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문수로 마애석불좌상

 

‘와현마을’ 농토에 앉아 계신 쓸쓸한 부처님

내성천 지류 서천 월호다리 건너
동산골 입구 우측 언덕에 자리해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명 이어오며
화엄불교 융성했던 기록 남은 곳

사찰 흔적 사라지고 예경도 뜸해져
지역 신행단체 관심가져 주었으면…

영주시청에서 문수 방향으로 4km 즈음 떨어진 월호다리를 건너 와현마을 길목 동산골 입구 400여 m를 들어가면 우측 언덕에 ‘영주 문수로 마애석불좌상’이 자리하고 있다.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문수로 1157번길 52. 영주시청에서 문수 방향으로 4km 즈음 떨어진 내성천 지류 서천을 따라 흐르는 월호다리를 건너 와현마을로 들어가는 길목 동산골로 400여 m를 들어가면 우측 언덕에 보호각이 보인다. 이곳에 ‘영주 월호리 마애석불좌상’이 자리하고 있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이곳에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시대 초기로 추정되는 마애불이 자리하고 있다. 영주지역은 불교가 육로를 통해 신라지역으로 들어오는 길목이었다. 그 요충지에 불교유적이 산재해 있다. 영주시 문수는 지역 명칭에서 보듯이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었다. 마애불이 위치한 지역에는 ‘와현마을’이 있다. 이곳 역시 불교적인 색채를 강하게 띠는 지명으로 ‘보현보살이 누워 있는 마을’로 알려져 있다.

바로 인근에는 문수사(일명 방석사)라는 사찰이 있는데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이곳에서 조석예불에 울리는 동종소리는 내성천을 관통해 문수면 관내에 은은하게 울려퍼지고 멀리 평은면 학가산에 위치한 진월사에서도 들을 수 있다. 진월사 역시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어 영주 부석사와 함께 화엄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예로부터 불교세가 강했던 곳에 사찰과 마애불이 자리한 것은 아주 자연스런 결과로 보인다.

1991년 5월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마애석불좌상의 명칭은 ‘영풍 월호리 마애석불좌상’이다. 당시에 마애불이 위치한 지명이 ‘영풍군’이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주소도 새롭게 바뀌어 당시에는 ‘월호2리’ 였는데 새로운 지번으로 바뀌어 이제는 ‘영주 문수로 마애석불좌상’으로 명칭을 변경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50톤은 넘을 것 같은 큼직한 통돌로 된 화강암에 다소곳이 동쪽 면에 앉아 있는 마애부처님이 경건해 보인다. 마애부처님을 새긴 화강암은 드러난 부분의 높이가 150cm 정도이고 가로가 240cm 정도다. 거대한 바위 아랫면을 50cm 가량 띄워 놓고 높이 95cm, 어깨 폭 45cm, 무릎 폭 75cm 크기로 부처님을 새겼다.

안내판에는 “땅바닥에서 50cm 가량 위에서부터 조각되어 마리가 바위 끝에 닿아 있다. 그러나 마애석불좌상 아랫부분에는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았다. 머리는 머리카락을 소라 모양으로 표현하였고, 상투 모양의 육계(肉)는 보이지 않는다. 또한 두 눈과 코, 입은 윤곽이 희미하고 귀는 보이지 않는다. 목은 삼도(三道, 불상의 목 주위에 표현된 3개의 주름으로 윤회의 원인과 결과인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를 의미한다)가 뚜렷하다. 법의는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배로 부드러운 반원형을 이루고 있다. 왼손은 자연스럽게 펴서 배 아랫부분에 대고 있으며, 오른손은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하도록 들어서 오른쪽 위 가슴에 대고 있다. 앉은 모습은 결가부좌 자세이며 두 발의 형태는 뚜렷하다. 불신(佛身) 부위만을 조각하고 여백처리를 무시한 기법이나 세부 표현이 미흡한 점 등로 보아 통일신라 말기 또는 고려초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한다.”

시골 할머니들이나 무속인들이 기도를 하며 얻어 놓은 듯한 천원짜리 지폐가 수북이 쌓여 있다. 특별한 불전함이 비치되어 있지도 않음에도 이름모를 민초들이 이곳을 찾아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서원하고 간절한 기도를 올린 흔적이다.



마애부처님으로 오르는 길에 돌계단을 조성해 놓았다.

영주 문수로 마애석불좌상은 보호각이 큼직하게 설치돼 있어서 오랜 세월동안 마모된 화강암의 부처님을 비교적 잘 보호하고 있는 듯하다. 마애부처님을 충분히 감싸고도 남을 크기와 높이도 충분히 통풍이 잘되고 빗물로부터의 피해도 막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영주 신암리 마애여래삼존불이나 보성 유신리 마애여래좌상처럼 협소한 보호각 보다는 좋아 보였다.

세월의 흔적을 온몸으로 떠안으며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신라-고려-조선을 거쳐 이땅 백성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있는 마애부처님은 이제 그 흔적마저 희미해지고 있다. 하지만 마애부처님이 만났던 수 많은 중생들의 바람과 희망은 풍성한 알곡처럼 켜켜이 쌓여 있는 듯하다.

세월을 비껴가지 못한 마애부처님을 향해 이름모를 불자들은 이곳을 찾아가 예배를 올렸고 또 올릴 것이다. 과거에는 분명 이곳에 사찰이 들어서 있어 왕성한 신행활동이 펼쳐졌겠지만 지금은 시골 한적한 농토가 되어버린 현실이 씁쓸해 보인다.

과거에는 마애불을 찾아 공양을 올리는 신행단체가 많았다. 이들 단체들의 활동이 움츠러든 요즘 지역 신행단체들의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영주=여태동 기자 [불교신문 3736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