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동신 금관 조복 국가민속문화유산2호
소 재 지; 경기 용인특례시 수지구 죽전로 152(죽전동 126)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조선 후기의 문신 심동신(沈東臣, 1824∼?)이 입던 금관조복(金冠朝服)으로, 조복(朝服)이란 문신, 무신들이 동지와 설날, 그리고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또는 종묘와 사직에 제사지낼 때 입었던 옷으로, 머리에는 금관(金冠)을 쓰고 적초의(赤綃衣)를 입었다. 심동신(沈東臣)은 순조(純祖)24년 서울태생으로 본관(本貫)은 청송(靑松), 자(字)는 사경(士敬)이다. 헌종말(憲宗末)∼철종원년(哲宗元年, 1850)에 증광(增廣)에 나아가 을과(乙科)에 급제(及第)하였는데, 심동신(沈東臣)이 참판 당시에 입던 유품으로 금관(金冠), 조복(朝服), 적상(赤裳), 청초의(靑綃衣), 운학금환완(雲鶴金環緩), 패옥(佩玉), 서대(犀帶), 홀(笏) 등이 있다. 금관은 5개의 금색선이 붙여진 오량관으로 나무비녀로 고정시키게 되어있다. 조복인 적초의는 날씨가 더울 때 쓰는 항라로 만든 붉은색의 홑옷인데, 깃은 직선이고 넓은 동정이 달렸으며 소매가 넓고 양 옆이 트였다. 청초의는 조복인 적초의 바로 안에 입는 옷으로 중단이라고 하는데, 청색 명주로 된 홑옷이다. 직선으로 된 깃에 동정이 있고 소맷부리와 도련 등에 검은선이 둘러져 있다. 적상는 조복인 적초의와 같이 항라로 만들었으며, 전체를 잔주름으로 처리하였고 앞 3폭, 뒤 4폭의 양식으로 앞면이 뒷면보다 좁게 되어 있다. 운학금환수는 후수를 말하는데 큰대와 함께 달려 있으며 붉은색 바탕에 파란색, 노란색, 흰색의 세가지 색으로 구름과 학을 수놓았다. 윗부분 양쪽에는 금환 2개가 달려있다. 패옥은 조복을 입을 때 허리 양 옆에 하나씩 달아 늘어뜨리던 장신구로, 한쌍이 온전히 남아있으며 위에는 놋쇠로 된 고리가 달려있다. 서대는 조복에 쓰던 허리띠이며, 홀은 조복을 입을 때 갖추어 양손에 쥐어 예를 표시하던 물건인데, 상아로 만들었다.
금관 국가민속문화유산2-1호
소 재 지; 경기 용인특례시 수지구 죽전로 152(죽전동 126)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조선 후기의 문신 심동신(沈東臣, 1824∼?)이 입던 금관조복(金冠朝服) 중 금관 1점이다. 금관(金冠)은 조복에 갖추어 쓰던 모자로 양관(梁冠)이라고도 하는데, 량(梁)은 모자의 앞면에서 꼭대기를 지나 뒷면까지 연결되어 붙여진 금색선을 말하며, 그 수에 따라 계급이 구분된다. 이 금관은 5량관으로, 1품의 관리가 쓰던 금관이다. 금관의 모양은 원통형인데 머리둘레와 뒷면 전체에 금칠이 되어 화려하고 윗부분은 검은 비단으로 싸여 있다. 뒷면은 금칠한 나무비녀 2개를 꽂아 고정하였고 비녀의 양 끝에는 술을 감아 늘어 뜨렸다. 이 금관은 1948년 석주선씨가 심동신(沈東臣)의 7대 손자며느리로부터 인수받았다고 하며, 1890년대를 전후한 구한말의 유품으로 추정된다.
조복 국가민속문화유산2-2호
소 재 지; 경기 용인특례시 수지구 죽전로 152(죽전동 126)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조선 후기의 문신 심동신(沈東臣, 1824∼?)이 입던 조복(朝服, 적초의)이다. 조복인 적초의(赤綃衣)는 날씨가 더울 때 쓰는 항라로 만들었는데, 항라란 성기게 짠 여름 옷감을 말한다. 적초의(赤綃衣)에 깃은 직선이고 넓은 동정이 달렸으며 소매가 넓고 양 옆이 트였다. 붉은색 바탕에 깃과 도련 소매끝에는 검은색 천으로 싸서 돌렸으며, 붉은색 바탕과 검은천 사이에는 흰 선이 가늘게 끼워져 있다.
