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청제비 국보351호
소 재 지; 경북 영천시 도남동 산7-1
『영천 청제비(菁堤碑)』는 신라 때 조성 이래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청못’ 옆에 세워진 비석으로 받침돌과 덮개돌 없이 자연석에 비문을 새긴 2기의 비석이다. 청제축조・수리비와 청제중립비로 구성된 이 비석은 세 시기에 걸쳐 청제의 조영 및 수리와 관련된 내용을 새긴 비석으로, 자연재해를 극복하는 토목 기술과 국가 관리 체계를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청제축조비와 청제수리비는 모양이 일정치 않은 하나의 돌 앞뒷면에 내용을 새겼는데, 위쪽이 얇고 아래쪽이 두꺼운 형태이다. 청제축조비(앞면)는 536년(법흥왕 23년) 2월 8일, ▨탁곡(▨乇谷)에 처음 큰 제방을 준공한 사실과 공사 규모, 동원 인원, 공사 책임자, 지방민 관리자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서체는 고졸하고 비정형적이며 자유분방한 6세기 신라 서풍의 전형에 해당한다. 비문은 10행으로 각 행의 글자 수는 9~12자이다. 청제수리비(뒷면)는 798년(원성왕 14년) 4월 13일 제방 수리공사의 완료 사실과 함께 제방의 파손·수리 경과보고 과정, 수리 규모, 공사 기간, 공사 책임자, 동원 인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서체는 통일신라의 세련된 서체와 달리 청제축조비의 신라 고유 서풍을 계승하였다. 두 면의 비문 대부분은 판독이 가능할 정도로 양호한 상태이다. 비문은 12행으로 각 행의 글자 수는 4~16자이다. 바로 옆의 청제중립비는 1688년(숙종 14) 청제축조・수리비가 땅에 묻혀 있었던 것을 다시 일으켜 세운 사실을 담고 있다. 서체는 조선의 일반적인 해서와 다른 신라의 고졸한 서풍을 반영하고 있다. ‘영천 청제비’는 청제의 축조 과정과 수리 과정, 왕실(국왕) 소유의 제방 관리 및 보고 체계 등을 기록함으로써 신라의 정치 및 사회・경제적 내용을 연구・확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는 점, 또한 그 유래를 찾기 어려운 고비석으로서 한 비석에 시기를 달리하는 비문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희귀한 사례라는 점, 조성 이래 지금까지 원 위치에서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점에서 보존・관리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출처 국가유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