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조선 연대기(내휴천왕의 역사 112)
조선(朝鮮) 제30대 내휴(奈休) 천왕(天王)의 역사
청구(靑邱)를 순시하고 치우천왕 공덕비(功德碑)를 세우다
서기전 909년 임자년(壬子年)에 내휴(奈休) 천왕께서 청구(靑邱)의 다스림을 둘러보시고 치우천왕(蚩尤天王)의 공덕(功德)을 돌에 새겼다.
청구(靑邱)는 단군조선의 군후국(君侯國) 중에서 군국(君國)에 해당하는 나라이며, 산동(山東)지역 중에서 산동반도를 비롯한 동부지역에 해당한다.
단군조선 초기인 단군왕검 천왕(天王) 시절에 산동지역에 청구(靑邱)와 남국(藍國)이 봉해졌는데, 청구는 고시씨(高矢氏)의 후손을 봉하고 남국(藍國)에는 치우천왕의 후손을 봉하였다. 청구군(靑邱君)과 남국군(藍國君)은 일반 제후가 아닌 군(君)으로서 천왕(天王)이 봉한 군후(君侯) 중에서 천군(天君)에 해당한다.
고시씨는 황족(黃族) 중에서 황하유역으로 이동한 웅족(熊族) 출신이며, 치우천왕은 배달나라 초기부터 있었던 병감(兵監) 즉 군사담당(主兵)인 치우(治尤)의 직책을 맡았던 인물로서, 배달나라 제14대 자오지(慈烏支) 환웅(桓雄)이며 일명 치우천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한편, 치우(蚩尤, 治尤)라는 말은 세상을 갈아 치우다는 등 천지개벽(天地開闢)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남국(藍國)은 산동지역 중에서 청구(靑邱)의 서쪽에 해당하는 지역으로서 태산(泰山)부근을 중심으로 하는 나라이며, 태산에서 양자강에 이르는 지역이 소위 남이(藍夷)지역으로서, 남국(藍國)의 백성은 주로 남족(藍族)과 황족(黃族)이 되는데, 원래 남족(藍族)은 양자강 유역과 양자강 남쪽에 사는 적족(赤族)과는 같은 족속이며 황궁씨(黃穹氏)의 아우가 되는 청궁씨(靑穹氏)의 후손이 된다.
청구(靑邱)의 백성은 주로 황족(黃族)이 되고 남족(藍族)이 섞인 것이 되는데, 남국(藍國)과 청구(靑邱)는 내륙의 동이(東夷)가 된다. 청구지역에는 소위 양이(陽夷), 우이(隅夷), 래이(萊夷), 개이(介夷) 등이 있었으며, 남국(藍國)의 남이(藍夷), 엄국(淹國)의 엄이(淹夷), 서국(徐國)의 서이(徐夷), 회국(淮國)의 회이(淮夷)와 함께 내륙8이(夷)가 되고 그 외 사이(沙夷), 사이(泗夷) 또는 도이(島夷)를 합하여 내륙 9이(夷)라고도 부른다.
서기전 2294년경 요임금의 섭정 순(舜) 또는 서기전 2284년경 우순(虞舜)이 서기전 2267년 이후 고죽국 자리가 되는 지금의 북경과 천진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 유주(幽州)를 설치하고 그 남쪽이 되는 산동지역의 서쪽에 영주(營州)를 설치하였는데, 이 영주(營州)가 남국(藍國)의 인근에 설치되었던 것이며, 서기전 2267년에 폐지되어 단군조선 직할영역에 편입되었다가, 서기전 2247년경에 우순(虞舜)이 다시 설치하였던 것이고, 서기전 2240년에 부루(扶婁) 천왕이 정벌하여 폐지하고 제후를 봉하였던 것이며, 이후 순(舜)은 서기전 2224년에 단군조선의 유상(有象)과 단군조선의 후원을 얻고 있던 우(禹)의 합공(合攻)으로 제거되었던 것이다.
