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1(肅宗一) 5년
〈숙종(肅宗)〉 (경진) 5년(1100) 봄 정월 경진. 요(遼)의 사신 소랑(蕭朗)이 돌아가게 되자, 왕이 사례하는 표문(表文)을 보냈다.
갑신. 동여진(東女眞)의 장군 표어내(表於乃) 등 60인이 내조(來朝)하였다.
계사. 구정(毬庭)에서 친히 초제(醮祭)를 지냈다.
을미. 큰 아들 왕우(王俁)를 왕태자로 삼았다.
2월 을사. 〈왕이〉 신봉루(神鳳樓)에 나아가 참형(斬刑)과 교형(絞刑)의 2죄 이하를 사면하고, 명산대천(名山大川)의 신호(神號)를 더하였다. 개경(開京)과 서경(西京)의 문무백관의 관작(官爵)을 한 등급씩 더하고 첨사부(詹事府)와 춘방(春坊)의 관원은 관작을 두 등급씩 더하며, 산관(散官) 7품으로 조정에 나온 지 20년 된 사람에게는 의복을 하사하고 동번(東蕃)과 서번(西蕃)의 추장(酋長)에게는 무산계(武散階)를 더하였으며, 홀아비와 홀어미, 늙거나 병든 자, 효자, 순손(順孫)에게 차등 있게 물품을 하사하였다.
신해. 연등회(燃燈會)를 열고, 왕이 봉은사(奉恩寺)에 갔다.
무오. 왕이 장원정(長源亭)에 행차하였다.
3월 을유. 중서성(中書省)에서 아뢰기를,
“「현행력(見行曆)」에 잘못된 곳이 있으니, 역서(曆書)를 편찬한 자의 관직을 삭탈하기를 청합니다.”
라고 하니, 그대로 따랐다.
계사. 최사추(崔思諏)를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로 임명하였다.
여름 4월 정유. 초하루 일식이 일어났다.
기해. 〈왕이〉 환궁하였다.
임자. 〈왕이〉 건덕전(乾德殿)에 나아가 복시(覆試)를 보이고, 한숙단(韓淑旦) 등을 급제시켰다.
5월 신사. 송(宋) 명주(明州)에서 첩(牒)을 보내 철종황제(哲宗皇帝) 붕어하고 황제의 아우 단왕(端王) 조길(趙佶)이 즉위하였다고 알려왔다. 왕이 철종(哲宗)을 위하여 대안사(大安寺)에서 명복을 빌고자 하였으나, 간관(諫官)이 옳지 않다고 하므로 이에 중지하였다.
임오. 요(遼)에서 장신언(張臣言)을 보내 원자(元子)의 책명(冊命)을 전달하자, 왕이 의장(儀仗)을 갖추고 태초문(太初門) 안에서 맞이하였다. 칙서(勅書)에서 말하기를,
“경(卿)은 귀국에 힘을 다하고 우리나라에는 충성을 다하였다. 글을 보내 전례를 따라 책봉하여 달라고 청하였고, 지금까지의 정성을 보아 마땅히 부탁한 것을 따라야 할 것이다. 이에 엄격한 규정을 세우고 공의(貢儀)를 더욱 갖추어 특별한 총애를 내리는 것을 보이며 두터운 은혜를 밝힐 것이다. 이미 담당 관청에게 날짜를 택하여 예를 갖추어서 책명을 이르게 하라고 하였다. 지금 비서소감(秘書少監) 장신언을 보내 이를 보유(報諭)하게 하고, 별도로 경에게 의복과 필단(匹段), 은(銀)과 견(絹) 등의 물건을 보내는데 별록(別錄)과 같이 갖추었으며 또 불경(釋經) 2함(函)을 보낸다.”
라고 하였다.
경인. 장신언(張臣言)이 〈요(遼)로〉 돌아가자, 왕이 사례하는 표문(表文)을 보냈다.
6월 정유. 왕이 봉은사(奉恩寺)에 갔다.
을묘. 태묘(大廟)와 8릉(八陵) 및 송악 동신사(松嶽 東神祠)에서 비를 빌었다.
을축. 송(宋)에 상서(尙書) 임의(任懿)와 시랑(侍郞) 백가신(白可臣)을 보내 〈송 황제의 죽음에〉 조문하고 위로하였다.
가을 7월 정축. 송(宋)에 상서(尙書) 왕하(王嘏)와 시랑(侍郞) 오연총(吳延寵)을 보내 〈송 휘종의〉 즉위를 축하하였다.
을유. 왕이 흥왕사(興王寺)에 갔다.
무자. 회경전(會慶殿)에서 5일간 인왕도량(仁王道場)을 열었다.
8월 정유. 〈왕이〉 복령사(福靈寺)에 행차하였다.
경자. 〈왕이〉 홍호사(弘護寺)에 행차하였다.
기미. 대궐 남쪽 누교(樓橋)와 동랑(東廊) 및 사점관(四店館), 장생서(掌牲署)와 사의서(司儀署)에서 화재가 나서 민가(民家) 수백 채가 불에 탔다.
9월 정묘. 왕이 국청사(國淸寺)에 갔다.
병술. 요(遼)에 이재(李載)를 보내 조서(詔書)를 내려준 것에 사례하였다.
무자. 송(宋) 상인 도강(都綱) 이기(李琦) 등 30인이 왔다.