적상 국가민속문화유산2-3호
소 재 지; 경기 용인특례시 수지구 죽전로 152(죽전동 126)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조선 후기의 문신 심동신(沈東臣, 1824∼?)이 참판으로 있을 당시에 입었던 유품이다. 적상(赤裳)은 조복의 상의에 붙은 치마로 조복인 적초의와 같은 천으로 만들었으며, 잔주름이 있고 주위에 흑색선을 둘렀다. 앞 3폭, 뒤 4폭의 양식으로 앞면이 뒷면보다 좁게 되어 있다. 위에는 흰색의 명주로 허리를 달아 옆에서 매게 하였으며, 입으면 앞·뒷자락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모양이다.
청초의 국가민속문화유산2-4호
소 재 지; 경기 용인특례시 수지구 죽전로 152(죽전동 126)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조선 후기의 문신 심동신(沈東臣, 1824∼?)이 참판으로 있을 당시에 입었던 옷이다. 청초의(靑綃衣)는 조복인 적초의 바로 밑에 입는 옷으로 청초중단(靑綃中單)이라고도 하는데, 청색명주로 된 홑옷이다. 깃은 직선에 동정이 있으며 소매가 넓고, 길이가 적초의보다 30cm 정도 길다. 소맷부리와 도련 좌우의 터진 부분에 검은선을 둘렀다.
운학금환수 국가민속문화유산2-5호
소 재 지; 경기 용인특례시 수지구 죽전로 152(죽전동 126)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조선 후기의 문신 심동신(沈東臣, 1824∼?)이 참판으로 있을 때 입었던 조복(적초의)뒤에 달린 운학금환수(雲鶴金環綬)로, 조복인 적초의 바로 뒤에 다는 후수(後綬)이다. 후수(後綬)란 뒤에서 띠 아래로 늘어뜨리는 수놓은 천으로, 후수(後綬)에 놓여진 수의 무늬와 달린 고리로써 벼슬의 등급을 나타냈다. 운학금환수(雲鶴金環綬)는 붉은 바탕에 파란색과 노란색, 흰색의 세가지 색으로 구름과 학을 수놓았고 윗부분 양쪽에는 금고리 2개가 달려있다. 2개 중 하나는 한국전쟁 당시 잃어버렸으며 지금은 하나만 남아있다. 후수 밑에는 청색 망으로 된 술이 드리워져 있고, 위에는 흰색의 명주로 된 허리 좌우에 붉은색의 작은 끈이 달려있다.
※명칭변경; 운학금환완 → 운학금환수
패옥 국가민속문화유산2-6호
소 재 지; 경기 용인특례시 수지구 죽전로 152(죽전동 126)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조선후기의 문신 심동신(沈東臣, 1824∼?)이 남긴 유품으로 그가 참판이었을 당시에 입었던 조복에 달았던 패옥(佩玉)이다. 패옥(佩玉)이란 왕과 왕비, 문무백관들이 조복과 제복을 입을 때 허리의 양옆에 달던 옥줄로 형태는 계급과 상관없이 거의 같지만 재료와 색의 차이가 있다. 이 패옥(佩玉)은 돌가루를 구워서 푸른빛이 도는 인조옥를 사용했다. 유문사(有紋紗)로 된 청색주머니 속에는 다섯 줄로 된 수술에 연결되어 있고 위에는 놋으로 된 고리가 달려있다.
서대 국가민속문화유산2-7호
소 재 지; 경기 용인특례시 수지구 죽전로 152(죽전동 126)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조선후기의 문신 심동신(沈東臣, 1824∼?)이 참판으로 있을 당시에 착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서대(犀帶) 1점이다. 서대(犀帶)란 조복을 입을 때 허리에 두르던 허리띠로 물소뿔로 장식한 것인데 1품의 벼슬아치가 착용하였다. 물소뿔로 된 띠돈이 달려 있는데, 띠돈은 공복에 칼을 차도록 만들어 띠에 단 갈고리 모양의 쇠를 말한다. 서대(犀帶)의 안은 청색 비단으로 싸서 만들었다.
홀 국가민속문화유산2-8호
소 재 지; 경기 용인특례시 수지구 죽전로 152(죽전동 126)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조선후기의 문신이었던 심동신(沈東臣, 1824∼?)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홀(笏)이다. 홀(笏)이란 국가의식때에 신하가 두 손에 모아 쥐고 임금 앞에서 예를 갖추었던 패로 이 홀(笏)은 상아(象牙)로 만든 것이다. 홀(笏)은 평상시에 관복의 허리에 차고 다녔으며 전시에는 홀에 왕의 지시사항을 적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유산 > 국가민속문화유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가민속문화유산 6호 (0) | 2014.10.23 |
---|---|
국가민속문화유산 5호 (0) | 2014.10.23 |
국가민속문화유산 4호 (0) | 2014.10.22 |
국가민속문화유산 3호 (0) | 2014.10.22 |
국가민속문화유산 1호 (0) | 2014.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