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조선 연대기(두밀천왕의 역사 109)

조선(朝鮮) 제27대 두밀(豆密) 천왕(天王)의 역사

아란산(阿蘭山) 붕괴
서기전 997년 갑신년(甲申年)에 천해(天海)의 물이 넘쳐 아란산(阿蘭山)이 무너졌다.
천해(天海)는 하늘(天)의 바다(海)라는 뜻인데, 단군조선 땅에서 하늘의 바다는 지금의 바이칼호로서, 북쪽이 하늘을 상징하여 북해(北海)가 된다.

큰물이 모여 있는 곳이 바다(海)라고 기록되는데, 육지 속에서는 호수(湖水)를 가리키는 것이 된다.
북해(北海)라는 말은 단군조선 시대 말로 ‘바이하이’라고도 발음되었던 것이라 보이는 바, 이 ‘바이하이’의 마지막 발음인 ‘이’가 ‘ㄹ’로 변음되면서 ‘바이할’이 되고, ‘ㅎ’이 ‘ㅋ’으로 격음화 되어 ‘바이칼’로 소리가 변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위치상으로 아란산(阿蘭山)은 바이칼호 주변에 있던 산이 되는데, 특히 바이칼호의 서쪽에 위치한 양운국(養雲國) 부근에 소재한 산으로서 지금의 사얀(Sayan)산맥에 위치한 산이 될 것이다.

수밀이국, 양운국, 구다천국의 조공
서기전 997년에 수밀이국(須密爾國), 양운국(養雲國), 구다천국(句茶川國)이 사신을 보내 특산물(方物)을 바쳤다.

수밀이국과 양운국과 구다천국은 모두 서기전 3897년 이전의 환국(桓國) 시대의 12환국에 속한 나라로서 이때까지 존속하여 온 것이 되는데, 배달나라와 단군조선을 거치면서 망하지 않고 자치세습국(自治世襲國)으로 내려온 것이며, 수시로 환국(桓國)의 정통성(正統性)을 이은 종주국(宗主國)이 되는 배달조선(倍達朝鮮)에 조공(朝貢)을 바친 것이 된다.

수밀이국(須密爾國)은 송화강과 우수리강과 흑룡강 유역에 소재한 나라로서 소흥안령산맥(小興安嶺山脈)의 동쪽에 위치하며, 숙신(肅愼)의 북쪽이나 북동쪽에 위치한 나라가 된다.
양운국(養雲國)은 바이칼호의 서쪽에 위치하였던 나라가 된다. 한편 바이칼호 동쪽에는 12환국의 하나인 비리국(卑離國)이 소재하였던 것이 되는데, 지금의 부리야트공화국 자리가 된다.
구다천국(句茶川國)은 독로국(瀆盧國)이라고 불렸는데, 북개마대령(北蓋馬大嶺)이 되는 대흥안령산맥(大興安嶺山脈)의 서쪽에 위치하였던 것이 되며, 쑥과 마늘을 산출하던 곳이라고 기록되고 있다.

큰 가뭄과 홍수와 구휼
서기전 990년 신묘년(辛卯年)에 큰 가뭄 끝에 큰 비가 쏟아져 백성들에게 곡식의 수확(收穫)이 없으므로 천왕께서 명을 내려 창고를 열어 두루 나누어 주게 하였다.

단군조선 시대에 이미 평상시에 창고에 곡식을 저장하여 두었다가 흉년에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는 구휼법(救恤法)이 있었던 것이 되는데, 이러한 법제도는 후대 고구려의 진대법(賑貸法)의 원류가 되는 것이다.

단군왕검 천왕께서 가르친 천범(天範) 8조에도 구휼에 관한 내용이 있는데, 구제구휼(濟恤)하더라도 모욕(侮辱)을 주거나 천대(賤待)하지 말라고 각별히 가르치고 있으며, 만약 이를 지키지 아니하면 영원히 하늘의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이며 몸과 집안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중국내륙 동이(東夷)의 맹주(孟主) 서언왕(徐偃王)
서기전 980년경 서국(徐國)의 언왕(偃王)이 주(周)나라를 공격하여 36군(郡)을 차지하니, 주나라 목왕(穆王)이 서언왕을 동방 36국의 주인(主人)으로 섬기도록 하였다.
주(周)나라 목왕(穆王)은 제5대 왕으로 서기전 1001년부터 서기전 947년까지 55년을 재위하였으며 이름을 만(滿)이라고 한다.