겨울 10월 병신.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에 현덕창(玄德倉)의 쌀 100곡(斛)을 하사하였다.
임자. 요(遼)에서 소호고(蕭好古)와 고사녕(高士寧)을 보내 왕태자를 책봉하였다. 칙서(勅書)에서 말하기를,
“경(卿)은 선조의 지위를 이어받아 멀리 바다 건너의 지역에 있으면서 장차 후계를 세우고자 하여 공손히 우리의 동의를 기다리고 있다. 경(卿)의 요청에 따라 나의 말을 이미 알려주었으나, 특별히 사신을 보내 공작(公爵)을 더하는 특전을 줌으로써 오로지 나의 후의를 밝히고 돌보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지금 고주관내관찰사(高州管內觀察使) 소호고 등을 파견하여 특별히 예를 갖추고 귀국에 가서 경의 맏아들 왕우(王俁)를 책봉하여 삼한국공(三韓國公)으로 삼고, 인수(印綬), 간책(簡冊), 거로(車輅)와 아울러 별도로 의대(衣帶), 필단(匹段) 안장 얹은 말, 활과 화살의 여러 물건을 별록(別錄)과 같이 갖추어 보낸다.”
라고 하였다. 책문(冊文)에서 말하기를,
“짐은 7대(七聖)째 내려온 조상의 위대한 업적을 받아 백대를 이은 나라(百王)의 정통을 계승하였다. 돌이켜 보면 귀국[日域]은 우리[天朝]를 보좌하는 데 협력하여 비록 계속 대를 이어 책봉하여서 이미 구복(舊服)에 있었으나, 국가를 계승하는 총애 받는 태자에게는 떳떳한 도리를 갖추지 못하였다. 유사(有司)에 칙서를 내려 고사(故事)를 따라서 좋은 날을 택하여 특별한 예우로 반포하게 하였다.
그대 고려국왕(高麗國王) 왕희(王熙, 숙종)의 맏아들 왕우(王俁)는 으뜸의 정기를 타고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뛰어난 자질이 있었다. 학문을 배우는 것에 지극히 총명하여 시서(詩書)와 예악(禮樂)의 근본 원리를 연구하였고, 덕을 따라 어기지 않았으며 부자(父子)와 군신(君臣)의 의리에 합당하였다. 선조로부터 충성을 대대로 이어오면서 길이 존경하는 노력을 생각하였으니, 대를 잇는 아들에게 경사가 있는 것이 마땅하다. 하물며 적자인 맏아들로 있어서 좋은 평판이 많이 있으니 사방에서 한 마음으로 관심을 두고 있다.
이에 정사(正使) 고주관내관찰사 소호고와 부사(副使) 수위위경(守衛尉卿) 고사영 등을 파견하여 부절(符節)을 가지고 예를 갖추어 책명(冊命)을 내려 그대를 순의군절도 삭무등주관찰처치등사 숭록대부 검교태부 동중서문하평장사사 지절삭주제군사 행삭주자사 상주국 삼한국공(順義軍節度 朔武等州觀察處置等使 崇祿大夫 檢校太傅 同中書門下平章事使 持節朔州諸軍事 行朔州剌史 上柱國 三韓國公)으로 식읍(食邑) 3,000호 식실봉(食實封) 500호로 책봉한다.
아아, 산하(山河)에 맹세한 신의를 이어오면서 그대는 이미 그 경사스러운 일을 같이 하였고, 활과 도끼[弓鉞]를 하사하여 정벌할 수 있게 하였으니 그대는 또한 그 힘을 같이 펼쳐야 한다. 오직 효성과 공경만이 천성(天性)에 부합할 수 있으며, 오직 겸손과 화합만이 물성(物性)에 순응할 수 있을 것이다. 경계하고 조심하여 나의 아름다운 말을 잊지 말라.”
라고 하였다.
을묘. 왕과 태자가 남교(南郊)에 가서 책명(冊命)을 받았다.
기미. 태자가 요(遼) 사신에게 문하성(門下省)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신유. 요(遼)에 박호(朴浩)를 보내 천안절(天安節)을 축하하였다.
11월 을축. 요(遼) 사신 소호고(蕭好古) 등이 돌아가게 되자 왕이 사례하는 표문(表文)을 보냈다. 요(遼)에 김후선(金侯善)을 보내 왕의 생일을 축하한 것을 사례하였다.
병자. 팔관회(八關會)를 열고, 〈왕이〉 법왕사(法王寺)에 행차하였다.
무인. 송(宋) 상인과 탁라(乇羅) 및 여진(女眞) 등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신사. 요(遼)에 김구년(金龜年)을 보내 사은(謝恩)하도록 하였다.
병술. 요(遼)에 혁련정(赫連挺)을 보내 토산물[方物]을 바치고, 최선위(崔善緯)는 신년을 하례하였다.
12월 계사. 초하루 요(遼)에서 대복경(大僕卿) 왕집중(王執中)을 보내 왕의 생일을 축하하였다.
갑진. 왕집중(王執中)이 〈요(遼)로〉 돌아가게 되자, 왕이 사례하는 표문(表文)을 보냈다.
병진. 이위(李瑋)를 급사중(給事中)으로, 이제(李穄)를 시어사(侍御史)로, 소태간(邵台幹)을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로, 유의(劉誼)와 이덕우(李德羽)를 좌습유(左拾遺)와 우습유(右拾遺)로 각각 임명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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