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원왕(安原王)


안원왕(安原王)은 이름이 보연(寶延)으로 안장왕(安臧王)의 아우이다. 키가 7척 5촌이고 큰 도량이 있어 안장왕(安臧王)이 그를 사랑하였다. 안장왕(安臧王)이 재위 13년에 서거하고 아들이 없는 까닭에 즉위하였다. (梁) 고조(髙祖)가 조서를 내려 관작을 잇게 하였다.

2년(532) 봄 3월에 (魏) 황제가 조서를 내려 사지절(使持節) 산기상시(散騎常侍 영호동이교위(領護東夷校尉) 요동군개국공(遼東郡開國公) 고구려왕(髙句麗王)을 삼고, 의관·수레·깃발의 장식을 내렸다.

여름 4월에 사신을 (梁)에 들여보내 조공하였다.

6월에 사신을 (魏)에 보내 조공하였다.

겨울 11월에 사신을 (梁)에 들여보내 조공하였다.

3년(533) 봄 정월에 왕자 평성(平成)을 책립하여 태자로 삼았다.

2월에 사신을 (魏)에 보내 조공하였다.

4년(534)에 동위(東魏)가 조서를 내려 왕에게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을 더하고, 나머지는 모두 과거와 같게 하였다.
사신을 (魏)에 들여보내 조공하였다.
5년(535) 봄 2월에 사신을 (梁)에 들여보내 조공하였다.

여름 5월에 나라 남쪽에 홍수가 나서 민가가 물에 떠내려가거나 잠기고 죽은 자가 2백여 명이었다.

겨울 10월에 지진(地震)이 일어났다.

12월에 천둥이 치고 큰 전염병이 있었다.

6년(536) 봄과 여름에 큰 가뭄이 들어 사신을 보내 굶주린 백성을 어루만지고 구제하게 하였다.

가을 8월에 풀무치(蝗) 피해가 있었다.

사신을 동위(東魏)에 들여보내 조공하였다.

7년(537) 봄 3월에 백성이 굶주리므로 왕이 돌아다니며 어루만지고 구제하였다.

겨울 12월에 사신을 동위(東魏)에 들여보내 조공하였다.

9년(539) 여름 5월에 사신을 동위(東魏)에 들여보내 조공하였다.

10년(540) 가을 9월에 백제가 우산성(牛山城)을 포위하므로 왕이 날쌔고 용맹한 기병 5천을 보내 공격하여 달아나게 하였다.

겨울 10월에 복숭아와 오얏 꽃이 피었다.

12월에 사신을 동위(東魏) 들여보내 조공하였다.

11년(541) 봄 3월에 사신을 (梁)에 들여보내 조공하였다.

12년(542) 봄 3월에 큰 바람이 불어 나무가 뽑히고 기왓장이 날아갔다.

여름 4월에 우박이 내렸다.

겨울 12월에 사신을 동위(東魏)에 들여보내 조공하였다.

13년(543) 겨울 11월에 사신을 동위(東魏)에 들여보내 조공하였다.

14년(544) 겨울 11월에 사신을 동위(東魏)에 들여보내 조공하였다.

15년(545) 봄 3월에 왕이 서거하니 이름을 안원왕(安原王)이라 하였다. 이 때가 양(梁) 대동(大同) 11년, 동위(東魏) 무정(武定) 3년이었다. 양서(梁書)에 이르기를 “안원왕(安原王)이 태청(太淸) 2년(548)에 죽으니 그 아들로서 영동장군(東将軍) 고구려왕(髙句麗王) 낙랑공(樂浪公)을 삼았다.”고 하였으나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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