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국사(駕洛國師)

장유화상(長遊和尙)

 

 

箇中遊戱幾時長

劫外春花數朶香

一坐凝然三昧境

峯靑無際海無央

 

저 가운데 즐기고 농락한 시간이 얼마인가

시간 밖에 봄꽃이 수없이 늘어져 향기롭고 

한 번 앉으니 그렇게 선정삼매의 경계이니 

푸른 봉우리 끝없고 바다는 무궁하다. 

 

김해 장유사(長遊寺)에 모셔진 장유(長遊, 가야 수로왕 ?~199 활동)스님 진영에 실린 금파경호(錦波鏡湖, 1897~1901 활동)스님의 영찬이다. 금파스님은 찬문을 통해 오랜 시간 장유사에 머물면서 선정삼매의 경계에 이른 장유스님을 찬탄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경남 남해안 일대에서 활동했던 금파스님은 1897년 남해 용문사에서 호은문성(虎隱文性, 1838~1918)스님이 화주(化主)를 맡아 일으킨 불사에서 사찰 어른인 회주(會主)로 기록될 정도로 당시 덕망을 받았던 분이다.

 

영찬 말미에 금파스님은 자신을 삼산후학(三山後學)이라 밝히고 있으나 이 삼산이 스승을 지칭하는지 아니면 지리산의 삼신산(三神山)을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여하튼 장유스님 진영은 화풍으로 보아 20세기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영찬도 진영이 제작된 시기에 써진 것으로 생각된다. 장유스님은 진영 왼편에 적힌 “월씨국래가락국사장유대화상(月氏國來駕樂國師長遊大和尙)”이란 영제(影題)가 말해주듯 스님은 가야국 김수로왕의 황후 허왕옥(許黃玉)의 오라비 허보옥(許寶玉)으로 누이와 함께 서역인 월지국에서 와서 가야에 불교를 전파했다.

 

허황후에 관한 이야기는 <삼국유사>의 가락국기(駕洛國記)와 금관성파사석탑(金官城婆娑石塔)을 통해 정사처럼 후세에 전해지는데 비해 장유스님의 이야기는 수로왕의 일곱 왕자를 데리고 수행했다는 지리산 칠불사를 비롯해 스님이 창건했다는 장유사, 서림사(현 은하사), 명월사, 동림사 등 지리산과 남해안 일대의 사찰에 설화처럼 전해지고 있다.

 

이 가운데 장유사는 스님의 진영부터 사리탑(여말선초), 가락국사장유화상기적비(駕洛國師長遊和尙紀蹟碑, 1915년경) 등이 있어 전설처럼 전해지는 장유스님을 역사적 존재로 느끼게 한다. 특히 20세기 전반에 세워진 스님의 기적비에는 스님의 법명이 세속의 명리를 멀리하고 불모산에 들어 세상에 돌아가지 않고 오래 머문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내용과 더불어 가야국 8대 질지왕(銍知王, 451~492 재위)때 장유암을 창건하고 스님의 진영을 성군각에 모셨다는 내용을 기록해 사찰의 유래만이 아니라 장유스님을 예경하는 전통 역시 가야시대부터 지속되었음을 강조했다.

 

해제=정안스님 설명=문화부 문화재팀장 이용윤 [불교신문32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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