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심곡사 칠층석탑 출토 금동불감 및 금동아미타여래칠존좌상
다시 세상에 나툰 석탑 속 일곱 부처님
한국불교조각사 연구에 있어
조선 초기 외래 양식 전래와
수용과정 조명에 중요 사료
불상7구 모두 한 탑 한 홈의
한 불감에서 온전한 형태로
발견되었다는 것도 큰 가치
익산 심곡사 칠층석탑 출토 금동아미타여래칠존좌상(조선 초기, 보물). 한국불교조각사 연구에서 조선 초기 외래 양식의 전래와 수용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성보다.
익산 심곡사는 미륵산 중턱 깊숙한 곳에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사찰로 호젓한 산길에서 만나는 시원한 바람이 살갗으로 스며드는 듯하다. 2012년 이 조용한 사찰에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일이 발생했다. 바로 심곡사 경내에 있는 칠층석탑 안에서 불상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필자도 이 소식을 듣고 기대감으로 부풀어 한걸음에 달려갔다. 심곡사에 도착해 예술적으로 뛰어난 불상들과 조우했을 때 느꼈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 크지 않은 탑 안에 이렇게 많은 불상이 납입된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심곡사는 통일신라시대 문성왕(839~856)때 창건되었으며, 19세기에 중건됐다. 100여 년 전 200m쯤 떨어진 산등성이에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 왔다고 전하는데, 이때 대웅전 앞마당에 있는 칠층석탑도 함께 이전된 것으로 보인다. 이 석탑은 조선 초기에 조성된 탑으로 규모는 크지 않다. 전체적으로 단아한 느낌을 주며 좁은 7층의 탑신을 밀집하게 쌓아놓은 형태이다.
출토 당시 칠층석탑 불상 모습.
석탑 사리공 불감 불상 7구 발견
2012년 기울어진 칠층석탑을 보수하기 위해 해체 수리를 하면서 익산 심곡사 칠층석탑 출토 금동불감(金銅佛龕) 및 금동아미타여래칠존좌상(金銅阿彌陀如來七尊坐像)이 세상에 드러났다. 탑을 다 해체하고 마지막 지대석 윗면이 드러났을 때, 사리를 넣기 위해 마련한 사각형의 홈(사리공, 25.0⌒24.0cm, 깊이 18.0cm)에서 불상 7구가 불감 안에 놓여 있었다. 불상이 발견된 사리공의 위치가 지표면과 거의 같아, 오랜 세월 동안 빗물과 흙 등에 범벅이 된 상태였기 때문에 일부는 훼손된 상태였다.
불감 앞쪽에는 아미타여래와 관음렛대세지보살상으로 구성된 삼존불이, 뒤쪽에는 여래상 2구와 관음ㆍ지장보살상 4구가 안치되어 있었다. 뒤편 4구의 상들보다 앞에 안치된 삼존상이 조금 더 큰 편이다. 모두 개금을 한 이 상들은 흙 속에 매몰되어 있던 부분에는 금박이 많이 남아 있어 반짝반짝 빛났다.
원ㆍ명대 티베트 라마불교 영향
앞쪽에 있는 삼존불은 두 보살상이 본존을 향하고 있으며, 가운데 상은 본존불로 다른 보살상보다 약간 크게 조각되었다. 가운데 금동아미타불상(높이 14.5㎝)은 갸름한 얼굴에 명상에 잠긴 듯한 표정이다. 머리 정상에는 뾰족한 정상계주가 표현되었고, 노출된 가슴에는 유두(乳頭)를 도드라지게 표현하였다. 옷은 한쪽 어깨를 드러낸 편단우견식으로 입었다. 가슴 앞을 사선으로 가로지른 대의 자락은 바깥으로 접혀져 있는데, 주름을 자연스럽게 표현하여 신체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뒤로 넘겨진 옷자락도 너풀거리며 율동적으로 내려오는 세련된 조각기법이 돋보인다. 상의 뒷면은 일부 깨어져 있으며, 내부는 머리까지 거의 비어 있는 기법으로 주조되었다.
설법인을 짓고 있는 두 협시보살상은 본존불과 신체비례와 얼굴 표현이 거의 흡사하다. 대좌 아래에서 솟아오른 한 줄기 연꽃 위에 발을 얹고 있는데, 유희좌의 포즈로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장신구와 천의 표현 등은 매우 화려하다.
