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물을 위한 서울상수도 시스템 도입
1908년 9월 1일 서울 4대문 안과 용산 일대의 12만 5,000여 명의 주민에게 하루 1만 2,500㎥의 급수 개시
서울상수도 시스템 도입
19세기 말 개항과 함께 내·외국인이 유입되면서 도시의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당시 생활용수로 이용하였던 우물과 하천수로는 이를 감당해내기 어려웠으며 또한 콜레라 등의 수인성 전염병이 만연하면서 보건 위생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에 고종황제는 1903년 미국인 콜브란(H. Collbran)과 영국인 보스트윅(H. R. Bostwick)에게 상수도 부설 및 경영에 관한 특허권을 주어 근대적인 상수도 시설을 건설하도록 했다. 2년여에 걸친 공사 끝에 정수장과 취수장이 만들어지고, 수도관이 매설되어 현재의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 지역에 뚝도 정수장이 완공되었고 1908년 9월 1일 서울 4대문 안과 용산 일대의 12만 5,000여 명의 주민에게 하루 1만 2,500㎥의 급수를 개시하였다. 근대적인 서울 상수도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근대적인 상수도 시스템은 물 공급뿐만 아니라 수인성 질병을 예방하고, 화재의 피해를 줄이고, 산업 활동을 촉진하는 등 여러 분야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서울의 상수도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2007년 말 기준으로 6개 정수센터의 1일 생산규모는 510만㎥, 급수인구 1,042만 명으로 1908년에 비해 생산규모는 408배, 급수 인구는 84배라는 양적 성장을 이루었으며 서울의 수돗물 “아리수(Arisu)”라는 브랜드로 새로운 가치 창출을 도모하는 한편 아리수 품질확인제와 고도 정수 처리 시설 도입 등으로 천만 서울시민에게 깨끗하고 안전한 고품질의 수돗물을 충분히 공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리수
아리수는 고구려때 한강을 부르던 말로 평생을 마셔도 좋다는 의미를 담은 서울시 수돗물의 이름입니다.
[서울특별시 상수도사업본부 홈페이지(http://arisu.seoul.go.kr) 참조]
출처; 인터넷우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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