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이 지극함! 무엇을 공양하는 모습일까?
탑을 향해 공양하는 보살상
고려 불교와 강원지역 특성
독특하게 결합된 희귀 사례
손에 있던 지물 사라졌지만
꽂았던 구멍은 지금 그대로…
‘최선 다해 후회 없이 살라’는
지혜를 주시기 위함이었나
진리 세계 찾아 산문 들어선
단기출가자 모습 연상되기도
마음의 달이 아름다운 월정사
강원도 평창 오대산 월정사에 가면 매번 그냥 지나치지 않는 곳이 있다. 탄허스님이 행서로 쓴 ‘월정대가람(月精大伽藍)’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 일주문으로 들어서서 1㎞ 정도 펼쳐진 울창한 전나무 숲길이다. 원래 이 숲은 전나무 아홉 그루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씨를 퍼뜨려 나무가 숲을 만들고, 숲이 나무를 키워 지금의 숲을 이루었다. 천년 고찰 월정사는 아름다운 전나무 숲과 길을 품고 있다. 피톤치드가 가득 차 있는 이 길을 걷노라면 머릿속이 맑아지며, 마치 세상 모든 번뇌와 동떨어진 세계로 들어선 것 같다. ‘월정(月精)’이라는 사찰의 이름처럼 고요한 달이 내 마음을 비추어 주듯 아름다운 세계로 접어든 것이다.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있는 국보 제48-2호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높은 천정에서부터 내려오는 빛이 석조보살상을 비추도록 전시해 오랜 세월에 거쳐 완성된 본래의 보살상을 친견하는 묘미를 더해 주고 있다.
이 성보는 국보 제48-2호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平昌 月精寺 石造菩薩坐像)’이다. 월정사는 자장율사가 643년(선덕여왕 12)에 창건돼 6·25전쟁 때 전각이 모두 전소되는 아픔를 겪게 된다. 몇 군데 총알자국이 있지만, 다행히도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과 그 앞에 있는 석조보살좌상만 큰 화를 피했다. ‘월정사 석조보살좌상’은 월정사를 대표하는 성보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만의 독창적인 문화재이다.
국보가 된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원래 월정사 팔각구층석탑만 국보 48호였는데, 2017년 보물 139호였던 석보보살좌상이 국보 48-2호로 승격됐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과 월정사 석조보살좌상은 조성 당시의 조형적, 신앙적 의미를 모두 찾을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 함께 국보로 묶는다”는 게 문화재청에서 밝힌 설명이다. 월정사 석조보살좌상과 팔각구층석탑은 어떤 의미를 담아 함께 조성한 한 세트이다. 보살상을 탑에서 분리하는 것은 그 가치와 의미를 상실한다는 것이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은 높이 15.2m로 평면은 팔각형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 석탑은 고려시대에 이르면 평면이 통일신라 석탑의 방형에서 벗어나 다각형으로 되었다. 층수도 다층으로 변하게 된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고려시대 다층석탑 가운데에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탑 앞의 보살상은 높이 1.8m로 석조로 조성됐다. 연화대좌 위에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무릎을 꿇고 앉아 무언가를 공양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탑을 향해 공양하는 보살상은 고려시대, 특히 강원도 지역에서만 집중적으로 조성됐다. 고려 불교와 이 지역의 특성이 독특하게 결합된 사례이다.
부처님 진신 사리를 모신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을 향해 오른쪽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공양 올리는 모습을 한 석조보살좌상. 원형은 성보박물관에 봉안됐다.
탑 앞에 공양하는 보살상 명칭은?
보살상의 명칭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탑을 향해 공양하는 모습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공양보살상’이라고 표현한다. 또한 고려시대 정추(鄭樞)의 시에는 문수보살로 칭해지기도 했다. 당시 오대산은 대중에게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의 성지로 워낙 유명했기 때문에 당연히 문수보살로 여겼던 것이 아닐까. 산 전체가 불교성지가 되는 곳은 남한에서는 오대산이 유일했던 만큼 인지도도 그만큼 컸을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유력한 보살상의 명칭이 월정사 관련 기록에 등장한다. 고려 후기 민지(閔漬, 1248∼1326)가 찬한 <오대산사적(五臺山事蹟)>의 ‘신효거사친견오류성중사적(信孝居士親見五類聖衆事跡)’편에 “탑 앞에 약왕보살(藥王菩薩像)의 석상이 손에 향로를 들고 무릎을 괴고 앉아 있는데, 전해오기를 이 석상은 절 남쪽의 금강연에서 솟아 나왔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보살상의 모습과도 일치하는 기록이다.
