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사막길 향해서 ⑬ 끊임없이 독립을 지켜온 도시
대국에 지지않고 끊임없이 독립을 지켜온 도시

① 아얼호 석굴 외부 모습. ② 바이하시얼 석굴. ③ 승금구 석굴 외부 모습. ④ 승금구 석굴 불상이 있던 자리.
성곽 밑 부분의 ‘아얼호’
교하고성을 중심으로 몇 개의 석굴이 만들어졌다. 왕이 만든 석굴과 왕자가 만든 석굴은 규모와 칠을 한 색깔에서 차이를 보인다.
아얼호 석굴은 교하고성의 성곽 밑 부분에 만든 석굴이다. 위구르 왕조 시대의 유물로 승방굴과 불전굴로 보인다. 교하고성에서 바로 가는 길은 없으며 차량으로 검문소를 지나면 나온다. 현재 남아 있는 유적은 벽화가 조금 남아 있다. 문양은 화려해 9세기 이후의 투루판 지역 불교 문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아얼호 석굴 조사 당시에 석굴을 지키는 부부와 아이가 있었는데, 아이와 친해지자 석굴 내부를 촬영하게 도움을 줬었다. 석굴 밖은 초라했지만, 안에는 제법 많은 벽화가 남아 있었다. 한국 사람을 처음 본다던 부부는 석굴 곳곳을 안내해 줬다.
소박한 5개의 ‘바이하시얼’
바이하시얼(拜錫哈) 석굴은 배제클리크 석굴 뒤쪽의 소박한 석굴군이다. 10세기경 만들었으며 바이하시얼은 위구르어로 5개를 뜻한다. 현재 남아 있는 5개의 석굴은 승방굴과 불전굴이 모두 남아 있는데 벽화만이 존재한다. ‘유마경변상도’의 흔적이 남아 있어 이 시기 불교 신앙을 추정하게 해주는 유적이다. 내부는 절대 공개하지 못한다고 해서 촬영하지 않기로 하고 밖에서 볼 수 있었다.
내부의 모습은 벽화는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조금의 벽화와 훼손된 불상들만이 슬픔을 느끼게 한다. ‘유마경변상도’는 조사팀의 눈으로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카메라 플래시는 물론 소지하고 있던 전등도 켜질 못 하게 했기에 앞에서 아쉬움에 발을 돌려야 했다.
도굴 흔적이 남은 ‘승금구’
승금구(勝金口) 석굴은 배제 클릭 석굴 남쪽에 있으며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석굴이다. 현재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소조상들이 다량 출토된 것을 볼 수 있다. 이 석굴도 위구르 왕조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규모가 바이하시얼 석굴보다는 제법 크다. 3호 굴은 중심주굴로 배제클리크 석굴과도 유사점이 많다.
다만 보존 상태가 좋지 않고 많은 도굴의 흔적이 보인다. 도굴이 문제가 아니라 영화 촬영지로 사용되는 바람에 많은 파괴가 생겼다고 한다. 끝나고 복원하기로 하고는 떠나 버리자 그대로 남아 있게 되었다. 복원 중이라고는 하지만 중단되어 방수포만이 덮여있다. 관리인은 조심스럽게 안내를 해줬다. 동행해주던 투루판 박물관 직원도 수리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승금구 석굴은 밖에서 보면 규모가 제법 커 보인다. 수많은 석굴의 흔적과 내부의 모습은 복원이 된다면 제법 큰 규모의 석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개발 중인 도시
투루판 지역은 지금도 개발 중인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박물관도 새로 건축됐으며 안에는 많은 문화재를 가지고 있다. 박물관은 중국에서 지역에 따라 촬영할 수 있거나 불가능한 지역이 있다. 박물관에는 목간과 시대별 동전도 있다.
투루판 지역은 중국과 거리가 가까운 관계로 중국에 지배하에 있거나 독립하는 시기를 거친다. 기본적으로 위구르인이 많은 관계로 혼혈들도 많이 보인다. 실크로드의 특성상 코카서스 계나 몽골계의 혼혈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는 튀르크계로 보이는데 동투르키스탄에 속하는 지역이다. 이사 위쉬프 알프테킨(1901~1995), 신장성 동튀르키스탄 제2공화국의 국민당에 소속되어 있던 알프테킨은 에흐멧잔 카심(ئەخمەتجان قاسىمى, Exmetjan Qasim, Әхмәтҗан Қасим)을 필두로 한 신장평화민주수호동맹의 지도부가 1949년 9월 소련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의문의 추락사고로 숨지면서 신장이 중국 공산당에게 병합될 것을 우려하여 히말라야를 거쳐 인도령 카슈미르에 있는 라다크에 도착, 튀르키예로 망명했다. 2010년대 말에는 신장 재교육 캠프가 들어서 위구르족과 카자흐족을 탄압하고 있다.
정치 경제적 독자성을 지켜온 곳
이 지역은 인종, 민족, 종교적으로 중국과 매우 이질적인 곳이며, 오랜 옛날부터 독립적 혹은 자치적으로 정치, 경제적 독자성을 지켜온 나라이며, 문화적-언어적으로도 중국 문화권에 쉽게 동화되기에는 어려운 곳이었다.
약 2~3세기 지속된 반자치적 부족단위의 유목 생활을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했고, 이것이 청나라가 붕괴되고, 중화민국이 수립됨으로써 새로운 독립공화국 수립으로 이어지게 되나, 수차례에 걸친 군벌의 침략과 중화민국의 재정복 시도 및 정정불안으로 빛을 보지 못하다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으로 중국 인민해방군의 침략이 있었다.
현재는 중국 전체 면적의 1/6을 차지하며, 막대한 지하자원과 천혜의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향후 분리독립 가능성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되고 있으며, 구 소련에 속해있던 이슬람 공화국들의 독립으로 이 지역 인근에 유사한 민족적, 문화적, 종교적 기원을 갖는 독자적 정치체들이 등장함으로써 독립하려는 운동은 더욱 커지고 있다.
비슷한 듯 하지만 너무 다른
그러나 중국 정부는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이 이 자치구에 파급되는 것을 강력히 경계하고 있다. 이 자치구에는 1990년대 이래로 심각한 폭동이 많이 발생하였고, 특히 1997년 2월에는 우루무치에서 연쇄 버스 폭발사건이 발생한 이외에 카자흐스탄 국경에 가까운 이닝 시에서도 많은 사람이 희생된 충돌이 있었다. 현재는 붕괴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에게서 군사훈련을 받았던 위구르족 청년들도 다수 있다고 전해져, 9·11 테러 이후, 이 지역에서도 이것을 계기로 단속이 강화되고 있다. 조사팀도 호탄지역을 방문할 당시 공항에서 몇 번의 검문을 거치는 과정을 격기도 하였다.
음식과 문화는 다르지만 묘하게도 중국과 가까운 특징이 보인다. 위구르어나 중국어를 같이 쓰는 모습을 곧잘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글의 뿌리는 넓게 보면 튀르크족에 속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있다. 이 지역이 왜 중국으로부터 끊임없이 지배와 독립을 계속한 이유를 알게 해준다. 이제는 신장지역이 아닌 과거 동서문화교류의 심장인 둔황으로 석굴 기행을 가고자 한다.
문무왕 동국대 와이즈캠퍼스 외래교수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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