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 인각사 출토 공양구 일괄

 

우리나라 최초 승탑지 공양구…불교 금속공예 ‘진수’

당(唐) 신회선사탑 출토품 보다
조금 늦은 8세기 말~9세기
몇 안 되는 귀한 불교공예품
‘거의 완전한 상태’로 발견

통일신라 문화 ‘국제적 면모’
교류상황 알려주는 것이어서
문화사적 의의도 크게 평가

묻혀있던 인각사 역사와 함께
극락정토서 수행하고 있을
유물의 주인공 더 궁금해져

인각사 소유(불교중앙박물관 기탁) 보물 2022호 ‘군위 인각사 출토 공양구 일괄’. 불교문화재연구소가 옛터를 복원하기 위해 발굴조사를 실시하던 2008년 인각사 동쪽 승탑지(僧塔址)에서 통일신라시대 유물 18점을 발견했다. 아래 사진은 중국 신회선사탑에서 나온 유물(왼쪽)과 인각사 유물 발견 당시 현장 모습.

입적하는 큰스님께 우리는 무엇을 바치고 싶을까. 보각국사 일연(普覺國師 一然)스님이 <삼국유사>를 집필했던 군위 인각사에서 찬란한 과거를 돌이켜 보게 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인각사는 천년고찰로 역사 속에서 빛났던 사찰이었으나 현대에는 사찰 터 일부만 운영되는 조그만 가람이다.


이에 옛 터를 복원하기 위해 불교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던 2008년,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유물들이 대량으로 발견됐다. 금속공예품과 도자류로 구성된 총 18점의 일괄유물이 인각사 동쪽지역, 스님의 사리를 봉안하는 승탑이 있었던 자리 지하(僧塔址)에서 출토된 것이다. 제작 시기는 통일신라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매우 희귀한 유물들이다.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유물
청동으로 만든 7층 탑 모양의 뚜껑이 있는 향을 넣는 향합(靑銅 香盒), 접시, 금동가릉빈가상이 한 면이 뚫린 북(靑銅 金鼓)안에 놓여 있었다. 그 주변에 깨끗한 물을 담는 정병(靑銅 淨甁) 2점, 손잡이가 달린 금동 향로(金銅 炳香爐)와 해무리굽이 있는 청자 찻잔(靑磁 盌) 7점, 발우(靑銅 鉢), 몸통과 뚜껑으로 된 원통형 그릇(靑銅 圓筒形 二重盒)이 함께 모여진 채 발견됐다. 이 유물들은 지표에서 약 5cm 지점에 손상 없는 상태로 묻혀 있었다. 둥그렇게 땅을 파고 바닥에 기와를 깐 다음 벽체에도 기와를 세워 쌓고, 그 안에 일괄유물을 매납한 후 위에 다시 기와를 덮은 형태로 묻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각사는 643(선덕왕 12)년에 원효스님이 창건했다. ‘기린의 뿔(麟角)’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사찰 맞은편에 보이는 아찔한 벼랑에 기린이 뿔을 걸었다는 <동국여지승람>의 기록과 명부전 뒤로 뻗은 화산(華山)자락이 기린의 뿔 형상을 하고 있어 ‘인각사’라고 불렀다는 두 개의 설이 전한다. 1307(고려 충렬왕 33)년에 일연스님이 중창한 뒤 5년간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저술하고 입적한 유서 깊은 가람이다. 그러나 고려시대 사찰 역사만 조명된 채 삼국유사가 집필되기 이전의 역사는 안개 속이었다. 이번 발굴유물은 뛰어난 조형과 섬세한 기법이 돋보이는 우수한 공예품이다. 더욱이 출토지가 확실하며, 제작시기도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이어서 고대에도 인각사가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찰이었음이 밝혀졌다.

왜 스님의 탑지에 묻었을까?
이 유물들은 스님의 무덤인 승탑의 지하층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런데 왜 묻었을까. 이 단서를 중국 하남성 낙양시 신회선사(683~758, 神會禪師) 승탑의 지하에서 발견된 유물들에서 찾을 수 있다. 신회선사는 선종의 6조 혜능(慧能)선사의 제자로, 중국 선종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신회선사의 탑지 지하 약 1m 아래에 돌판을 길이 1.25m, 너비 1.13m, 높이 1.2m로 쌓은 방형의 석실 안에 청동 정병, 청동 향로, 청동 향합, 숟가락과 젓가락 1쌍, 은합(銀盒), 도기로 만든 발우 3점, 철기편 등 일괄유물이 발견됐다. 석실을 쌓았던 돌판 안쪽에 ‘765년’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적어도 765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 명백한 중국 당(唐)대 불교 금속공예품의 대표작이다.

고승의 사리를 봉안한 승탑의 땅 속에 방을 만들어 여러 종류의 유물을 함께 묻은 점은 독특하다. 두 스님의 유물들은 완전히 일치하지 않지만 정병, 병향로, 향합은 공통적으로 출토된 공예품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듯하다.