이 기록이 사찰의 사료라는 점에서 ‘약왕보살’이라는 명칭이 설득력이 있다. 신앙적 근거도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권6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에서 찾을 수 있다. 약왕보살은 전생에 일체중생희견(一切衆生喜見)보살일 때 부처님을 찬탄하며 자신의 몸을 태워 공양을 올렸다. 그 불이 1200세까지 꺼지지 않았다. 다시 홀연히 화생한 희견보살은 부처님 입멸 전 두 팔을 공양했다.
이처럼 약왕보살은 부처님께 두 차례 소신공양(燒身供養)을 했다고 경전에 전해진다. 경전에 그림으로 나타낸 약왕보살의 형상은 경전 내용과 같이 팔에 불이 붙은 형상으로 소신공양하는 모습이다. 돌로 조각하기 어려우므로 이러한 형상을 하고 계신 것은 아닐까.
보살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무엇을 공양하는 모습일까
월정사 경내 팔각구층석탑과 석조보살좌상을 뵈었다면 이젠 성보박물관으로 발걸음을 돌려보자. 꼭 가야 할 이유가 있다. 석조보살좌상 진품이 있기 때문이다. 팔각구층석탑 앞에 이 보살상의 복제품을 봉안했을 때 그 생경하던 모습은 세월이 흘러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그래도 진품을 뵈어야한다.
오대산 월정사 경내로 들어서기 전에 도로 우측으로 나란히 왕조실록ㆍ의궤박물관과 월정사 성보박물관, 한강시원지체험관 3개의 박물관이 세워져 있다. 오대산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시설이다. 전통사찰의 영역 밖에 새롭게 조성된 이 시설들은 지역민들과 더욱 가깝게 문화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월정사 성보박물관으로 들어가면 돔 형식의 커다란 전시관에 석조보살좌상만 특별하게 모신 전시실이 있다. 높은 천정에서부터 내려오는 빛이 석조보살상을 비추도록 구상한 이 공간에서 오랜 세월에 거쳐 완성된 본래의 석조보살좌상을 뵐 수 있다. 이 보살상은 팔각으로 된 삼단 연꽃대좌 위에 앉은 자세를 하고 있다. 탑 앞에 원래 봉안되었을 때 모습은 보살상이 탑을 올려다보는 비율을 맞추기 위함인지 대좌의 중간 부분부터 땅에 묻혀 있었다. 보살상을 대좌에 안정적으로 고정시키기 위해 보살상과 한 몸으로 대좌의 중간 부분을 만들어, 대좌에 촉처럼 끼울 수 있게 했다.
두 손을 가슴 앞에서 모아 무엇인가를 공양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손에 쥐고 있던 지물은 사라졌지만, 꽂았던 구멍은 남아 있다. ‘오대산사적’에 약왕보살이 향로를 들고 있다고 했으니 아마 향로를 공양하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향로를 들고 있었을까. 고려시대의 향로는 밥그릇 모양도 있고, 손으로 들 수 있도록 손잡이가 있는 향로도 있다. 그런데 꼽았던 두 손 사이의 구멍 외에 가슴 앞에도 구멍이 있다. 손에 들고 있는 지물을 지지하는 촉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형태로 미루어보아 손자루가 달려 있는 병향로(柄香爐)였을 것이라 짐작된다.
기다란 원통형 보관
이 월정사 석조보살상의 가장 눈에 띄는 모습은 머리에 쓰고 있는 기다란 원통형의 보관이다. 통일신라시대의 보살상에서는 볼 수 없다. 중국 요(遼)나라 보살상의 모습과 흡사하여 중국에서 새로운 문화요소가 들어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얼굴은 길고 뺨은 통통하다. 친근하고 복스럽게 보인다. 눈·코·입은 작고, 코와 인중이 짧게 처리되어 있어 이목구비가 얼굴 중심부에 몰려 있다. 신체는 얼굴에 비해 가는 편으로 허리는 잘록하다.
월정사 석조보살상 이외에도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국보 제124호)과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보물 제84호) 등 고려 전기에 조성된 유사한 상들이 남아 있다. 강원도 지역 외에서는 이러한 상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고려시대에 강원도 지역의 불교사상과 역사를 규명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보살상이다.
자신의 몸을 바쳐 공양하는 월정사 석조보살상의 모습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후회 없이 살라’는 지혜를 주시기 위함이 아닐까. 월정사 단기출가학교 출가자들이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깎은 머리카락을 묻었다는 전나무 숲길 초입의 삭발탑! 전나무가 자라고 숲이 되고 길이 다시 시작되리라.
이분희 문화재전문위원·불교중앙박물관 팀장 [불교신문36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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