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쇼카와 칼링가족

 

항해자의 수호신으로도 모셔진 디팡카라(Dipangkara) 보살상. 인도에서 대단히 먼 바다인 술라웨시 서해에서 발견되었다.
 
아쇼카 시대의 불교 전파는 크게 두 가지 맥락이다
 
하나는 서쪽으로 인더스강을 거슬러 올라
펀자브 등을 거쳐서 오늘의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길이다
주로 육로를 통하여 불교가 전파되었다.

다른 하나는 칼링가를 통한 바닷길 전파
자신이 무참히 학살한 칼링가가
해양불교 전파의 교두보로 작동했다.

유수의 선단, 유능한 선원이 포진한 칼링가는
벵골만이라는 유리한 해안에 자리 잡아 동남아
나아가서 스리랑카 불교의 출발점이 되었다.

석존이 설법하던 중심지인 마가다 왕국은 열반 후에 여러 번 지배자가 바뀐다. 석존 열반 당시에는 아자타삿투왕 즉위 8년째 되던 해였다. 왕조가 바뀌어 난다왕조가 들어섰다. 그런데 기원전 326년 알렉산드로스가 북서인도까지 정벌하여 인도아대륙은 전란에 휩싸인다. 알렉산드로스의 북서인도 정벌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깊었다. 모든 전쟁과 정벌은 참혹한 것이지만 동서가 뒤섞이는 문명사적 전환점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갠지스-인더스 문명 연결한 마우리아 왕조
알렉산드로스가 정벌한 북서인도는 탁실라, 간다라 등 교통의 요지다. 이 길을 따라서 오늘의 아프가니스탄으로 갈 수 있다. 교역로를 따라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점이나 활기찬 농업 중심지에 주요 도시가 세워졌다. 이들 도시에서는 주화를 만들어 그리스를 강조하는 내용을 새겨 넣었다. 주화 형태는 점차 표준화됐다. 앞면에는 곱슬머리에 왕관을 쓰고, 알렉산드로스가 그랬듯이 오른쪽을 바라보는 현재의 통치자가 각인됐다. 뒷면에는 그리스 문자로 신원을 밝힌 아폴론 신이 새겨졌다.

중앙아시아와 인더스강 유역 어디서나 그리스어를 들을 수 있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죽고 100년이 지난 뒤에도 일상적으로 그리스어를 썼다. 박트리아에서 나온 기원전 200년 무렵의 세금 영수증과 병사의 봉급 명세서에도 국제 공용어 그리스어가 쓰여 있었다. 이를 학술적으로 그레코-박트리아(Greco-Bactrians), 인도-그리스(Indo-Greeks)라 명명하기도 한다(기원전 250~기원후 10). 여기서 간다라 양식이 출현하였음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스인 정벌이라는 혼란 속에서 찬드라굽타가 난다왕조를 무너뜨리고 마우리아 왕조를 세운다. 외침은 인도아대륙 최초의 통일국가가 탄생하는 결과를 빚었다. 갠지스강과 인더스강을 아우르고 이른바 서역이라는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방대한 영역이다. 통일국가의 형성으로 비로소 서쪽의 인더스강, 동쪽의 갠지스강 문명권이 하나로 통일되었다.

찬드라굽타의 아들 빈두사라는 데칸고원을 경략(經略)한다. 빈두사라의 아들 즉 마우리아 3대가 아쇼카다. 아쇼카가 즉위한 것은 기원전 268년이다. 아쇼카는 마지막 남은 정벌에 나섰다. 통일 영역에 포함되지 않은 곳은 동쪽 벵골만의 칼링가족과 남쪽 타밀족이었다. 인도 중부의 동쪽 벵골만에 자리 잡은 칼링가 정복전쟁(기원전 261년경)은 통일제국 마우리아 왕조의 마지막 평정이었다. 

칼링가족 참상 이후 불법(佛法) 수호자로
칼링가족만 정벌하면 인도 대부분이 손아귀에 들어오는 상황이었다. 칼링가는 작지만 강했다. 중인도 동쪽 해안을 점거하고 있어 동남아로 가는 해양 출구로 중요했다. 많은 상인집단이 오랫동안 무역거점으로 자리 잡아 경제적 부가 충만했고, 한때는 갠지스강까지 그들 영역이었다.

전쟁은 거칠고 기괴스러웠다. 오디샤의 칼링가족이 살던 거대한 칠리카 호수가 피로 물들었다. 코끼리 군단을 이끌고 전투에 나섰는데, 잘 길들여진 코끼리도 상처를 입으면 야생으로 돌변하여 전장을 미친 듯이 짓밟고 다닌다. 시신이 산을 이루고 피가 강을 적셔 산야가 붉게 변하고 남은 것은 이들을 뜯어먹는 야생동물들 뿐이었다. 아쇼카는 통일 대업을 이루었으나 무려 30만명으로 추산되는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30만명은 당대 인구로 볼 때 가공할 숫자였다.