좌협시인 금동보살상(높이 12.4㎝)은 가슴과 배 부분의 양감이 풍부하다. 보관은 삼산관 형태인데, 좌우 대칭적으로 뻗어나간 덩쿨 자락 끝에 구슬을 달아 장식하고 있다. 왼손을 올리고 오른손으로는 천의 자락을 잡고 있다. 우협시 금동보살상(높이 12.4㎝)은 오른손을 올리고, 왼손으로는 천의자락을 잡고 있어 앞 보살상과는 대칭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이 두 보살상은 거의 비슷한 모습이다. 우협시 보살상의 보관에 화불이 표현되어 있어 관음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전통 불상 계승
삼존불 뒤에는 불ㆍ보살상 4구가 안치되어 있다. 향우측 끝에 정병을 든 관음보살상(높이 7.35cm)은 보관과 영락 등에 표현된 구슬형 장식이 묵중한 느낌을 준다. 상의 뒷면까지 허리 중앙에 영락 장식을 하였고, 발목 근처에 모아지는 대의 끝자락에 문양을 새겨 화려함을 강조하였다. 향좌측 끝에 두건을 쓴 금동지장보살상(높이 6.84㎝)은 두 손으로 보주를 들고 있다. 이 두 보살상 사이에는 아미타구품인을 대칭적으로 짓고 있는 두 구의 불상을 안치했다. 이 두 금동불상(높이 7.26㎝)은 크기와 얼굴, 옷의 표현에서 서로 같다. 수인은 설법을 하였는데, 대칭적인 모습이다. 가슴에 卍자가 선각으로 새겨져 있다.
이들 4구의 존상들은 앞에 안치된 아미타삼존상과는 그 모습에서 차이가 나서 함께 조성된 상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둥근 머리모양에 얼굴은 둥글고 납작한 편이며, 어린아이 같은 얼굴이다. 육계는 낮고, 안정적인 신체비례감을 보인다. 앙복련(仰覆蓮)으로 구성된 2중 대좌 형태이며, 대좌 끝에는 연주문(連珠文)이 표현되어 있다. 이처럼 연주문이 표현된 연화대좌는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에 유행했던 형식이다.
칠층석탑에서 나온 불감.
이 7구의 불상들은 불감 안에 놓여 있었다. 불감의 밑면에는 두 줄로 불상 7구를 고정했던 구멍이 흔적으로 남아 있다. 뒤에 4구, 앞에 3구를 불감 안에 봉안했던 것으로 실제 발견된 불상과도 일치하고 있다. 불감은 금동판에 타출기법으로 여러 불보살상과 문양들을 조각해 이어 붙인 형태로 지붕이 없다. 이는 본래부터 불상을 탑에 봉안하기 위한 외함으로 조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짝은 2중의 동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 개의 판을 마주 붙여 고정하였다. 불감의 몸체 내부 중앙벽에 아미타 삼존불을 타출기법으로 새겼다. 그 위에 구름문양이나 옷주름을 음각선으로 새겨 세부적으로 간략하게 시문하였다.
이렇게 불감 밑면에 상들을 고정시켜 봉안한 것은 고려 후기에 조성된 구례 천은사 불감의 예에서도 나타난다. 금동 불감의 중앙벽을 타출기법으로 사경화와 같이 불보살상을 표현한 것도 고려 말 조선 초 불감에서 많이 보이는 특징이다.
앞쪽의 아미타삼존불에서는 중국에서 유행했던 원·명대(元·明代) 티베트 라마불교 불상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우견편단의 착의법, 높고 뾰족한 정상계주 표현, 가슴에 두드러진 유두의 표현, 두 보살상의 높고 화려한 보관과 복잡한 영락 장식 및 귀걸이 등의 표현법이 그 특징이다. 이에 비해 뒤에 안치된 지장보살상과 관음보살상, 2구의 여래상은 고려시대의 전통양식을 따르고 있다. 양쪽 어깨를 덮은 옷을 입고 있으며, 둥근 얼굴과 낮은 육계, 단순화시킨 영락 표현 등에서 고려시대 불상의 전통양식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초기에는 이러한 두 가지 계통의 불상이 함께 조성되었으므로, 이 7구의 불보살상들과 불감은 조선 초기에 심곡사 칠층석탑을 조성할 때 탑에 봉안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불감은 고려시대 제작한 것을 이후 탑에 봉안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탑에 진신사리 대신 불상 봉안
이 불상들은 작은 금동불상이지만 당시 불상의 불복장 의식 예법을 따르고 있다. 탑 안에 불상을 봉안하는 것을 마치 법당에 불상을 봉안과 같이 복장을 하고 마지막 의례인 점안을 하여 탑에 안치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탑에 다른 사리장엄구를 넣지 않고 불상을 봉안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탑에 불상만을 봉안한 것은 복장을 한 불상이 완벽한 신앙의 중심이 되었으므로, 불상이 진신사리를 대신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진신사리를 구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탑 안에 불상을 봉안하였던 현실적 이유가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익산 심곡사 칠층석탑 봉안 불상은 한국불교조각사 연구에서 조선 초기 외래 양식의 전래와 수용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상이다. 또한 탑이라는 분명한 출토지에 7구의 불상이 모두 한 불감 내 온전한 형태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 가치가 크다.
이 불상을 조성한 발원자들은 무슨 바람으로 탑 안에 불상을 봉안하였을까. 불상을 조성한 공덕으로 사랑하는 가족이 극락정토에 태어나고, 현세에서도 늘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염원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가족을 넘어 세상을 위해서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였을 것이다.
이분희 문화재전문위원ㆍ불교중앙박물관 팀장 [불교신문 37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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