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는 모성의 상징

‘죽산댁 장광의 장독들은 삼백예순날 늘 빛이 나는데

 햇빛나면 날 좋다고

 구름끼면 날 궂다고

(중략)

 장독 위에 살구꽃 터지는 봄엔

 꽃송이들 온통 장독에 비쳐

 구름처럼 노을처럼 이글대는데

 한여름 진간장이 익을 무렵이면

 온 동네 장내로 출렁이는데

 장독의 뚜껑을 가만히 열면

 숯검정 붉은 고추 떠 있는 사이

 살구꽃 하얀 꽃송이가

 삭은 설움 향기 되어 돌고 있는데’ - 임보, 「죽산댁 장독」중

 

한국인에게 장독대는 부엌만큼이나 모성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앞에 일부 인용한 임보 시인의 「죽산댁 장독」에는 장독대에 대한 우리의 추억이 모두 담겨 있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의 기억 속의 장독대는 고향집 어머니가 늘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으며 가족을 위해 장을 간수하는 곳이다. 요즘처럼 다양한 먹거리가 없던 시절에 장은 가족의 입맛을 책임지는 기본반찬이며 조미료였다. 필요할 땐 언제든 숟가락에 보시기 들고 달려가면 구수한 된장찌개도, 칼칼하고 속 든든한 장떡도, 철따라 간장, 고추장에 무쳐낸 나물도 뚝딱이었다.

 

이러니 장을 맛있게 하고 그 맛을 지키는데 어머니들이 온 정성을 쏟는 것이 당연했다. 장맛이 변하면 집안에 흉한 일이 생긴다 하였으니 행여 집안에 일이 생길까 하여 장독대를 정갈하게 간수 하였으며 정화수를 바쳐 기도하며 가족의 무병장수, 도시로 나간 아들의 건강과 성공을 비는 치성을 드리는 장소로서 신성한 곳이기도 했다. 가장이 먼 길 갔다가 돌아오는 날이면 행여나 보일까 장독대에 올라가 목을 빼며 신작로를 바라보던 기다림의 장소였으며, 슬플 때 마음을 달래며 인고의 세월을 보내던 곳이었으며, 간장독 뚜껑을 열면 시커멓고 반드레한 간장에 둥둥 떠 있는 숯과 고추 사이로 장독대 옆에 핀 살구꽃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비쳐지던 정서가 담긴 장소이기도 했다.

사람은 자연의 힘을 빌 뿐

『동의보감』에 ‘오래된 장은 오장을 튼튼하게 하고 불안한 증세를 완화해 준다’고 그 효능을 설명하고 있는 장을 담가먹기 시작한 것에 대한 기록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삼국지』위지 동이전에 ‘고구려인은 장 담고 술 빚는 솜씨가 뛰어나다’고 한 기록이 있고, 고구려 안악고분 벽화에도 장독으로 추정되는 독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3세기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장 만드는 법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554년 편찬된 『구황촬요(救荒撮要)』로서 8가지 장류제조법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이후 홍만선의 『산림경제』, 빙허각(憑虛閣) 이씨의 『규합총서』 등에도 장 만드는 법이 기록되어 있다.『규합총서』에서 빙허각 이씨는 ‘장 담그는 물은 특별히 좋은 물을 가려야 장맛이 좋다. 여름에 비 갓 갠 우물물을 쓰지 말고 (중략) 장 담근 독은 볕바르나 그윽한데 놓되 독이 기울면 물이 괸 편으로 흰곰팡이가 피니 반듯하게 놓아라.’는 등 구체적인 사항까지 당부하고 있어 장 담그는 일에 얼마나 세심한 신경을 기울여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 음식에 다양한 맛의 기본이 되어주는 장이지만 그 재료는 단순하여 콩, 소금이 전부다. 그러나 이 단순한 재료로 장을 담는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콩을 불리고 익히고 메주로 빚어 잘 말려 띄우고 난 후에야 비로소 좋은 날을 잡아 장을 담그니, 콩을 불리는 것에서 시작하여 장을 담그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만 해도 두 세 달이다. 그러나 장이 진실로 장이 되는 과정은 이제부터다. 시간이 흐르며 바람과 햇볕과 불과 물이 어우러져 숙성되면서 발효를 거치며 장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이러니 어찌 장을 사람이 담는다고 할 것인가. 사람의 역할은 시간과 더불어 가며 자연의 힘을 빌리는 것뿐이다.

