어물동의 큰 저수지를 만나게 되는데, 어물동 지역을 흐르는 계곡의 물길들은 모두 이곳을 향해 모여든다. 옛날 사람들은 산지에서 지역의 경계를 정할 때는 산의 능선을 따라 빗물이 어느 곳으로 흘러드느냐는 수계에 따라서 경계선이 정해졌기 때문에 어물동의 지역경계선은 율동과 효문, 연암 뒷산 능선까지 점하고 있다.

 

▲ 산두골로 오르다 보면 만나는 어물저수지. 어물은 지방의 방언이 지명으로 자리잡은 경우다.

 

어물저수지 갓길을 돌아 갈매봉을 향하다보면 골짜기 사이에 다랭이 논들이 계단식으로 줄지어있는 논길을 만나게 되는데, 벌써 모내기가 다 끝난 논길은 한가롭기만 해 보인다.  

숲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산중턱에서 논길을 만나고, 고태가 물씬 풍기는 산촌의 마을을 만나는 것은 마치 소설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무릉도원과도 같은 또, 다른 세상을 만나는 반가움이 있다.

산길을 한참 따라 오르다 보면 산마루에 약천사가 있고, 주변에는 논밭이며 밭 가운데 별장처럼 조립식 신식 가옥 한 채와 예스러운 가옥 한 채가 한가로이 햇살을 받고 있는 분지의 마을이 산두골이다.  

 

▲ 아랫율동에서 산두골로 오르는 길을 따라 걷다보면 성불사 쪽 길가에서 만나는 찬물내기 약수터.

 

또 다른 길, 산두골로 오르는 지름길은 아랫율동에서 성불사로 가는 고갯길을 따라 오르면 산정 가까이에 성불사와 약천사의 갈림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다. 이정표가 서있는 곳에서 성불사 쪽 길가에 찬물내기라는 약수터가 있고 그 길로 산등 하나를 넘어서면 성불사이고, 이정표에서 안내하는 약천사로 가는 길은 좌측 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약천사가 보이는데, 이 길이 율동에서 산두골로 가는 길이다. 울산광역시에도 이런 한적한 산촌 마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오지의 산골에 한적한 산촌마을 산두골이 있다. 

이 마을에서 산 한 자락만 넘어서면 율동의 ‘안골짜기’로 일제 때에 탄광촌이 있었던 율동 완걸골과 연암의 치사리골, 옛 하상과 강동의 경계였던 가운데고개. 구남으로, 정자로 넘어 다니던 고갯길(국도)인 ‘왕골재’와도 맞닿는다. ‘왕골’이란 ‘안골’이 ‘완골(걸)’로 되었다가 다시 ‘왕골’로 소리가 옮겨간 지명이다. 

당시만 해도 탄광 인부들 중에 이곳에서 기거하던 사람들도 여럿 있었고, 또 옛날부터 5~6가구의 농가가 어울려 농사를 짓고 살았으나 세태의 변천에 따라 몇몇 식구들이 떠난 후 남겨진 가옥들은 풍우에 시달리다 폐허가 되고 마당가에 있던 뽕나무와 대나무 울타리만 살아남아 옛 집터임을 알려준다. 한집은 개조하여 약천사의 당우로 변했고, 한 두 채의 농가가 남아 산두골의 옛 이름을 지키고 있다.  

‘산두골(山頭谷)’은 한자의 뜻으로도 통하지만, ‘산두골’의 ‘두’는 머리(마루·마리)의 뜻을 담고 있는 ‘두리’에서 ‘리’가 탈락한 말로, ‘두(리)’는 높은 곳, 산정(山頂)을 뜻하기도 한다. 결혼식 때에 신부의 머리에 쓰는 ‘쪽두리’와 ‘도리도리’ 등의 ‘두리’와 ‘도리’도 ‘머리’를 뜻하는 말이다. 

 

 

▲ 강동 달골의 주렴마을. 주렴은 두림마을의 이두식 표기로 산촌의 뜻을 담고 있다.

 

강동 달골의 ‘주렴(周念)’은 ‘두림마을’의 이두식 표기로 달골(산촌)과 같이 산촌의 뜻을 담은 다른 이름이다. 동구 마골산의 한 봉우리를 ‘학인산(鶴隣山)’이라 부르는데, 학(鶴)의 옛 이름은 ‘두루미’로, ‘두루’와 ‘린’을 취합한 ‘두린산’으로 높은 산, 머리산의 뜻을 지닌 이두식 표기로 보고 있다. 