치우천왕의 공덕은, 서기전 2706년에 제14대 환웅으로 즉위하여 소위 청구(靑邱)시대를 열었는 바, 당시 염제신농국의 쇠퇴로 많은 제후들이 서로 병탄하려 욕심을 내며 전란(戰亂)을 일으키려 하였는데, 종주국(宗主國)으로서 천병(天兵)을 일으켜 회대(淮岱)지역을 평정하여 수도를 청구(靑邱)에 정하고, 서기전 2697년에 염제신농국(炎帝神農國)의 제8대 천자(天子)인 유망(楡罔)을 폐하여 그 아들 괴(魁)를 단웅국(檀熊國) 천자로 봉하였으며, 또 서기전 2698년에 유웅국의 천자가 된 헌원(軒轅)의 10년이상에 걸친 100여회의 도전(挑戰)을 물리치고 결국 신하(臣下)로 삼아 중부(中部)의 황제(黃帝)로 봉하는 등 당시 동서남북중에 걸쳐 12제후국을 평정하여 이후 서기전 2357년경까지 300년 이상의 평화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치우천왕 시절에 5부(部)의 천자(天子)가 되는 5제(帝)로는 동부(東部)의 청제(靑帝)로는 창힐(蒼詰), 서부(西部)의 백제(白帝)로는 소호(少昊), 남부(南部)의 적제(赤帝)로는 축융(祝融), 북부(北部)의 흑제(黑帝)로는 대요(大撓), 중부(中部)의 황제(黃帝)로는 유웅국(有熊國) 출신의 천자(天子)인 헌원(軒轅)을 두었던 것이다.
치우천왕이 수도를 삼은 청구(靑邱)는 배달나라 동서남북중에서 동부(東部)에 속하는 지역으로서 회대(淮岱)지역에 위치하며, 단군조선 시대에는 번한(番韓) 관경 중 서남부에 속하는 곳으로서 이 이름을 따서 군국(君國)인 청구국(靑邱國)이 봉해진 것이 된다.
엄독홀(奄瀆忽) 제천(祭天)과 주(周)나라와의 수호(修好)
서기전 909년에 내휴(奈休) 천왕께서 서쪽으로 엄독홀(奄瀆忽)에 이르러 분조(分朝)의 여러 한(汗)들과 회합하여 열병(閱兵)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며, 주(周)나라 사람과 수호를 맺었다.
천왕이 청구(靑邱)를 둘러보고 치우천왕의 공덕비를 세운 후, 이어 엄독홀(奄瀆忽)로 가서 군후(君侯)들과 회합하고 열병의식(閱兵儀式)을 행하며 제천행사(祭天行事)를 벌인 것이다.
분조(分朝)란 조정(朝廷)을 나눈 것으로 단군조선의 군후국(君侯國)이 되는 나라의 조정(朝廷)을 가리킨다. 즉 단군조선 진한(眞韓)의 조정은 중앙조정(中央朝廷)이 되며, 마한과 번한의 조정은 진한(眞韓)의 분조(分朝)가 되고, 삼한(三韓) 관경 내의 수많은 군후국들은 진한과 마한과 번한의 분조(分朝)가 된다. 한(韓)은 천왕(天王)의 비왕(裨王)으로서 분조(分朝)의 임금이 되고, 한(汗)은 일반 군후국(君侯國)의 임금인 비왕(裨王)을 가리키는데, 이 한(汗)들의 나라가 곧 일반적인 분조(分朝)가 되는 것이다.
엄독홀(奄瀆忽)은 엄독(奄瀆)이라는 강이 있는 고을(忽)이며, 서기전 1266년에 남국(藍國)이 고죽국(孤竹國)과 함께 군사를 몰아 주둔하였던 곳이기도 하고, 서기전 1236년에는 남국(藍國), 청구(靑邱), 구려(句麗), 몽고리(蒙古里)의 군사가 합공으로 은나라를 정벌하여 이곳을 중심으로 하여 포고씨(蒲古氏)를 엄국(淹國)에 봉하였는데, 약 330년이 지난 서기전 909년에 이곳에 내휴(奈休) 천왕이 순수(巡狩)하여 여러 군후(君侯)들과 회합하여 제천행사를 벌이는 등 단합대회를 연 것이 된다.
