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종(德宗) 2년
〈계유〉 2년(1033) 봄 정월 신미. 동여진(東女眞)의 장군(將軍) 개다한(開多閒) 등 25인이 내조(來朝)하였다.
철리국(鐵利國)에서 사신을 보내 좋은 말과 노랑담비가죽[貂鼠皮]을 바치니, 왕이 기쁘게 여겨 답례로 더 많은 것을 하사하였다.
을해. 송(宋)의 유수전(劉守全) 등 14인이 도망쳐 왔다.
기묘. 황주량(黃周亮)을 판어사대사(判御史臺事)로, 최충(崔冲)을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로, 민가거(閔可擧)를 예부상서(禮部尙書)로, 유종(柳琮)을 공부상서(工部尙書)로, 이주좌(李周佐)를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로 임명하였다.
신사. 동여진(東女眞)의 장군(將軍) 보기(寶伎)와 아어내(阿於乃) 등 113인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정해. 예부상서(禮部尙書) 나민(羅敏)이 표문(表文)을 올려 사직을 간청하였다.
을미. 거란(契丹)의 구내(仇乃) 등 18인이 도망쳐 왔다.
좌우위맹교위(左右衛猛校尉) 오행(吳幸), 이황(李璜), 신선립(申先立) 등이 거란(契丹)의 군사 7인을 사로잡아 관직을 1급씩 하사하였다.
2월 임인. 서여진(西女眞)의 지인(持印) 고음파(古音波)와 거란(契丹)의 대사(大師) 고성환(古省奐) 등 11인이 와서 토산물과 무기를 바쳤다.
기유. 동여진(東女眞)의 회화장군(懷化將軍) 거어울(居於蔚) 등 49인이 내조(來朝)하였다.
을묘. 김충찬(金忠贊)을 예빈경 지중추원사(禮賓卿 知中樞院事)로 삼았다.
3월 신미. 서여진(西女眞)의 장군(將軍) 니우불(尼亏弗)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해적이 간성현(杆城縣) 백석포(白石浦)에 쳐들어오자, 〈해적〉 50인을 사로잡아 바쳤다.
최희목(崔希穆) 등을 급제시켰다.
거란(契丹)의 해가(奚家) 고요(古要) 등 11인이 내투(來投)하자, 강남(江南)에 거주하게 하였다.
여름 4월 무술. 발해(渤海)의 수을분(首乙分) 등 18인이 내투(來投)하였다.
기해. 동여진(東女眞)의 귀덕장군(歸德將軍) 고어부(古於夫) 등 26인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무오. 발해(渤海)의 가수(可守) 등 3인이 내투(來投)하였다.
임술. 해적이 삼척현(三陟縣)에 침입하였는데, 40여 인을 사로잡았다.
5월 무자. 서여진(西女眞)의 정위(正位) 사어하(沙於下) 등 3인이 내조(來朝)하였다.
계사. 발해(渤海)의 감문대정(監門隊正) 기질화(寄叱火) 등 19인이 내투(來投)하였다.
6월 신축. 발해(渤海)의 선송(先宋) 등 7인이 내투(來投)하였다.
임인. 안동부(安東府) 협주(陜州)에 지진이 났다.
갑진. 서여진(西女眞)의 회화대장군(懷化大將軍) 거이라(居伊羅) 등 24인이 내조(來朝)하였다.
송(宋)의 신류(申流) 등 12인이 도망쳐 왔다.
병진. 동여진(東女眞)의 대상(大相) 고지문(古之門) 등 41인이 내조(來朝)하였다.
임술. 서여진(西女眞)의 중윤(中尹) 고사(古舍) 등 6인이 내투(來投)하였고, 고모한(古毛漢) 등 25인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가을 7월 임진. 동여진(東女眞)의 좌윤(左尹) 아포(阿浦) 등 43인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8월 갑오. 초하루 송(宋) 천주(泉州)의 상인 도강(都綱) 임애(林藹) 등 55인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무오. 태묘(太廟)에 현종(顯宗)을 합사(合祀)하였다.
