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석남사 마애여래입상

 

천년세월 중생 위해 설법하는 서운산 부처님

통일신라 양식 계승한 고려초 불상
설법인 수인으로 기도객 맞아

검은색과 흰색 회색의 불규칙한
자연암석에 조성해 놓았음에도
지금까지 특별한 훼손없이 보존

안성 석남사를 지나 서운산 등산로를 500여 미터 올라간 지점 자연석 돌탑 앞에 조성돼 있는 ‘안성 석남사 마애여래입상’ 모습.


가을바람이 스산하다. 체로금풍(體露金風)이라 했던가.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나무는 잎을 떨구어 내고 앙상한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상촌새말길 3-120(상중리 508)에 위치한 서운산 석남사에도 흩날리는 낙엽이 등산객들의 마음을 술렁이게 한다.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기도 한 석남사를 지나 서운산 등산로를 500여 m 올라간 지점 좌측 언덕배기(산22번지) 자연석에 서 있는 ‘안성 석남사 마애여래입상’도 여름 내내 고스란히 맞았던 장맛비의 흔적을 서서히 거두고 있다. 이끼 낀 검은 바위에 서 있는 마애부처님은 천년의 세월을 지나오며 바위의 균열까지 떠안으며 찾아오는 기도객의 발자국 소리를 경청하고 있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이 마애부처님은 높이 7m, 너비 6.5m에 달하는 암벽에 거의 꽉 차게 새겨진 거대불상으로, 불상 높이 4.5m, 전체 높이는 5.3m이다. 한갓진 등산길 옆 오르막길에 자리하고 있어 찾는 발길이 뜸할 줄 알았는데 마애불 앞에 쌓인 큼직한 돌탑이 증명하듯 많은 기도객이 다녀갔음을 알려준다.

울퉁불퉁한 자연석을 정밀하게 다듬지 않고 양각으로 조성한 마애부처님은 서 있는 모습이다. 부처님의 머리는 민머리 형태로 지혜를 상징하는 의미로 정수리를 상투처럼 올린 육계(肉)가 당당하다. 그 위로 세 개의 선으로 두광(頭光)을 새겨 마애부처님이 빛을 발하는 모습이다.

귓불이 축 늘어지고 넓고 눈과 코, 입을 두텁게 표현해 후덕해 보이는 얼굴은 삶에 지친 모든 중생을 보듬어 줄 것 같다. 목에는 지옥과 아귀, 축생도의 번뇌와 업 고통을 건지겠다는 삼도(三道)가 표현돼 있다. 마애불의 법의(法衣)는 두 어깨를 덮는 통견(通肩)으로 배 부분까지 ‘U’자형으로 내려와 있고 가슴에는 매듭이 보인다.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안은 체 석남사를 굽어보고 있는 마애부처님. 


두 손은 가슴 앞에서 살포시 들어 올리고 있으며 오른손은 검지만을 펴고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는 설법인(說法印)의 수인을 표현하고 있다. 마애불의 몸 전체를 아울러 3개의 선각으로 신광(身光)을 표현해 두광과 더불어 빛을 발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랫부분에는 5개의 발가락이 뚜렷한데 8개의 연꽃문양의 대좌 위에 올려져 있다.

불두와 불신의 모습은 비교적 정밀하게 표현해 비대한 모습이며 상대적으로 하반신의 모습은 단순하게 표현했다. 마애불은 투박한 얼굴 모습과 몸 부분의 띠 매듭 표현, 도식화된 옷주름 등으로 미루어 통일신라 시대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초기의 작품으로 추정한다.

석남사를 굽어보며 서 있는 마애부처님은 조성 당시에는 석남사의 사역(寺域)이 이곳까지 닿아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검은색과 흰색, 회색의 불규칙한 자연암석에 조성해 놓았음에도 지금까지 특별한 훼손없이 보존돼 있음은 다행스럽다. 다만 표면이 거친 암석이어서 자연적으로 균열이 가 있는 모습은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지금은 후미진 산 언저리에 자리한 마애부처님이지만 조성 당시 안성지역은 경상도와 충청도를 거쳐 한양에 이르는 교통의 요지였다. 인근의 청룡사와 칠장사의 규모를 보아도 그러하고 안성지역의 수 많은 불교유적들이 이를 증명한다. 유구한 세월은 번성했던 지역을 쇠락한 변두리로 만들기도 하고 쇠락한 지역도 새로운 신흥지역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며 모든 게 제행무상(諸行無常)함을 일깨워 준다.

단풍철에 찾은 마애부처님 곁에는 겨울을 준비하는 다람쥐들이 낙엽사이를 바스락거리며 겨울에 대비해 부지런히 도토리를 모으고 있었다. 마애불 앞 산길에는 무수한 기도객들이 올려 놓은 돌탑 2개가 눈에 들어온다. 어머니와 아들로 보이는 기도객은 대학입시를 앞두고 지극정성을 올리는 모습이다. 어떠한 사연으로 올라온 지 알 수 없는 수줍은 여인도 마애부처님 앞에 두 손을 모으고 열심히 기도를 하고 있다.

서운산 계곡에는 여름 장마에 뿌리를 드러낸 100년은 넘었음직한 산뽕나무가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석남사 스님들이 이 산뽕나무의 잎으로 차를 법제해 수행하며 마셨을 것으로 보였지만 지금은 계곡 옆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안은 채 다른 나무들과 힘겨운 생존의 경쟁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숱한 세월에도 마애부처님은 석남사를 찾는 뭇 중생들을 굽어보며 저마다의 소원을 들어주고 있다. 중생무변서원도의 비원이 느껴진다. 

 

안성=여태동 기자 [불교신문 37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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