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 삼십삼 응신도
관음보살이 중생(衆生)의 근기(根器, 타고난 성질과 기량)에 따라 서른 두 가지의 모습으로 몸을 바꾸어 나타나는 모습을 그린 불화이다.
관음신앙의 대상인 관음보살을 설하는 경전 중 『법화경』「보문품」에서 고통과 고난을 구제하는 관음보살은 때와 장소, 까닭을 막론하고 보문시현(普門示現)하고 있으며 중생의 근기에 따라 자유자재로 몸을 바꾸어 나타난다고 설명된다(應身). 응신의 수는 경전에 따라 32신, 33신으로 설명되어져 있다.
중국이나 일본의 『법화경』「보문품」에서는 관음보살의 응신이 33신으로 설명되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 『법화경』「보문품」에서는 관음보살의 응신이 32신으로 설명된다. 그 이유는 조선시대에 간행되어 유포된 『법화경』「보문품」 때문이다. 『법화경』은 한역(漢譯)된 이후 140여 종에 해당하는 많은 주석서가 편찬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유통된 판본은 중국송(宋) 온릉(溫陵) 개원련사(開元蓮寺)의 비구(比丘) 계환(戒環)이 찬술(撰述)한 『묘법연화경요해(妙法蓮華經要解)』7권본이었다.
조선시대 간행된 『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에는 관음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따라 몸을 바꾸어 나타난다고 하는 응신(應身) 장면이 설명되어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관음보살은 불신(佛身), 벽지불신(辟支佛身), 성문신(聲聞身), 범왕신(梵王身), 제석신(帝釋身), 자재천신(自在天身), 대자재천신(大自在天身), 천대장군신(天大將軍身), 비사문신(毗沙門身), 소왕신(小王身), 장자신(長者身), 거사신(居士身), 재관신(宰官身), 바라문신(婆羅門身), 비구신(比丘身), 비구니신(比丘尼身), 우바이신(優婆塞身), 우바새신(優婆夷身), 장자부녀신(長者婦女身), 거사부녀신(居士婦女身), 재관부녀신(宰官婦女身), 바라문부녀신(婆羅門婦女身), 동남동녀신(童男童女身), 천신(天身), 용신(龍身), 야차신(夜叉身), 건달바신(乾闥婆身), 아수라신(阿修羅身), 가루라신(迦樓羅身), 긴나라신(緊那羅身), 마후라가신(摩睺羅伽身), 집금강신(執金剛神)의 32가지 몸으로 몸을 바꾸어 나타난다고 한다.
낭견관음(瀧見觀音)
바위 위에 앉아 왼쪽의 폭포를 보고 있다.
낭견관음의 낭견은 '여울을 봄'이라는 뜻이다.
당나라 때의 일이다. 큰 가뭄으로 가흥현의 땅바닥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졌다. 이대로 가뭄이 계속되면 흉년이 될 판이라 사람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약간의 농토만 가지고 있거나 남의 땅을 경작해 주며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걱정은 더욱컸다. 그들 가운데 호씨라는 농부는 어머니마저 병석에 누워 계신지라 그가 느끼는 고통은 말로 다할 수가 없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들판에서 나물을 캐다가 이웃과 다투게 된 호씨가 옥에 갇히게 되자 남은 가족들은 절망적이 되었다.
그런데 하루는 나물을 캐러 들판을 돌아다니던 호씨의 아내가 산쪽에서 어떤 현상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그 형상은 폭포 옆에 있는 바위에 앉아서 폭포를 감상하고 있는 관세음보살이었다. 보살은 한가로운 모습이었지만 충분히 위의를 갖추고 있었다. 깜짝 놀란 호씨의 아내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자 아무것도 뵈지 않았다.
아지랑이 속에서 헛것을 봤다고 생각한 호씨의 아내는 힘없이 고개를 가로 젓더니 다시 시선을 땅으로 돌려 나물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힘든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호씨의 아내는 먹을 것을 찾아다니다가 먼지 나는 밭과 말라붙은 여울 사이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호씨의 아내가 가까이 가서 보니 땅에서 반쯤 나와 있는 법상(불보살의 조각상)이었다. 즉시 법상을 캐낸 호씨의 아내가 흙을 털어내고 보니 관세음보살의 법상이었다. 법상은 비취색 유리 기와로 만들어졌는데 그 모습이 아주 정교했다.
이에 보살의 얼굴을 자세히 보던 그녀는 얼마 전에 아지랑이 속에서 본 모습이라는 것을 알았다. 직감적으로 뭔가를 느낀 그녀는 관세음보살상을 근처의 절로 모셨다. 그때부터 호씨의 아내는 매일 시간을 내어 관세음보살상 옆에서 향을 피우고 정성을 다해 절을 했다. 오래지 않아 기적이 일어났다. 여전히 비는 오지 않았지만 관음상이 나타난 곳에서 물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물은 마치 폭포가 떨어지는 기세처럼 솟아났는데 옆에 있는 말라붙은 여울을 채우고 흘러가더니 가흥현의 가로지는 강을 채우기 시작했다. 갑자기 들리는 물소리를 듣고 몰려나온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저마다 물길을 내어 자신들의 논과 밭에 물을 대었다. 물은 가흥현의 모든 농토를 적실만큼 충분했다.
호씨의 아내와 관세음보살에 관한 이야기가 퍼지자 가흥현의 사람들은 아내가 모신 관세음보살을 낭견관음, 혹은 관폭관음으로 불렀다. 사람들이 다시 여유를 찾아서인지 아니면 호씨 부인의 공로 때문인지 호씨도 무죄로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모두 관세음보살의 덕분이라고 여긴 호씨의 가족들은 더욱 열심히 낭견관음보살을 찾았다.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났다.
그러는 가운데 가을이 되자 그해 농사는 대풍년이 되었고 호씨의 점점 형편이 나아져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능정관음(能靜觀音)
해변의 바위에 앉아 손을 바위에 대고 앉아 계신다.
능정(能靜) ‘능히 조용하게 만들다’라는 의미이다.
개봉에 장씨 성을 가진 큰 부자가 있었다.
그에게는 아들이 셋이 있었는데 연이어 장가를 가는 바람에 세 명의 며느리가 장씨 집안에 들어왔다.
그런데 세 며느리 모두 장씨 집 대문에 들어오는 날부터 시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며느리들은 항상 큰 소리로 다투어 집안이 화목하지 못했는데, 집안의 개와 닭도 안녕하지 못 할 정도였다.
게다가 이웃들도 이들의 싸움에 싫증이 나 반감을 가지는 바람에 장씨네 사람들과는 교제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비구니 스님이 장씨 집안을 찾아왔다.
장씨 집안은 독실한 불자 집인지라 스님은 환영받았다.
시어머니와 세 며느리도 스님을 보기 위해 모였다.
그러자 스님은 고부들에게 다음과 같은 게송을 들려주었다.
정(靜)과 혜(慧)는 바다와 같아 닦기 어렵고
인간세상이 만들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음으로 항상 관자재보살을 생각하면 감로수가 널리 뿌려지게 되어 스스로 원만해질 것이다.
게송을 들은 장씨네 고부들은 그 의미를 깊이 새겼다.
그때부터 장씨네 고부들은 더 이상 다투지 않고 서로를 집에 찾아온 손님처럼 대하니 집안이 자연히 화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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