 

장독대에 담긴 과학

장을 담고 관리하는 과정은 단지 관습이 아니라 과학적 이유를 가지고 있다. 맑은 공기와 햇빛을 쐬는 것은 장이 변질되지 않고 잘 숙성되는 데 꼭 필요하고 장독을 항상 깨끗이 하는 것은 잡균을 막아 준다. 장을 담근 후 숯, 고추 등을 띄우는 것은 장맛이 좋아지라는 의미도 있지만 숯이 곰팡이와 냄새를 흡입하여 장물을 깨끗하게 하는 역할을 하며, 고추의 매운 맛은 소독작용 뿐 아니라 고추의 비타민이 맛과 영양에 보탬을 주기도 한다.

 

완성된 장은 옹기에 보관한다. 흙을 구워 만든 옹기는 물이 새지 않으면서도 미세한 기포가 미생물, 효모 등이 통과할 수 있고 온도, 습도를 흡수 조절하는 성질이 있어 발효식품을 썩지 않고 오랫동안 숙성시키는데 가장 적합한 그릇이다. 장을 담은 크고 작은 옹기는 장독대에 자리 잡는다. 장독대는 장을 보관하기에 좋을 뿐 아니라 장이 맛있게 익어야하므로 그 위치가 중요하니, 배수가 잘되도록 약간 높은 곳 혹은 지면에서 20∼30㎝ 정도 높이로 호박돌과 자갈을 깔고 그 위에 여러 개의 넓적한 판석을 깔아 만든다. 이 넓적한 돌들은 낮에 햇볕을 받아 장독을 따듯하게 데워주고 밤에는 차게 해주어 그 온도 차이가 장의 발효를 도와 장의 맛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

 

장독대로 살림 규모를 판단하다

장독대의 규모와 장독의 수는 식구 수와 집안의 행사 규모, 드나드는 손님의 수에 따라 결정되었다. 큰독, 중간독, 작은독, 단지에 이르기까지 적으면 서른 개, 많으면 백 개를 헤아리는 정도였으니 장독대를 보면 그 집의 살림규모와 솜씨는 자연히 가늠되었다.

 

장맛과 관련한 속담도 여럿이다. ‘장맛 보고 딸 준다’는 말은 장이 맛있는 집은 정상적인 삶을 누리고 기운이 번성하는 집이므로 딸을 시집보내도 문제가 없다는 의미이고 ‘한 고을의 정치는 술맛으로 알고 한 집안의 일은 장맛으로 안다’고 했으니 이는 술이나 장은 여유롭고 편안해야 안정되게 좋은 맛을 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대개 장독대는 부엌에서 드나들기 좋고 바람과 햇볕이 잘 드는 곳이며 주변에는 텃밭이나 꽃나무, 유실수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구례 운조루나 함양 정여창 선생 고택의 장독대는 안채 안마당에 자리 잡았고 논산의 명재고택 장독대는 안채 뒤꼍 야트막한 동산에 자리 잡고 있다. 이중 명재고택의 야트막한 뒷동산 위에 넓적한 자연석을 깐 장독대는 시각적으로도 특히 아름다워서 양명하고 바람이 솔솔 불어 장이 절로 익는 것이 보이는 듯하다. 실제 이 댁의 장독대는 그 정취와 더불어 장맛이 좋기로 유명했다.

장독대의 회복은 잃어버린 정성과 마음의 회복이다

이제 집에서 장을 담는 모습을 보기란 쉽지 않다. 숟가락과 보시기를 들고 장독대로 종종걸음 치던 장면은 사라진지 오래다. 이제 우리의 장독대는 마트의 진열장이요 가정의 냉장고다. 현대의 장독대에 보관된 것은 기계로 배합되고 익혀져 플라스틱 통에 담긴 장이다.

 

우리는 장과 장독대와 함께, 장을 만드는 ‘정성’과 자연과 더불어 기다리는 ‘마음’ 그리고 간장과 장에서 배어나고 우러나는 ‘깊은 맛’도 함께 잃어버렸다. 우리에게서 장독과 장독대를 빼앗아간 것은 편리함과 속도 그리고 수익성을 으뜸으로 여기며 개발시대를 달려 온 우리의 가치관이다. 그 결정체가 무엇 하나 품고 담을 공간 없는 우리의 아파트 문화임을 부정할 수 없다.

 

다행히 최근에는 삶의 본질을 회복하고 먹거리와 삶터에서 몸이 편안한 속도를 찾으려는 이들이 젊은 층으로부터 점점 그 수를 늘이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삶터에 마당을 회복하고, 아이들이 뛰어 놀게 하며 빨랫줄과 장독대를 담고자 한다. 또한 그들은 자신과 가족의 몸을 패스트푸드에 맡기기를 거부한다. 속도로 인해 병든 현대사회에서 조금씩 회복의 욕구가 커져가고 있는 슬로푸드의 정점이 바로 장이 아닐까. ‘느림의 미학’과 함께 장독대에 담겼던 정성과 마음이 되살아나기를 기대한다.

 

글. 장명희 (사)한옥문화원 원장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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