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의 발판을 마련한 화랑도
실행에 뿌리를 두고 있는 화랑의 5대 정신
1. 나라에 충성(忠誠)하고,
2. 부모(父母)에게 효도(孝道)하고,
3. 벗을 믿음으로 사귀고,
4. 죽이는 일을 삼가고,
5. 싸움에 물러서지 않는다.
화랑도
신라시대 화랑을 우두머리로 한 청소년 수련단체를 말한다.
화랑이라는 말은 ‘꽃처럼 아름다운 남성’이라는 뜻인데, 혹은 화판·선랑·국선·풍월주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단체정신이 매우 강한 청소년 집단으로서 교육적·군사적·사교 단체적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많은 인재를 배출해 신라의 삼국통일 뿐만 아니라, 골품제 사회에서의 여러 계층간의 긴장과 갈등을 조절, 완화하는 데도 이바지하였다.
화랑집단은 각기 화랑 한 명과 승려 약간 명, 그리고 화랑을 따르는 다수의 낭도로 구성되어 있다. 낭도의 수효는 일정하지 않으나 많을 때는 1천명이 되기도 하였다. 화랑은 이 집단의 중심인물로서 용모가 단정하고 믿음직하며, 사교성이 풍부한 진골귀족 가운데서 낭도의 추대를 받아 뽑혔다.
신라시대를 통틀어 화랑은 모두 2백여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화랑의 무리 내의 승려들은 월명사의 경우에서 보듯 노래 가사를 짓거나 화랑집단이 어떤 의식을 집행할 때 도와주는 등 주로 지적·정신적인 방면에서 화랑을 지도하는 위치에 있었던 만큼 학문적 교양이 풍부한 사람이 뽑혔다.
한편, 낭도들의 신분이나 자격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수도인 경주에 사는 6부민(六部民) 출신 자제들이 주축을 이루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종래에는 이들을 진골귀족 이하 6두품·5두품·4두품에 이르는 상류계층 출신의 청소년만으로 좁혀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일반 병졸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만큼 3두품 이하 2두품·1두품에 이르는 평민들의 자제도 낭도에 포함되었을 것으로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화랑도는 이처럼 진골귀족에서부터 일반평민에 이르기까지 여러 신분에 속하는, 수도 거주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자발적으로 맺어지고 있는 점이 하나의 특징이다.
다시 말해 화랑도는 골품제도와 같이 혈연주의의 원리에 입각해 만들어진 단체가 아니라, 혈연주의를 초월해 자신들의 의사에 의해 결성된 일종의 결사체라 할 수 있다.
신라의 당군 격퇴 우표
이 그림은 중앙대 예술대 오승우 교수의 작품으로 신라군이 양주에 주둔하고 있는 당군 20만을 공격하여 섬멸하는 장면을 나타내고 있다. 신라는 당과 연맹을 맺어 660년에는 백제를, 그리고 668년에는 고구려를 쳤다. 그러나 당이 이들 양국의 지역을 점유하려고 하자, 신라는 문무왕 16년(676)에 이들을 완전히 몰아내고 삼국통일을 완성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화랑도 참조]
출처; 인터넷우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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