또, 울산의 여러 곳에 ‘상아골(嫦娥谷)’이라는 지명이 보이는데, 이는 본래 달을 뜻하는 ‘항아골’이 변한 것으로, 항아항(嫦)자는 항아상(嫦)자로도 읽혀져서 서로 호통하다가 ‘상아골’로 굳어진 지명이다. ‘항아(嫦娥)’는 중국의 전설 속에서 “달(月) 속에 살고 있다는 선녀”를 일컫는 말로, ‘달골(達谷)’의 다른 이름으로 쓰인다.

 

율동(栗洞)과 밤나무골 

지명중에 과일 이름 비슷한 지명 뒤에는 꼭 나무가 붙어서 ‘감나무골’, ‘배나무골’, ‘풍지나무골’, ‘밤나무골’ 등으로 마치 과일나무가 많이 식생해서 붙여진 지명 같지만, 그 뿌리 말은 과실목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다. ‘감’은 ‘지모신(地母神)’ ‘감’을 상징하는 지명으로 ‘어미골’, ‘굼골’ 등을 뜻하며, ‘배’는 산의 고어 중 하나로 ‘배내골’ 등에서 산을 의미한다. ‘풍지’는 ‘불다’는 뜻을 인용하여 ‘부리(山)’의 의미를 가진 지명이다.

율동(栗洞)은 밤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지명 같지만, 논가(논배미)에 있던 마을이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논배미마을’이 줄어지면서 ‘배미말 > 바미말 > 밤말(栗洞)’로 음운이 옮겨간 지명이다. 

또 ‘논배미’는 ‘회야강(回夜江)’에서 ‘밤야(夜)’자로 쓰였는데, 1911년경에 발간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지지자료」에는 “됨밤강”으로, 한글표기도 함께 표기되어 있어서 당시의 순우리말 지명은 ‘됨밤강’으로 불렸으며, ‘논배미를 돌아 흐르는 강’에서 유래된 지명임을 어렵잖게 알 수 있지만, 지금의 ‘회야강’이라 부르는 이름은 이두로 표기한 한자의 음(音)대로 읽음으로써, 그 어원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또 온산읍 덕신의 ‘신밤(新庚)’은 ‘새논배미’ 마을에서 ‘바미(밤)’를 밤의 시각(夜時)을 나타내는 ‘경(庚)’자로 쓰였다. 또 일산동의 율미들(栗味坪), 야미말(夜味里) 등도 ‘논배미’에서 유래된 지명들이다. 

 

강동과 어물(於勿) 

두 물줄기가 합쳐지는 곳의 땅이름은 지방마다 조금씩 다른 유형의 지명들이 있다. ‘쌍수리’, ‘양수리’, ‘아우네’, ‘어울물’, ‘아오라지’, ‘모둠내’, ‘두뭇개’, ‘두물머리’, ‘두물거리’, ‘어물’, ‘쌍거리’, ‘쌍개받이’ 등 지방의 방언으로 자리 잡은 지명들은 그 지역마을 사람들에게 친근한 이정표로, 고향의 향수를 담아내고 있는 아름다운 지명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 강동동 복골거랑. 거랑은 작은 하천의 옛말인 거레에서 유래돼 물가마을을 의미한다.

 

양주동은 「고가연구」에서 “하(河)ㆍ천(川)의 고훈(古訓)은 ‘거레’이다”라고 밝혀 놓았다. 작은 하천을 ‘거레’라 하여 옛사람들은 빨래터로 이용하였다. ‘거레’에 접미사 ‘~앙’이 붙으면 ‘거랑’이 되어 전국 각처에 ‘○○거랑’이라는 지명이 수도 없이 많다.  

또 ‘거레’가 연체형이 되면 ‘~걸’이 되어 물가를 의미한다. 두 골짜기(개울)의 물이 합쳐지는 곳을 ‘쌍걸이’, ‘두물걸이’ 등의 지명이 되고, 화정동의 천내(川內)봉수대의 옛 지명 ‘천내(川內)’도 ‘걸(골)안이’ 또는 ‘물안’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어물동의 ‘어물(於勿)’에 대해서 배우리 선생은 「우리 땅이름의 뿌리를 찾아서」에서 ‘어울물’이 ‘어우물’로 되었다가 ‘어물’로 된 것으로 보았고(2권,115), ‘늘물’로 보았다. 지형지세가 급하지 않고 길게 늘어진 형세이고, 지명에서 ‘어(於)’자의 인용은 ‘늘어진 곳’에 주로 차자(借字)됨으로 ‘늘물’로 본 것이다. 어쨌든 어물동의 개울물은 황토전 마을 서편 물청치이의 굼 깊은 골짜기에서 온갖 이야기 꺼리들을 싣고 흘러와서 복골(洑谷) 거랑의 냇물과 금천하류에서 만나 도란도란 속삭이며, 구암·당사 앞바다로 흘러든다.

 

출처; 울산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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