서국(徐國)은 고대중국의 기록에서 서이(徐夷)라고 불리는데, 서기전 1236년에 산동지역에서 단군조선의 제후국으로 출발하여 서기전 980년경에 출현한 서언왕(徐偃王)이 반경 500리(里)의 땅을 차지하여 36국을 다스려 주나라와 대등한 천자국(天子國)을 이루었던 나라이다.

이후 서국(徐國)은 서기전 680년경에 이르러 초(楚)나라 문왕(文王)에게 크게 패(敗)하여 서산(徐山)으로 수도를 옮겼다가, 서기전 668년에 관중이 재상으로 있던 제(齊)나라 환공(桓公) 시절에 제나라에 복속하였고, 이후 독립을 시도하다가 서기전 530년에 초(楚)나라 영왕(靈王) 시절에 초나라에게 정벌을 당하였으며, 서기전 526년에 다시 안영이 재상으로 있던 제(齊)나라 경공 시절에 제나라에게 정벌을 당하였고, 서기전 512년에 오(吳)나라 합려왕에게 완전히 망하였다.

이리하여 서국(徐國)은 서기전 1236년에 산동지역에서 단군조선의 제후국으로 봉해져, 약 250년이 지난 서기전 980년경에는 중국내륙의 대표적인 동이족 국가의 맹주(孟主)로서 주(周)나라와 종주(宗主)를 다투었던 것이며, 그로부터 다시 약 300년이 지난 서기전 680년경 이후에는 초(楚)나라와 제(齊)나라의 침공으로 위축되었다가, 서기전 512년에 오(吳)나라에 완전히 망하게 된 나라로서, 무려 725년을 존속한 나라가 된다.

삼성묘(三聖廟) 제사
서기전 979년 임인년(壬寅年)에 번한(番韓) 해수(奚壽)가 아들 물한(勿韓)을 상춘(常春)의 구월산(九月山)에 파견하여 삼성묘(三聖廟)에 제사를 돕게 하였는데, 묘(廟)는 상춘(常春)의 주가성자(朱家城子)에 있다.

삼성묘(三聖廟)는 삼성(三聖)을 모신 사당(祠堂)이다. 삼성(三聖)은 세분의 성인이란 뜻으로서 통상적으로 환국(桓國)의 시조이신 환인(桓因), 배달나라 시조이신 환웅(桓雄), 단군조선의 시조이신 단군왕검(檀君王儉)을 가리킨다.

번한(番韓) 해수(奚壽)가 아들 물한(勿韓)을 진조선(眞朝鮮)에 파견하여 삼성(三聖)께 올리는 제사를 돕게 하였다는 것이다.
상춘의 구월산에 삼신(三神) 제천단(祭天壇)이 있으며 삼성묘(三聖廟)도 건립하여 삼성(三聖)을 모신 것이 된다.

주가성자(朱家城子)는 후대에 고주몽(高朱蒙) 성제(聖帝)께서 수도로 삼았던 성(城)으로서 상춘(常春)에 소재한 것이 된다. 즉 고구려(高句麗) 개국 시조인 고주몽(高朱蒙) 성제(聖帝)는 고구려 이전의 북부여 말기에 대통(大統)을 이어 북부여를 계승함으로써 졸본(卒本)을 수도로 삼았는데, 이때를 졸본부여(卒本夫餘)라 하는 것이 되고, 이후 서기전 26년에 소위 눌현(訥見)으로 수도를 옮겼는 바, 이 눌현이 곧 상춘(常春)인 것이다.

눌현(訥見)은 늘봄의 이두식 표기로서 눌현보다는 눌견으로 읽는 것이 이두식 표기에 해당하는 한자를 읽는 방법이 되는데, 눌(訥)은 늘의 이두식 표기이고 견(見)은 봄의 이두식 표기가 되는 바, 물론 눌견보다는 늘봄이 더 정확한 독법이 된다. 상춘(常春)은 훈독(訓讀)으로 늘봄이다.

해모(奚牟) 즉위
서기전 972년 기유년(己酉年)에 두밀(豆密) 천왕께서 붕하시고 해모(奚牟)가 즉위하였다.
특별히 태자(太子)라고 적고 있지 않는데, 해모는 두밀 천왕의 태자가 아닌 다른 아들이 분명한 것이 된다.

 

출처; 데일리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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