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신암리 마애여래삼존상

 

불교유입 길목 천년세월 민초와 ‘동고동락’

불교가 신라에 수용되는 길목에
자리한 사면마애불로 삼존불과
형체만 남아 있는 부처님 남아
나머진 훼손돼 형체 못 알아봐

보호각이 너무 낮고 좁아
보존하는데 어려움 있어 보여

불교가 신라에 수용되는 길목인 영주 내성천 상류 들판 옆에 ‘영주 신암리 마애여래삼존상’이 자리하고 있다.

 

영주시 이산면 신암1리 1127-6. 내성천 상류 들판 옆에 보호각 아래 영주 신암리 마애여래삼존상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이 마애부처님은 1980년 9월16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680호 ‘영주 신암리 마애삼존석불(榮州新岩里磨崖三尊石佛)’로 지정됐다가 2010년 8월25일 지금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마애불이 자리한 이 지역은 불교가 신라에 수용되는 길 중의 한 곳이다. 문명대 한국미술사연구소장은 그의 저서 <한국의 반가사유상>에서 “불교가 신라에 수용되는 길은 세 가지 루트가 있었다고 추정한다. 첫째가 고구려를 통하는 육로인데 죽령을 넘는 영주, 안동 경주루트와 조령을 넘는 상주, 대구, 경주루트로 처음 불교가 들어온 길은 조령 상주 길을 통하여 아도화상이 들어왔지만 죽령을 넘어 영주, 경주로 들어왔다고 알려져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인지 영주지역은 불교유적이 많이 분포돼 있고 오래된 마애불도 상당수 조성돼 있다. 대표적인 마애불이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불을 비롯해 월호리 마애석불좌상,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등 귀중한 마애불이 자리하고 있다.

경상북도에서 경주와 더불어 많은 불교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영주지역은 부석사를 비롯해 천년고찰도 숱하게 자리하고 있는 성보의 보물창고다. 이러한 지역에 곳곳에 자리한 마애부처님은 이 땅에 불교가 어떻게 자리를 잡았는지와 민초들과 호흡했는지를 보여준다. 그 증거 중의 한 곳이 영주 신암리 마애여래삼존상이다.

영주 신암리 마애여래삼존상은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조성된 성보다. 안내판에 의하면 “삼국시대 말기 혹은 통일신라시대 초기의 불상으로 본래 바위의 네 면에 모두 불상이 새겨져 있다. 나머지 세 면의 불상은 모두 닳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으나, 이 삼존불상만은 뚜렷하게 남아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현재 남쪽으로 향하고 있는 삼존불상과 더불어 서쪽 면에도 마애불의 형태는 남아 있다. 북쪽과 동쪽면은 아무런 형태를 찾아보기 힘들다. 남쪽에 조성돼 있는 삼존불상 역시 세월의 무게를 견디기는 어려운 듯 많이 훼손돼 있는 상태다.

결가부좌한 본존불이 가운데 앉아 있고, 양 옆에는 본존불을 모시는 보살이 서 있다. 본존불 높이는 128cm이고, 본존불을 모시는 협시보살의 높이는 좌우 각각 108cm와 112cm이다. 본존불은 민머리에 얼굴이 갸름하며 어깨가 딱 벌어져 있다. 양 어깨를 덮은 법의는 앞가슴 부분이 유(U)자 형으로 내려와 있으며 옷 법의를 맨 띠 매듭이 표현되어 있다.

양 옆에서 본존불을 모시는 보살은 불꽃무늬가 새겨진 두광(頭光, 부처님의 존귀함을 표현한 상징으로 머리 위에 장식한 것)을 지니고 있다. 머리에는 관을 썼는데 체구에 비해 얼굴이 크고 어깨가 좁으며 옷자락이 묵직하다. 나머지 면에 조성된 마애불 역시 이와 비슷한 형태가 아닐까 추측된다. 작지만 전체적으로 양감이 풍부하면서도 부드러운 표현을 보이고 있는 이러한 양식은 7세기 신라의 대표적인 사방불상의 모습으로 평가된다.

마애불이 조성됐을 당시 이 마애불은 큰 사찰 안에 자리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내성천 상류를 끼고 불교가 유입되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백성들의 귀의처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마애불을 조성한 시주자는 지역의 토호세력이나 대부호였을 가능성이 높다. 조성인연이 어떠했든 그 부처님을 향한 예경은 지위고하와 빈부차이에 상관없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남쪽방향의 삼존상과 더불어 서쪽방향에 형체를 알 수 없는 마애불이 있다.


세월이 지나 풍화와 수난을 겪은 마애부처님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이지만 일부 남아 있는 모습으로 보아도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의 부처님임은 분명하다. 국도 옆에 낮은 보호각 아래 자리한 마애부처님으로 천년세월 동안 하늘을 이고 인고의 세월을 지켜오고 있지만 사찰의 흔적은 사라지고 드넓은 들판 옆에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간혹 이곳을 찾아 예경을 한 흔적은 보이는데 무속인이나 지역민이 초와 향, 그리고 몇 장의 천원짜리 지폐 몇 장이 보호각 안에 흩어져 있다.

마애불을 취재하다보면 아쉬운 점이 있는데 보호각이 너무 낮고 좁아 제대로 보존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어떤 마애불은 보호각을 세워 놓았지만 오히려 원래의 모습이 사라져가는 역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영주 신암리 마애여래삼존상 역시 보물로 지정돼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지만 보호각이 너무나 협소해 보존대책을 숙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적한 들판에 가을 곡식이 알알이 여물어가는 계절, 마애부처님은 아무 말없이 벌판을 바라보려하지만 옥문(獄門)같이 설치돼 있는 보호각에 막혀 시야는 가려진 듯 애달파 보인다. 마애불에 대한 보호각 설치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사료된다.

영주=여태동 기자 [불교신문 37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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