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자태가 담긴 천하 명주
이름은 ‘연꽃 향기가 나는 술’이라는 의미지만, 하향주는 연꽃 향기가 나지 않는다. 연꽃을 재료로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찹쌀만 사용하는 술이라서 감칠맛과 향기가 매우 좋아 전통주 중에서도 품격이 높다. 선비의 상징인 연꽃의 향과 성품에 비유할 만하고, 선비들이 좋아할 만한 술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싶다. 연꽃은 군자가 갖추어야 할 성품을 잘 갖추고 있는 데다 은은한 향기와 맑고 깨끗한 자태가 각별해서 선비들이 특히 좋아한 꽃이다.


비슬산 중턱에 자리한 도성암이 병자호란으로 불타버렸다가 신라 성덕왕(재위 702~737) 시절 중수할 당시 인부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토속주를 빚었는데, 이것이 하향주의 시초이다. 하향주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조선 광해군(재위1608~1623) 때 일이다. 당시 비슬산이 천연요새로 국방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군사를 주둔시켰고, 이때 명맥을 이어오던 이 술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주둔 대장이 비슬산 토속주를 왕에게 진상했더니 맛과 향기가 뛰어나 ‘천하 명주’라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그 후 해마다 음력 10월이면 술을 조정에 올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유가면 음리의 밀양 박씨 가문에서 이어온 ‘하향주’
비슬산 토속주는 이후 인근 지역 민가에도 전해져 빚게 되고, 특히 17세기 후반에 입향한 달성군 유가면 음리의 밀양 박씨 종가에서 가양주(집에서 담근 술)로 전승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음리는 밀양 박씨가 살던 마을이다.


하향주는 1996년에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기능보유자 김필순)로 지정됐으며 현재 제조기능 보유자인 박환희 씨가 ‘하향주가’에서 빚고 있다. 음리에서 대를 이어오다 2011년 양리로 장소를 옮겨 양조시설을 새로 갖추고 생산·판매하고 있다.


박 씨는 어머니 김필순(2008년 91세로 별세)으로부터 하향주 담그는 법을 이어받았다. 그는 어린 시절 할머니가 빚는 누룩과 술냄새를 맡으며 자랐지만, 가정을 꾸려 미국으로 건너가 살면서 전통주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그러나 1995년 하향주 맥을 잇기 위해 가족을 두고 홀로 고향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로부터 하향주 제조 비법을 하나하나 터득해갔다.


그는 ‘천하 명주’ 하향주의 맥을 잇는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이 각별하다. 품질을 더욱 개선해 보다 많은 사람이 찾는 세계적 명주로 발전시키겠다는 각오로 전문가도 영입하고 현대적 양조시설을 보완하는 등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

최고 누룩으로 빚는 전통주
비슬산 하향주는 ‘유가주’ , ‘음동주’, ‘백일주’ 등으로도 불리었다. 유가주와 음동주는 동네 이름에서 유래되었고, 백일주는 술이 발효되는 기간이 100일 걸렸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하향주는 직접 만든 밀 누룩과 찹쌀을 주재료로 빚고 물은 비슬산의 지하수를 사용한다. 누룩은 여름철에 만드는데, 박 씨가 밀로 만드는 누룩은 전문가들로부터 최고의 누룩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누룩을 모르면 좋은 술을 빚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하향주는 밑술과 덧술의 과정을 거친다. 밑술은 누룩 가루와 식힌 찹쌀 고두밥을 버무려 상온에서 3~5일 발효시킨다. 덧술은 찹쌀 고두밥에 밑술을 섞어 담근다. 이때 약쑥과 인동초, 들국화를 달인 물을 함께 붓는다. 덧술은 3개월 정도 발효시킨다. 잘 익은 덧술은 1차 여과한 뒤 3개월 정도 냉장 상태에서 숙성시킨 다음, 다시 한 번 정밀하게 거른 후 병에 담는다.

발효 상태 그대로의 풍미
‘하향주’에 대한 기록은 여러 문헌에 등장한다. 「양주방」, 「규곤시의방(음식디미방)」, 「규합총서」, 「산림경제」, 「고사촬요」, 「주방문」 등에 하향주 빚는 법이 나온다. 기록에 의하면 하향주의 밑술은 멥쌀로 구멍 떡이나 송편을 빚어 누룩과 섞는데, 죽과 같이 만들어 빚기도 한다. 그런데 덧술은 한결같이 찹쌀로 고두밥을 지어 밑술과 섞어 발효시킨다고 되어있다. 누룩과 쌀 외에는 다른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는데도 꽃향기나 과일 향기를 느낄 수 있어 ‘방향주’로도 불리었다.


비슬산 하향주는 시판되는 일반적인 청주류와는 다른 점이 있다. 발효 후 술을 거른 뒤 활수, 즉 물을 섞지 않는다. 그래서 도수가 18도로 높다. 멸균처리도 하지 않으며, 누룩도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그래서 하향주는 조미를 하거나 물을 섞고 멸균처리를 하는 술과는 그 맛의 격이 다르다. 발효된 상태 그대로의 맛을 유지하기 때문에 부드러우면서도 풍부하며 향기도 깊다. 찹쌀만 쓰기 때문에 단맛도 나고 풍미가 높다. 연한 노란 빛깔에 약간의 점도가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며 멸균처리를 하지 않아 유통기간이 짧지만, 냉장 보관하면 6개월 정도는 그 맛을 유지할 수 있다.

Tip. 하향주 + 베이컨 모차렐라 치즈 튀김
단맛이 풍부한 하향주의 안주로는 짭조름한 식재료가 궁합이 잘 맞는다. 덩어리 형태의 모차렐라 치즈를 베이컨으로 돌돌 말아 튀긴 후, 바질과 마늘을 더한 토마토소스를 곁들이면 하향주와 균형적인 맛을 이룬다. 주의할 점은 치즈 고유의 향이 덜한 모차렐라를 선택해야 한다는 점. 고르곤졸라와 같이 향이 진한 치즈는 하향주의 은은한 향과 상충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흰살생선 튀김도 달고 점도가 있는 하향주와 잘 어울린다.

글‧김봉규(영남일보 문화부 부장) 사진‧안지섭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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