평장사(平章事) 유소(柳韶)에게 명령하여 북쪽 국경에 관성(關城)을 새로 설치하도록 하였다.
9월 계해. 초하루 해의 빛깔이 〈변하여〉 혜성과 같았다.
유종(柳琮)을 병부상서(兵部尙書)로, 한빈경(韓彬卿)을 공부상서(工部尙書)로, 임유간(林維幹)을 어사중승(御史中丞)으로, 이자연(李子淵)을 이부낭중 어사잡단 우승선(吏部郞中 御史雜端 右承宣)으로, 염현(廉顯)을 우보궐(右輔闕)로, 이유도(李惟道)를 감찰어사(監察御史)로 각각 임명하였다.
겨울 10월 계사. 동여진(東女眞)의 귀덕장군(歸德將軍) 요빈(要賓)과 유원장군(柔遠將軍) 고지문(古之門) 등 37인이 내조(來朝)하였다.
기해. 서여진(西女眞)의 대사(大師) 아각팔(阿角八) 등 14인과 동여진(東女眞)의 원보(元甫) 오두나(烏頭那) 등 63인이 내조(來朝)하였다.
황주량(黃周亮)을 호부상서(戶部尙書)로, 민가거(閔可擧)를 형부상서(刑部尙書)로 임명하였다.
갑진. 선대(先代)의 공신(功臣)들에게 증직(贈職)하여 최응(崔凝)에게는 사도(司徒)를, 유신성(劉新城)에게는 태부(太傅)를, 최승로(崔承老)에게는 대광(大匡)을, 최량(崔亮)에게는 삼중대광(三重大匡)을, 서희(徐熙)에게는 태사(太師)를, 이지백(李知伯)에게는 대광(大匡)을, 이몽유(李夢游)에게는 사공(司空)을, 한언공(韓彦恭)에게는 태부(太傅)를, 김승조(金承祚)에게는 사공(司空)을, 최숙(崔肅)에게는 태사(太師)를, 강감찬(姜邯贊)에게는 대승(大丞)을, 최항(崔沆)에게는 정광(正匡)을 더하였다.
정미. 거란(契丹)이 정주(靜州)를 침공하였다.
기유. 교서(敎書)를 내리기를,
“내가 선왕의 위업을 외람되게 계승하여 삼한(三韓)을 통치하면서 뜻은 나라를 잘 다스려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데 힘썼고, 마음은 조상을 받들어 효도를 생각하는 데 간절하였다. 올해 합사(合祀)하여 배향(配享)하는 해를 맞아서 친행(親行)의 예법을 잘 갖추었다. 특별한 은혜를 널리 퍼트려 온 나라가 함께 기뻐하게 하려고 한다. 나라 안에 대사면령을 내려 불충(不忠), 불효(不孝), 권력을 이용한 불법적 재물의 취득[坐贜], 간음, 절도를 제외하고 유형(流刑) 이하의 죄수를 모두 용서하며, 참형(斬刑)과 교형(絞刑)에 해당하는 죄수는 유인도에 유배 보내도록 하고, 과거에 유배간 자는 가까운 곳으로 옮겨주며 속전(贖錢)을 바친 자는 풀어주도록 하라.”
라고 하였다.
11월 계해. 초하루 원영(元穎)을 서경부유수 지분사호부사(西京副留守 知分司戶部事)로 삼았다.
신묘. 서여진(西女眞)의 우화(亏火) 등 156인이 관성(關城)을 개척할 때 모두 공로가 있었으므로 관작(官爵)을 1급씩 더하였다.
12월 신축. 서여진(西女眞)의 보윤(甫尹) 보실(甫失) 등 39인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갑진. 문사명(門思明)과 문재선(文在先)을 시어사(侍御史)로, 이신(李紳)을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로, 임사행(林思行)을 감찰어사(監察御史)로 각각 임명하였다.
계축. 발해(渤海)의 기질화(寄叱火) 등 11인이 내투(來投)하자 남쪽 땅에 거주하게 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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