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없는 달

괄허취여(括虛取如)

 

 

七十年間事

夢中人 

澹然同水月 

何有去來身 

幻來從幻去   

來去幻中人 

幻中非幻者  

是我本來身 

 

칠십년간의 일이

어렴풋한 꿈 속 사람으로

담연한 물 속 달과 같이

어떻게 가고 오는 몸이 있을까?

허깨비로 와서 허깨비를 좇아 가니 

오고가는 것이 허깨비 사람으로

허깨비 가운데 허깨비 아닌 것이

이것이 나의 본래 몸이다.

 

1789년 4월15일 김룡사 양진암의 방장 괄허취여(括虛取如, 1720~ 1789)스님은 이 임종게(臨終偈)를 남긴 후 좌탈했다. 문도들은 괄허스님의 진영을 제작해 양진암에 모셨으며 현재까지 진영은 김룡사에 그대로 전한다. 진영에는 비록 영찬이 없으나 괄허스님이 남긴 임종게는 내용상 자찬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괄허스님은 어릴 때 경서, 사기, 자전(子傳) 등을 잠깐 들어도 외울 정도로 총명했으며, 대승사로 출가한 후에는 계율을 철저히 지키고 교학에 해박함을 보여 어른  스님들은 불법의 동량(棟梁)이 될 재목이라 귀히 여겼다. 스님은 여러 지역을 유력하며 가르침을 받은 후 돌아와 환암(幻庵)장로에게 선지(禪旨), 환응담숙(喚應談肅)스님의 의발(衣鉢)을 전수받았다. 법사인 환응스님은 환성지안(1664~1729)의 법맥을 계승한 포월초민(抱月楚旻, 18세기 전반 활동)의 4세손이다. 18세기 전반 환성문중은 영남과 호남에 빠른 속도로 확산됐으며 이 가운데 포월스님과 그의 제자들은 안동, 영주, 문경, 상주 등 영남의 북동부 지역에 주석하면서 가장 영향력 있는 문중을 형성했다. 괄허스님 역시 이를 기반으로 운달산 김룡사, 사불산 대승사, 노음산 남장사에 머물면서 제자를 길러내고 쇠락한 가람을 일으켜 승풍을 진작했다. 

 

100여년이 지난 1887년에 후손인 두암서운(杜巖瑞雲)과 혜운치민(惠雲致敏) 등은 괄허스님의 유고를 모아 <괄허집(括虛集)>을 김룡사 양진암에서 간행했다. 이 책에는 300여 편의 시와 여러 사찰에서 일어난 불사에 관한 글도 수록되어 있다. 특이하게 괄허집에는 스님의 법호인 ‘괄허(括虛)’를 해석한 글과 법명인 ‘취여(取如)’를 “산승은 물 속 달을 편애하기에 밝은 달과 차가운 물을 작은 병에 담아 돌아와 돌 수각에 쏟아 붓고 정성을 다해 휘저어 봐도 달그림자 없다(山僧偏愛水中月 和月寒泉納小 歸到石龕方瀉出 盡情攪水月無形)”로 표현한 시가 실려 있다. 

 

해제=조계종 문화부장 정안스님 설명=문화부 문화재팀장 이용윤[불교신문32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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