이 미친 전쟁에서 아쇼카의 생각이 바뀐다. 킬링가족 압살이라는 무력전쟁의 참사에 아쇼카는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 아쇼카는 마침내 불법(佛法, Dharma)의 수호자로 변신한다. 아쇼카는 상가를 가까이하면서 자각하여 즉위 10년 후에 삼보리를 얻는다. 참혹한 전쟁을 거친 알렉산드로스가 문명의 수호자로 나섰듯이, 아쇼카 역시 불교를 중심으로 내세우고 새로운 치세를 시작한다. 곳곳에 스투파와 자신의 불법 수호를 적은 기둥과 비석을 세운다. 스투파는 전례 없이 컸으며, 돌기둥은 하늘 높이 솟았다. 불법 수호자로서의 자신의 권위를 만방에 내세웠다.

암벽에 법칙을 각인한 석주가 오늘까지도 30여 군데 남아있다. 법현과 의정 등 구법승은 예외 없이 이 기념비적 축조물에 경의를 표하고 기록을 남겼다. 불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대학살과 참상을 딛고서 제국의 종교로 부상하여 세계종교로서의 규모를 갖추고 뻗어나가기 시작한다.

아쇼카 시대의 불교 전파는 크게 두 가지 맥락을 살펴보아야 한다. 서쪽으로 인더스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펀자브 등을 거쳐서 오늘의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길이다. 주로 육로를 통하여 불교가 전파되었다. 다른 하나는 칼링가를 통한 바닷길 전파다. 자신이 무참히 학살한 칼링가가 해양불교 전파의 교두보로 작동했다.

마우리아 왕조 이후에 굽타 왕조 등 여러 다양한 왕조가 칼링가를 지배한다. 칼링가족은 상층 지배 왕조가 바뀌어도 한결같이 ‘칼링가의 왕’이란 호칭을 즐겨 썼다. 그만큼 지배층만 바뀔 뿐 그 토대는 칼링가족이었다. 칼링가는 기본적으로 상인집단이 중심이었다. 상인의 배를 타고 전교승이 동남아로 건너가게 된다. 동남아와 중국으로의 해양을 통한 불교 전파에서 칼링가 해역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른바 상좌부불교가 이 해역에서 동남아로 전파되었고, 남중국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스리랑카, 미얀마와 말레이반도, 수마트라와 자바,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의 불교는 대체로 동인도 바닷가에서 출발한 상선을 타고 전파되었다.

기원전에는 항해기술로 보아 아무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외국으로 갈 수 없었다. 일정 크기의 선박, 항해기술을 보유한 선원 등 필요조건이 맞아야 했다. 그런 점에서 유수의 선단과 유능한 선원이 포진한 칼링가는 벵골만이라는 유리한 해안에 자리 잡아 동남아 불교, 나아가서 스리랑카 불교의 출발점이 되었다. 칼링가에서 진신 치아가 벵골만을 건너 스리랑카로 넘어가서 불치사에 안착하였음은 전편에서 다룬 바 있다. 아쇼카왕의 아들인 마힌다 장로가 배를 타고 스리랑카로 넘어간 곳도, 의정이 배편을 기다렸던 곳도 이곳이다. 그만큼 칼링가의 거대한 석호에 존재하던 항구들이 해양불교의 진원지였다.

동남아에 미친 인도화 물결
불교 전파는 고대와 중세시대, 동남아에 건설된 인도 식민지에 힘입었다. 그 식민지라는 것은 근대적 의미의 식민지와는 전혀 다르다. 종족 이동과 정착, 문명의 전파와 이식에 다른 정착촌의 성립을 뜻한다. 대부분 이들 동남아 식민지는 칼링가와 같이 동해안에서 이주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 북방으로의 불교 전파가 소왕국과 구법승을 중심으로 한 이동이었다면, 인도인이 집단이주를 택한 동남아는 그 규모와 사정이 전혀 달랐다. 오늘날 동남아에 최대의 불교 세력이 남아있게 된 이유도 선박을 통한 대규모 전파라는 역사적 변별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도와 동남아 무역 관계는 당연히 문명교류를 수반했다. 불교와 힌두교, 서사시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 산스크리트 문자, 사원 건축양식 등이 망라되었다. 사람 이름, 흔히 사용하는 어휘, 예술이나 공예품에서 인도의 흔적이 뚜렷하다. 불교는 지금도 미얀마에서 베트남에까지 주요 종교로 남아있으며, 발리섬처럼 힌두교가 주류인 곳에도 산재한다.

인도 문명의 동남아 확산과 전파는 상인의 경제적 행위는 물론이고 불교와 힌두교를 중심으로 한 정신적·문화예술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불교와 힌두교는 서로 배타적이기도 하지만 서로 의존적으로 공생하는 경우도 많았다. 인도 언어와 도량형 등은 국가 통치 규칙을 정하는 정치와 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산스크리트어를 비롯한 언어 확산, 나아가서 이주하거나 장기 체류하는 상인의 국제결혼으로 종족 결합과 혼혈이 강화됐다. 인도아대륙에서 동남아 교섭의 주력은 동쪽 벵골만에 위치한 세력이었다. 그래서 칼링가족 같은 벵골만 해양세력의 역할을 주목하는 중이다. 

주강현 해양문명사가 [불교신문37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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