이때 회합한 한(汗) 즉 군후(君侯)들은 엄독홀에 가까운 나라들의 왕이 되는데, 엄(淹), 서(徐), 회(淮), 남국(藍國), 청구(靑邱), 고죽(孤竹), 래(萊), 우(隅), 양(陽), 개(介) 등 산동지역과 회대(淮岱)지역과 황하(黃河)유역에 걸쳐 자리한 제후국들의 제후들이 될 것이다. 특히 산동지역의 남쪽에 위치한 서국(徐國)은 서기전 980년경에 주(周)나라를 공격하여 황하지역까지 이르러 반경 500리를 차지하는 대국(大國)이 되었는데, 이때 36국(國)을 거느려 종주(宗周)와 쌍벽을 이루었던 것이다.
소위 금문(金文)에 천군(天君)에 관한 기사가 나오는 것이 있는데, 아마도 서기전 909년의 내휴(奈休) 천왕의 행적과 관련된 것이 아닌가 한다. 다만, 서기전1236년에 제23대 아홀(阿忽) 천왕 시절에 있었던 남국(藍國), 청구(靑邱), 구려(句麗), 몽고리(蒙古里)의 연합군이 은(殷)나라를 정벌하여 엄(淹), 서(徐), 회(淮)라는 제후국을 세운 것과도 관련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금문(金文) 내용
丙午天君鄕稷酉才斤天君賞厥征人斤貝用作父丁樽彛天?
병오(丙午)일, 천군(天君)이 근(斤)땅에서 직신(稷神)께 술로 제를 올리고, 천군(天君)이 그 정벌자 근(斤)에게 재물을 상으로 주어, 이를 사용하여 부정(父丁)에게 준이천? (술통, 솥등, 祭器)을 만들게 하다.
서기전 909년이면 주(周) 8대 효왕(孝王) 2년경이 되는데, 이때는 서주(西周)시대로서 금문(金文, 鐘鼎文)이 새겨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만, 서기전 909년경 고죽국(孤竹國)이나 산동지역의 엄국(淹國), 남국(藍國), 청구(靑邱) 부근의 근(斤)땅에서 주조된 것이 될 것이다.
한편, 위 당시 부정(父丁)이라는 인물이 고죽국(孤竹國)의 왕이라면 천군(天君)은 내휴(奈休) 단군천왕을 가리키는 것이 될 것이고, 당시 고죽국의 임금인 고죽군(孤竹君)을 천군(天君)이라 한 것이라면 부정(父丁)은 당시 고죽군의 아들이나 손자가 될 것이다.
엄독홀은 엄국(淹國, 淹夷)의 땅이 되며, 엄국은 태산을 중심으로 한 나라이고, 태산(泰山)은 천제(天祭)를 지내는 천단(天壇)이 있는 곳으로, 서기전 2267년에 태자 부루의 명을 받아 번한(番韓) 낭야(郞耶)가 천제(天祭)를 지낸 곳이기도 하며, 이후 태산은 노(魯)나라 땅에 들어가게 되었고 제환공(齊桓公)이 서기전 660년경 봉선(封禪)을 흉내낸 곳이기도 하다.
은주(殷周)시대의 금문(종정문)에는 보통 왕(王)의 행적을 새기고 있는데 위 금문에서는 천군(天君)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어 특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주(周)나라와 수호를 맺었는데, 서기전 980년경에 서국(徐國)의 강성(强盛)으로 인하여 주(周)나라가 위축되었던 것이 되고, 서기전 909년에 내휴(奈休) 천왕이 청구(靑邱)와 엄독홀(奄瀆惚)에 친림(親臨)하여 제천행사를 벌였던 것이며, 주나라와 수호를 맺어 평화시대를 열었던 것이 된다.
