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최(訥催)
눌최(訥崔)는 사량(沙梁) 사람으로, 대나마(大奈麻) 도비(都非)의 아들이다.
진평왕(眞平王) 건복(建福) 41년 갑신(甲申, 624) 겨울 10월에 백제(百濟)가 대거 침입해 왔다. 군사를 나눠 속함(速含)·앵잠(櫻岑)·기잠(歧岑)·봉잠(烽岑)·기현(旗懸)·혈책(穴柵) 등 여섯 성을 포위하여 공격하였다.
왕이 상주(上州)·하주(下州)·귀당(貴幢)·법당(法幢)·서당(誓幢) 등 5군(軍)에게 가서 구하도록 하였다. 이미 도착하여 백제(百濟) 군사의 진영이 당당함을 보고 예봉을 당해낼 수 없을 것 같아, 머뭇거리며 나아가지 못하였다.
어떤 사람이 의견을 내기를,
“대왕께서 5군을 여러 장군에게 맡겼으니, 국가의 존망이 이 한 싸움에 달렸다. 병가(兵家)의 말에, ‘승리가 보이면 나아가고, 어려울 것 같으면 물러나라.’ 고 하였다. 지금 강적이 앞에 있으니, 계략을 쓰지 않고 바로 나갔다가 만일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고 하였다. 장군과 보좌관들이 모두 그렇다고 여겼으나 이미 명령을 받아 군사를 출동하였으므로, 그냥 돌아갈 수도 없었다.
이보다 앞서, 국가에서 노진(奴珍) 등 여섯 성을 쌓으려고 하였으나 겨를이 없었는데, 마침내 그 땅에 성을 쌓는 것을 마치고 돌아왔다.
이에 백제(百濟)의 침공이 더욱 급박해져 속함(速含)·기잠(歧岑)·혈책(穴柵)의 세 성이 혹은 함락되거나 혹은 항복하였다. 눌최(訥崔)는 세 성으로 굳게 지키다가, 5군이 구원하지 않고 돌아간다는 소식을 듣고 분개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병졸에게 이르기를,
“봄날의 따뜻한 기운에는 초목이 모두 꽃을 피우지만, 추위가 오면 오직 소나무와 잣나무만이 늦게 낙엽진다. 지금 외로운 성에 구원이 없어, 날로 대단히 위험해지고 있다. 지금이 진실로 뜻있는 병사와 의로운 사람이 절조를 다 바쳐 이름을 날릴 수 있는 때이다. 너희들은 장차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병졸들이 눈물을 뿌리며,
“감히 죽음을 아끼지 않고 오직 명을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성이 장차 함락됨에 미치자 군사들이 죽어 몇 사람밖에 남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결심하고 싸워 구차히 살아 보겠다는 마음이 없었다.
눌최(訥崔)에게 한 명의 종(奴)이 있었는데, 힘이 세고 활을 잘 쏘았다. 어떤 사람이 일찍이 말하기를,
“소인(小人)에게 특이한 재주가 있으면 해롭지 않은 경우가 드무니, 이 종(奴)을 마땅히 멀리하라!”고 하였으나, 눌최(訥崔)는 듣지 않았다.
이때에 성이 함락되어 적이 들어오자, 종(奴)은 활을 당기어 화살을 끼워 눌최(訥崔) 앞에서 쏘는데 빗나가는 것이 없었다. 적이 두려워하여 앞으로 나오지 못하다가, 한 명의 적군이 뒤에서 나와 도끼로 눌최(訥崔)를 쳐 쓰러졌다. 종(奴)이 돌아서서 싸우다가 함께 죽었다.
왕이 이 소식을 듣고 비통해 하고, 눌최(訥崔)에게 급찬(級湌)의 관등을 추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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