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암 최익현 관복 일괄 국가민속문화유산307호

소 재 지; 충남 청양군 목면 나분동길 12(송암리 171-1)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관복 일괄(官服 一括)」은 일본의 침략에 맞서 항일의병운동을 이끈 의병장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1833~1907)의 의복인 단령(團領)과 머리에 썼던 사모(紗帽), 허리띠인 삽금대(鈒金帶), 목화(木靴), 호패(號牌) 등으로, 단령(團領) 관직에 있는 사람이 공복(公服)으로 입었던 옷으로, 둥근 깃이 하나의 특징이며, 조선 후기 전형적인 당하관(堂下官, 문신은 정3품 통훈대부, 무신은 정3품 어모장군 이하의 품계를 가진 자)용 단령(團領)의 형태와 제작 양식을 지니고 있으며, 최익현(崔益鉉)이 당하관(堂下官)이던 시기(1855~1870)에 착용했던 것이다. 사모(紗帽)는 관복 착용 시 머리에 썼던 관모로, 2개의 뿔[角]이 좌우에 달린 것이 특징이며, 양쪽 뿔에 얇고 성근 평직 원단이 겹으로 씌워져 어른거리는 무늬가 생기는 것이 특징인 당상관(堂上官)용 관모로서, 최익현(崔益鉉)이 당상관(堂上官, 문신은 정3품 통정대부, 무신은 정3품 절충장군 이상의 품계를 가진 자) 이던 시기에 해당하는 1800년대 말기(1870년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대나무와 한지로 모자 틀을 만들고 양쪽 뿔(兩角)의 테두리에 가늘게 쪼갠 대나무를 사용한 점 등 조선시대 사모 제작 기술과 기본 재료를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다. 삽금대(鈒金帶) 관복 착용 시 허리에 두르던 띠의 한 종류로, 무늬를 새긴 판(띠돈)을 띠의 둘레에 붙여 장식하였다. 최익현(崔益鉉)이 정2품 자헌대부(資憲大夫)로 가자(加資)된 1896년 이후부터 관직에서 물러난 1900년 사이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개항기 조선에 소개된 셀룰로오스 나이트레이트(cellulose nitrate, 19세기 이후 발명된 합성재료로 플라스틱의 전신)로 추정되는 신소재로 제작한 모조(模造, 본떠서 만든) 대모(玳瑁, 바다거북의 일종으로 등껍질에 붉은 점과 얼룩무늬가 있어 고급 장식 재료로 사용됨) 재질의 사자 무늬 띠돈(관복용 허리띠 둘레에 붙인 원형 또는 사각형 장식판으로 옥, 뿔, 대모 등으로 제작)을 부착하여 제작한 것으로, 19세기 말 공예 기술의 변화 양상을 대변하는 유물이다. 목화(木靴) 관복을 착용할 때 신던 목이 긴 형태의 신으로, 1870~1880년대 제작품으로 추정되며, 신의 밑창이 앞코까지 올라오는 형태에서 평평한 형태로 변화하는 과도기에 해당하는 유물로서 이 시기 목화 제작 기술을 파악할 수 있다. 호패(號牌) 조선시대 16세 이상 남자에게 발급한 패로서 오늘날의 주민등록증과 같으며, 제작 연대 을묘(乙卯, 1855년)와 최익현(崔益鉉)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착용자와 제작 시기를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착장자의 역사적 중요성이 매우 크고 19세기 중엽부터 말기까지의 복식사 연구에서 갖는 사료적 가치와 공예사적 가치가 높다.

 

출처;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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