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권(卷第四十五)


열전(列傳) 제오(第五)

을파소(乙巴素)·김후직(金后稷)·녹진(祿眞)·밀우(密友)·유유(紐由)·명림답부(明臨荅夫)·석우로(昔于老)·박제상(朴堤上)·귀산(貴山)·온달(溫達)


을파소(乙巴素)


을파소(乙巴素)는 고구려 사람(髙句麗人)이다.

국천왕(國川王) 때 패자(沛者) 어비류(於畀留)·평자(評者) 좌가려(左可慮) 등은 모두 외척으로 권력을 마음대로 하였는데, 행동에 의롭지 못한 점이 많아 국인(國人)이 원망하고 분하게 생각하였다. 왕이 노하여 그들을 죽이려 하자, 좌가려(左可慮) 등이 모반하였고, 왕이 그들을 죽이거나 귀양보냈다.

마침내 다음과 같이 영(令)을 내렸다.
“요즘 총애로 관직을 주고 덕(德)이 없는 자를 관위(官位)에 나가게 하니, 해독이 백성들에게 미치고 우리 왕가(王家)를 흔들리게 하였다. 이것은 내(寡)가 현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너희(汝) 4부(部)는 각각 현명하고 어진 아랫사람을 천거하라!”
이에 4부(四部)는 모두 동부(東部) 안류(晏留)를 천거하였다.
왕이 그를 뽑아 국정(國政)을 위임하려고 하였는데, 안류(晏留)가 왕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저는 남보다 못나고 어리석으니, 진실로 나라의 정사(政事)에 참여하기에 부족합니다. 서압록곡(西鴨淥谷) 좌물촌(左勿村)을파소(乙巴素)유리왕(琉璃王) 대신(大臣) 을소(乙素)의 후손으로 성격이 강직하고 지혜와 생각이 깊습니다. 세상에 등용되지 못하고, 힘써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대왕께서 만약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신다면, 이 사람이 아니고서는 어렵습니다.”
왕이 사신(使臣)을 보내어 겸손한 말로 예의를 다하여 을파소(乙巴素)를 초빙하였다. 중외대부(中畏大夫)로 삼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외람되게(叨)도 왕위(先業)를 받아 신민(臣民)의 윗자리에 있지만, 덕이 없고 재주가 부족하여 다스리는 데 어려움이 있소. 선생은 능력을 감추고 외진 곳에 계신지 오래되었소. 지금 나를 버리지 마시고 바로 와주시니, 비단 나만 기쁘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사직(社稷)과 백성의 복이오. 가르침을 받고자 하니, 공(公)은 그 마음을 다해 주기를 바라오.”
파소(乙巴素)는 비록 나라를 위해 일할 생각이 있었지만, 받은 관직이 일을 도모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저는 재능이 없고 미련하여 감히 지엄한 왕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대왕께서 현명하고 어진 이를 뽑아 높은 관직(髙官)을 주시어 큰 성과를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왕은 그 뜻을 알고, 이에 국상(國相)으로 임명하고, 영(令)을 내려 정사(政事)를 맡아보도록 하였다.
이에 조정의 신료(朝臣)와 국척(國戚)은 을파소(乙巴素)가 신진(新進) 관료로 구신(舊臣)을 헐뜯는다고 생각하고, 그를 미워하였다.
왕은 교서(敎書)를 내려
“귀천(貴賤)을 막론하고 진실로 국상(國相)을 따르지 않는 자는 족(族)을 멸하겠다!”고 하였다.
파소(乙巴素)가 물러나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때를 만나지 못하면 은둔하고 때를 만나면 벼슬을 하는 것이 선비의 떳떳한 도리이다. 지금 왕께서는 나를 깊은 뜻으로 대우해 주시고 계시니, 어찌 예전의 은둔을 다시 생각할 수 있겠는가!” 이에 정성을 다하여 나라의 일을 수행하였다. 정치와 교화를 밝히고 상벌(賞罰)을 신중히 하였으니, 백성들이 편안하였고 온 나라가 무사하였다.
왕이 안류(晏留)에게
“만약 그대의 한 마디가 없었다면 나는 을파소(乙巴素)를 얻어 함께 다스릴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여러 공적이 쌓인 것은 그대의 공(功)이다.”라고 하고, 이에 대사자(大使者)로 삼았다.
산상왕(山上王) 7년(203년) 8월 을파소(乙巴素)가 죽으니, 나라 사람들이 통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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