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탈코라 석굴

 

아잔타 엘로라 지역 석굴 건립에 중요한 역할

 

인도 서부 사트말라 산맥에 위치한 피탈코라 석굴은 암석을 깎아 조성한 인도 초기 건축물이다. 사진은 전체적인 석굴 모습.  사진=문명대

 
인도 서부 사트말라 산맥에 위치
동굴 대부분 초기불교 시대 조성

오랫동안 노출돼 훼손 심각하나
고대 왕조 특징 알 수 있는 명문
빗물 수확 시스템 조각 남아있어

피탈코라(Pitalkhora) 석굴은 사트말라(Satmala) 지역의 돌에 새겨진 가장 그림 같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인도 마하라슈트라 서부 가트의 사트말라 산맥에 있는 피탈코라 동굴은 기원전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40개의 암석 절단 동굴 기념물로 구성된 고대 불교 유적지로, 인도에서 암석을 깎아 만든 건축물의 가장 초기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동굴은 다양한 현무암 암석으로 절단되어 있지만 일부 동굴은 부서져 손상됐다. 14개 중 10개는 차이티야(250개의 봉헌 스투파)이고 나머지는 비하라이다. 모든 동굴은 초기불교 시대에 속하지만 잘 보존된 불화들은 대승 불교시대에 조성된 것이다.

자연의 조각들은 좁은 계곡에 이 산들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다. 피탈코라 석굴은 삿쿤다(Satkunda)로부터 6km떨어진 아우랑가바드(Aurangabad) 제한구역의 카나드탈루카(Kannad taluka)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아잔타(Ajanta)에서 서남쪽으로 80Km이며, 엘로라(Ellora)에서 북서쪽 37Km 떨어져 있다. 이곳은 사타라(Satara)와 나식(Nasik)의 짐수레들이 피탈코라 옆의 인디야드리(Indhyadri)언덕을 가로질러 파이탄(Paithan)으로 가던 고대 무역 경로에 놓여있다. 이들은 아우랑가바드(Aurangabad)에서 약 80Km 떨어져 있으며, 마지막 11km는 수소가 이끄는 짐수레에 의해 갈 수 있다. 콜라(khora)라는 이름은 다른 모든 석굴 들이 산에 위치해 있듯이 아마 콜라라는 지명에 의해서이거나 이것이 매우 독특한 계곡이기 때문일 것이다.

피탈코라 제4굴에 있는 코끼리와 신장상.  사진=위키디피아 

대승 불교시대 조성된 석굴 벽화.  사진=문명대

 
처음에는 데스판데(M.N.Desphande)가 그의 저서에 ‘데칸의 피탈코라 석굴(the Rock Cut Caves of Pitalkhora inthe Deccan)’이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여기에 석굴들을 이렇게 저서의 제목으로 사용하면서 그 존재를 증명해왔다. 통치자였던 핑갈라(Pingala)를 언급하였는데 그는 빈두사라(Bindusara, B.C 283)의 16번째 왕좌를 이어온 사람이었다.

피탈코라 석굴의 조성 시기는 매우 다양하다. 대부분 학자들은 석굴의 조성 시기를 채색된 명문 또는 조각된 흔적들로 인해 모두 다르게 이야기하였다. 고할레(B.G.Gokhale)는 이 석굴의 1번부터 4번 석굴의 조성 시기를 B.C 2세기로 보았고, 6번에서 9번의 석굴의 조성 시기는 B.C 1세기로 보았다. 10번부터 16번까지는 A.D 1세기와 2세기라고 주장하였다. 부르게스(Burgess)와 포거슨(Fergusson)에 따르면 피탈코라 석굴은 마우리아 왕조의 특징이 보이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명문이 발견된 가장 이른 시기일 것이다. 석굴들이 B.C 250년부터 B.C 200년 까지라고 하였다. 반다카르(Bhandarkar)는 그들의 음각기법 특징의 양식에 기초하여 B.C 2세기부터라고 하였다.

굴 내부에 있는 차이티야. 

석굴에 남이있는 채색 부처님 벽화.  사진=위키디피아 


이 피탈코라 석굴은 오랫동안 노출돼 있었기 때문에 훼손이 매우 심각한 상태다. 하지만 기록된 명문은 아직 과거를 보여준다. 석굴에는 14개의 명문이 있는데, 피탈코라 석굴 중 13개는 정확하게 기둥과 벽, 상인방, 그리고 4번 비하라의 방 부분으로 부터 떨어진 곳에 남아있다. 이 4번 방의 약사 상 오른편 야자나무 중 하나는 현재 뉴델리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하나는 매우 부주의하게 휘갈겨 쓴 것처럼 기둥 위 여기저기에 남아있다.

조각 가운데 코끼리 조각상, 두 명의 군인 중 하나는 온전한 상태이고, 손상된 가자 락쉬미(Gaja Lakshmi) 조각이 있는데, 고대 빗물 수확 시스템을 보여준다. 락쉬미는 기원전 6세기 조각에서 여신은 왼손에 연꽃을, 오른손에 연꽃 풍요의 뿔을 들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녀의 발치에는 두 마리의 사자가 있고, 두 마리의 코끼리는 생명수로 그녀를 목욕시키고 있으며, 그녀의 왼쪽과 오른쪽에는 파리채를 들고 있는 두 명의 여성 수행원이 있다. 이 석굴은 아잔타, 엘로라 지역의 석굴 건축 건립시기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피탈코라 석굴은 모두 13개이다. 석굴들은 양쪽 계곡에 제1~9호 굴과 제10~13호 굴로 나뉘어져있다. 남향의 북쪽 계곡에는 치아티야굴과 8개의 비하라굴이 있는데, 이곳 석굴들은 대부분이 무너진 채로 방치되어 있다.

석굴 정면은 원초적 인도 석굴 모습으로서 출입구 위에 아치형 지붕 윤곽선에 채광창을 뚫은 것이다. 이러한 양식은 인도 전역의 석굴에서 전면에 뾰족한 아치 장식으로 채광창을 만든 원형인 것으로 생각된다.

차이티야 석굴은 북쪽 기슭의 제3호 굴과, 남쪽 기슭에 있는 10, 12, 13호굴이다. 그리고 제11호 굴은 3개의 스투파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것들은 모두 비하라이다. B.C 1세기의 것으로 보이는 제3호 굴은 최초기의 특징을 지니는데 정면에 장벽이 없고 기둥은 약간 안으로 기울어져 있으며 볼트 천장에 목제 서까래를 대고 있었던 듯하다. 벽면 일부에 남아있는 벽화는 굽타 후기의 양식이다. 같은 무렵의 제4호 굴은 기단 전면에 새겨진 거대한 아홉 마리의 코끼리가 석굴을 버티고 있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방의 천장이 볼트인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피탈코라 석굴은 초기불교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석굴이라고 할 수 있다.

문무왕 동국대 와이즈캠퍼스 외래교수 [불교신문37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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