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이 이 나무에 공을 주노라

 

“짐이 이 나무(木)에 공(公)을 주노라” 소나무를 이르는 말이다.
진시황이 태산에 올랐다가 폭풍우를 만나 소나무 아래서 비를 피한 뒤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大夫(대부)라는 벼슬을 내려 소나무는 처음 ‘木公’으로 불렸다. 훗날 두 글자가 합쳐져 ‘松(송)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소나무에 벼슬을 내려준 이야기가 있다. 조선 시대 세조가 속리산 법 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輦, 연)가 소나무 밑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소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들어 올려 어가(御駕)를 무사히 통과하게 했다. 이를 기특하게 여긴 세조가 정이품 벼슬(장관급)을 내린 소나무가 ‘正二品松’(정이품송)이다.
  
소나무는 대나무・매화와 함께 歲寒三友(세한삼우)로 늘 푸르러 인간이 닮고자 하는 志操(지조)와 信義(신의)를 상징한다. 꽃말은 ‘변하지 않는 사랑’, ‘不老長生’(불로장생)으로 수령이 길어 회화나 시(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상록침엽수인 소나무는 우리나라 어디를 가나 흔히 볼 수 있으나 지금은 많이 줄었다. 1960~70년대에는 송충이, 1980~90년대에는 솔잎혹파리로 몸살을 앓았다. 얼마전에는 소나무의 에이즈라 불리는 재선충병이 번져 내 고장 월명공원에도 소나무 대신 편백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 소나무는 껍질이 붉은색을 띠고 있어 赤松(적송)이라 하고, 내륙 지방에서 주로 자라므로 陸松(육송)이라 부른다. 이에 비해 해안 지방에서 발견되는 껍질이 검은 海松(해송)이 있다. 굳은 심성을 표현한 金剛松(금강송), 검은 껍질을 빗댄 곰솔(흑송), 흰빛을 띤 白松(백송), 밑에서부터 줄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진 盤松(반송), 기괴한 바위에서 자란 奇巖蒼松(기암창송), 바닷가 모래밭에서 자라서 白砂靑松(백사청송)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을 비롯한 30여 소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수령 600년으로 추정되는 정이품송은 높이 15m, 가지 20m 정도다. 수관(樹冠)이 우산이나 삿갓 모양으로 웅장하며 단아하다.


정이품송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서원리 소나무’(천연기념물 제352호 지정)가 있다. 정이품송과 부부라 하여 ‘貞夫人松’(정부인송)이라고도 한다. 정이품송은 외줄기로 곧게 자란 모습이 남성적이고, 우산 모양으로 퍼진 정부인송은 아름다운 모습이 여성적으로 비유되기 때문이다.

 

정이품송은 1970년 이후 솔잎혹파리병, 1993년, 2007년과 2010년에 돌풍, 2004년 폭설, 2012년 태풍 볼라벤으로 큰 피해를 보아 수세(樹勢)도 좋지 않고 그 모양이 많이 변했다. 얼마 전에는 태풍 카눈으로 또 가지 두개가 부러졌다.
  
세금을 내는 소나무도 있다. 예천의 석송령 소나무(천연기념물 제294호) 이야기다. 李秀睦(이수목)이라는 분이 소나무에 ‘石松靈’(석송령)이라는 이름을 짓고 호적을 만들어 토지(6,248m2)를 상속시켰다. 마을 사람들이 토지를 공동 관리하고 그 임대 수익금으로 종합토지세를 내고 학생에게 장학금도 지급하고 있다.


2010년 한국의 명목 시리즈 우표로 발행된 괴산 삼송리 소나무는 2012년 7월 밑동이 땅에서 뽑혀 있다가 그해 8월 태풍 볼라벤에 의해 완전히 뽑혔다. 결국 나무가 고사해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상실해 2014년 12월 천연기념물(제290호)에서 해제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고별 제사를 지냈다. 쓰러진 나무는 방부 처리돼 그 자태는 볼 수 있다.


지난해에는 울진 산불에 금강송을 화마로부터 지켜내는 데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1993년 발행한 보통우표 160원권은 우리 민족의 꿋꿋한 기상을 나타내고 있는 소나무 중에서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된 정이품송(正二品松)을 도안으로 선정했다. 한국의 명목 시리즈로 괴산 삼송리 소나무, 제주 산천단 곰솔 군, 하동 축지리 문암송을 선정하여 2010년과 2011년에 우표로 발행하였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안익태 작곡 애국가 2절

 

출처. 인터넷우체국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