흉노(匈奴)의 조공(朝貢)
서기전 905년 병진년(丙辰年)에 흉노(匈奴)가 조공(朝貢)을 바쳤다.
흉노(匈奴)는 서기전 2177년 열양(列陽) 욕살(褥薩) 색정(索靖)이 죄를 지어 처음 종신금고형(終身禁錮刑)에 처해진 곳이 약수(弱水)인데, 나중에 사면을 받아 봉해지니 흉노의 한(汗)이 되어 흉노의 시조가 되었던 것이며, 서기전 650년경 이후에는 기자(箕子)의 작은 아들의 후손인 선우씨(鮮于氏)가 흉노의 왕이 되기도 하였고,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의 후손인 김씨(金氏)가 왕이 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서기전 905년에 흉노가 단군조선에 조공을 바칠 당시에는 흉노왕(匈奴王)이 색정(索靖)의 후손일 가능성이 많은 것이 된다.
번조선이 주(周)나라를 정벌하다
서기전 902년 기미년(己未年)에 번한(番韓) 이벌(伊伐)이 상장(上將) 고력(高力)을 보내어 회국(淮國)의 군사와 함께 주나라를 정벌하였다.
회국(淮國)은 서기전 1236년에 회대(淮岱)지역의 남쪽이 되는 회수(淮水) 유역에 세워진, 번조선(番朝鮮)의 관할에 속한 제후국으로서, 서기전 902년에 번한(番韓)이 보낸 상장(上將) 고력(高力)과 함께 군사를 내어 주(周)나라를 정벌한 것이다.
번조선(番朝鮮)이 주(周)나라를 정벌한 이유는 아마도 천자국(天子國)에 지나지 않는 주나라가 천왕격의 번한(番韓)이 다스리는 번조선에 조공(朝貢) 등 예(禮)를 다하지 아니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서기전 902년은 주나라 제8대 고왕(考王)의 9년째 해가 되며, 고왕은 이름이 벽방(辟方)이라 불리는데 서기전 910년부터 서기전 895년까지 15년간 다스렸다.
주(周)나라가 번조선(番朝鮮)에 조공하다
서기전 895년 병인년(丙寅年)에 주(周)나라 이공(二公)이 번한(番韓) 아륵(阿勒)에게 조공을 바쳤다.
주나라 왕 이공(二公)은 이왕(夷王)이라고 하며 이름은 섭(燮)이고, 서기전 895년부터 서기전 879년까지 16년간 재위한 왕이다. 이 이왕(夷王) 시대에 초(楚)나라가 왕(王, 天子)을 칭하였다. 주나라 시대에 제후국으로서 가장 먼저 왕을 칭한 나라가 초(楚)나라가 된다.
서기전 902년에 번조선(番朝鮮)이 주나라를 정벌한 이후,주나라가 상국(上國)인 번조선(番朝鮮)에 예(禮)를 갖추어 조공(朝貢)을 한 것이 된다.
태자 등올(登兀) 즉위
서기전 875년 병술년(丙戌年)에 내휴(奈休) 천왕께서 붕하시고, 선대 마휴(摩休) 천왕의 맏아들인 태자 등올(登兀)이 즉위하였다.
태자 등올(登屼)은 내휴(奈休) 천왕의 맏아들이 아니라 내휴 천왕의 형(兄)인 마휴(摩休) 천왕의 맏아들이다. 즉 등올이 마휴 천왕 시절에 태자(太子)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는 단정할 수 없으나, 마휴 천왕의 아우인 내휴(奈休)가 천왕의 대를 이을 태제(太弟)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되는데, 등올이 이미 태자로 봉해지지 아니하였다라면 내휴가 마휴 천왕의 뒤를 이은 후 장조카 등올(登屼)을 대를 이을 태자(太子)로 봉하여 천왕 자리를 되돌려준 것이 된다.
출처; 데일리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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