신회선사 탑 유물이 숟가락, 젓가락 등의 생활용구가 포함되어 있던 것에 비해 인각사 출토유물은 청동 금고 안에 질서 있게 놓인 것으로 보아 어떠한 의식과 절차에 따라 넣은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발견된 유물들은 사용한 흔적이 거의 없는 깨끗한 상태여서 생활에서 사용했던 유물이 아니라 스님들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던 공양구로 사용되었던 기물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중국 당나라 낙양에서 선사의 탑 지하에 공양구를 매납했던 방식이 통일신라에 나타난 예는 인각사 발굴유물이 유일하다. 더구나 통일신라의 수도가 아닌 변방의 군위 인각사에서 이런 유물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당시 당과 적극적인 문화 교류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 유례없는 뛰어난 공예품
중요한 유물 중심으로 간단히 살펴보자.
1) 손잡이가 달린 향로(金銅 柄香爐, 길이 40㎝, 높이 10㎝, 사자 높이 7.0㎝)

가장 주목되는 것은 손잡이가 달린 병향로이다. 스님들이 각종 의식에서 직접 들고 사용한 향로이다. 향을 넣는 자루모양의 향로와 받침대, 긴 손잡이, 그리고 손잡이와 향로를 잇는 여의두 모양의 장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손잡이 끝 부분에 정교한 사자를 조각하여 붙였으며, 각 부분을 리벳으로 조립했다. 통일신라시대 병향로는 성덕대왕신종에 조각된 공양자와 석굴암 벽면의 부조상인 십대제자 중 한 스님이 들고 있어 그 형태를 알 수 있다. 우리나라 공예품으로는 리움 소장 금동병향로, 경남 창녕 말흘리 출토 병향로 2점만 남아 있다.

인각사 출토 병향로는 형태가 안정적이며 세부 주조 기법도 정교하다. 두께가 매우 얇으면서 강도가 높아 당시의 금속공예 기술이 수준 높았음을 보여준다.

2) 깨끗한 물을 담는 정병(靑銅 淨甁, 각각 높이 35cm, 34cm)

인각사에서 발견된 2점의 청동 정병 가운데 한 점은 부분 파손이 있지만 다른 한 점은 거의 완벽한 상태이다. 통일신라 정병의 형태는 석굴암 벽면 조각 가운데 범천상이 들고 있는 모습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공예품으로는 부여 부소산 출토 정병만 남아 있다. 인각사에서 발굴된 정병은 세련되면서 날렵한 기형으로 현존하는 통일신라 정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된다.

3) 청동으로 만든 북(靑銅 金鼓, 지름 38~40㎝)

이 금고는 한 면이 뚫려 있어 유물들을 담는 커다란 그릇 역할을 했다. 지금까지 통일신라의 청동 금고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865(咸通6)년명 금고가 유일한 예였으나 통일신라 금고가 하나 더 새롭게 발견된 것이다.

4) 7층 탑 모양의 뚜껑이 있는 향을 넣는 그릇(塔鈕蓋 靑銅香盒, 높이 18.0㎝) : 타원형의 둥근 몸체 아래로 나팔처럼 벌어진 높은 굽이 있고, 반원형의 뚜껑을 7층 탑 모양으로 장식한 그릇이다. 사리기로 사용되기도 하나 향을 담아 두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석굴의 서진(西秦) 시기 벽화에 병향로와 향합을 같이 들고 있는 스님이 그려져 있어, 본래 한 세트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5) 해무리굽 청자완(玉璧底 靑磁盌, 높이 5.4㎝, 지름 17.0㎝)

도넛모양의 해무리굽이 있는 이 청자는 중국 8세기 말~9세기 전반 경에 월주요(越州窯)에서 만든 중국산 찻잔이다. 수입되어 사용되다가 매납된 것으로 보인다. 찻잔 7점이 포개진 상태로 완벽한 상태로 발견됐다. 중국 최상급의 도자기로 당시 활발했던 국제문화교류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군위 인각사에서 출토된 이 유물들은 우리나라 최초로 스님의 탑 유구에서 발견된 일괄 공양구이다. 당시 가장 선진적이고 다채로운 종류의 불교 금속공예품이 거의 완전한 상태로 발견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제작 시기는 신회선사탑 출토품이 765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을 감안할 때 그보다는 조금 늦은 8세기 후반에서 9세기에 해당되는 유물들이다. 이 시기에 제작된 불교공예품은 남아 있는 예가 매우 귀하다. 특히, 통일신라 문화의 국제적인 면모와 교류 상황을 알려주는 것이어서 문화사적로도 의의가 크다.

그동안 인각사의 고대 역사는 땅에 묻혀 있었지만, 역사는 어느 순간 그 진실을 드러낸다. 극락에서 맑은 차와 향기로운 향을 올리며 수행하고 계실 이 유물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인각사는 아직도 밝혀져야 할 것이 많은 비밀을 품고 있다.

이분희 문화재전문위원 불교중앙박물관 팀장 [불교신문36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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