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다네 석굴

 

아치 중심에 조각된 춤추는 인물상 생기 돌아

바자석굴과 구조 유사하지만
기원전 1세기 후반 조성 추정
보존상태 매우 좋지 않음에도
사원 정면 모습 아름답고 매력적

 

콘다네 석굴은 보존 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으로 보이는데 특히 정면이 아름다운 모습이다. 사진은 석굴 입구 모습. 사진=문명대  


콘다네는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주(州) 푸나의 서북쪽에 위치한 카르자트 기차역에서 약 80km 떨어진 곳에 있는 석굴 사원이다. 석굴 사원의 구조는 바자석굴과 유사하지만 외벽의 인물상에는 자유로운 움직임이 있어 기원전 1세기 후반의 것으로 추정된다. 바로 옆의 비하라 석굴도 같은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광장 둘레에 열주(列柱)가 세워진 형식이다. 그밖에 몇 개의 비하라 굴이 있으나 현재는 파손이 심한 상태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콘다네 석굴이 베드사 석굴보다 이전 시대에 조성된 점이며 콘디 비테 동굴(Kondivite Caves) 또는 마하칼리 동굴(Mahakali Caves)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시기는 바자석굴이 조성된 시기와 비슷하다. 그러나 바자 석굴에 비해 보존 상태는 매우 좋지 않은데, 이것은 자연적인 현상으로 인해 당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석굴 사원의 모든 기둥은 부러진 상태이다. 사원의 붙어있는 열 개의 기둥 중 윗부분의 일부만이 현존하고 있고 다른 모든 기둥은 사라졌다. 기단의 몇 부분은 그대로 남아있고 부러진 기둥과 손상된 스투파는 사원이 손실되면서 사라졌다.

차이티야 석굴의 깊이는 21m이고, 너비는 8.25m이다. 기둥의 주랑은 사원 중심에 있는 회중석을 두 개의 통로로 나누고 있다. 33개의 기둥은 사원의 천장을 지지하고 있고, 그 중 31개는 8각형의 형태이다. 정면의 두 개의 기둥은 장방형의 모양이다. 8각의 각 모서리는 투박하게 표현되어 있다. 왼쪽의 6번째 기둥에는 불교를 상징하는 조각이 새겨져 있고 왼쪽의 6번째 기둥과 오른쪽의 4번째 기둥의 일부분은 유사하다. 왼쪽의 5번째 혹은 6번째 기둥에는 스투파가 조각되어 있다. 다른 22개의 기둥에서도 유사하게 볼 수 있지만 매우 많이 손실된 상태이다. 하르미카는 손상되지 않았지만 윗면의 일부분은 많이 손상되어 있다. 이 스투파의 지름은 3.25m다.

정교하게 조각된 춤추는 조각상. 문명대  

 

본당은 아치형의 천장이며, 서까래로 대어둔 목재는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을 고정하고 있던 홈이 남아있다. 복도 부분의 천장은 아치형으로 되어 있다. 보존이 매우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원은 매우 매력적으로 보이는데 특히 정면이 아름다운 모습이다. 주된 장식은 가파른 사원의 아치형 문이나 베다 음악단이 장식된 점, 바위 표면에 장식된 부자연스러운 아치 형태들이다.

차이티야 아치의 중심에 조각된 춤추는 인물상들은 생기를 부여해 주고 있다. 왼쪽의 모서리에는 이 구획의 숫자가 새겨져 있다. 창의 왼쪽 모서리의 조각에는 남성상이 있는데, 첫 번째 부분에는 미소를 짓고 춤을 추는 남자가 조각되어 있다. 그는 머리와 함께 몸 전체를 우아하게 왼쪽을 향해 뻗고 있는 모습이다. 왼 손을 허리에 올려두고 오른손은 팔꿈치를 구부려 옷을 잡고 있는 모습이다.

춤추는 연인상은 남성과 여성이 열정적으로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여성 무용수가 유혹하고 있는 모습으로 우아하게 오른쪽 다리를 구부리고 허벅지 부분에 팔꿈치를 구부린 오른손을 배치하고 있다.

왼손은 들어 올려 남성 무용수의 머리에 올려져 있다. 몸은 왼쪽 다리를 구부리고 오른쪽으로 틀어져 있고 남자 무용수는 반대로 왼쪽으로 틀어 두 무용수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 남성 무용수의 머리는 여성을 향해 있고 손은 허리에 감고 있다. 두 연인은 즐겁게 춤을 추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다른 춤추는 연인상은 연인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여성은 오른쪽에 있고 풍만한 몸을 흔들며 춤을 추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오른쪽 손은 남성의 웃옷을 잡고 있고 왼손은 구부려서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 두었다. 남성은 여성의 머리를 만지고 있는 모습이며 오른손으로는 지팡이를 잡고 있다. 남성은 오른쪽 다리를 구부리고 몸 전체가 왼쪽으로 치우쳐 있는 모습이다.

활을 든 남성상과 두 명의 여성상도 있는데, 남성이 가운데 위치해 있는데 왼쪽의 여성에게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는 왼쪽으로 고개를 틀어 자신의 파트너를 쳐다보고 있다. 오른손에는 땅에 닿는 매우 긴 길이의 활을 주고 있고 오른쪽 다리는 구부리고 있다. 좌측의 여성은 남성을 향해 몸을 틀고 있다. 오른손은 파트너의 옷을 잡고 왼 손은 구부려서 파트너의 허리를 잡고 있으며 머리는 뒤쪽을 향하고 있다. 우측의 여성은 남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으로 왼손은 그를 만지고 있고 오른손은 자신의 허리에 올려 두었다.

이 조각들은 작지만 잘 만들어진 조각들이다. 이들은 칸헤리, 쿤다, 카롤라 석굴과 유사하게 나타났는데 모든 석굴 조각들의 양식이 많은 유사점을 보인다.

오른쪽에는 기원전2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브라흐미 비문이 새겨져 있다. “Kanhasa Amtevasiva Balakena Katam”로 이것은 번역하면 “발라카(Balaka)에 의해 카나(또는 크리슈나)의 눈동자”를 의미한다. 비하라 석굴은 사원 좌측의 높은 곳에 비하라 석굴이 위치하고 있다. 여기에는 매우 손상되어 있는 베란다가 존재하고 있는데 이는 5개의 팔각기둥을 지지해 주고 있다. 비하라 석굴은 17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베란다의 길이는 8m이고 폭은 2.1m이다. 베란다의 오른쪽 벽에는 차이티야 석굴 안쪽의 스투파가 조각되어 있다.

석굴 외부 전경. 문명대

 
홀 자체는 길이 11.2m, 폭 8.72m이다. 여기에는 1.1m 떨어진 곳에 15개의 기둥이 있고 안쪽에서 1.7m인 부분에 옆면의 벽이 있다. 기둥의 상단은 사각형인데 비해 하단으로 갈수록 8각형이 되어 간다. 이러한 기둥의 기준점은 현재 사라져 알 수가 없다. 본래는 대략 30개 정도의 기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대들보 위에 지지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통로는 엘로라 석굴의 11굴과 12굴처럼 두 갈래로 나누어지는데 규모는 그만큼 크지 않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여섯 개의 대들보는 본래 네 개의 기둥이나 두 개의 벽기둥을 지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비하라 석굴은 왼쪽으로 5개의 방과 뒤쪽으로 6개, 오른쪽 옆으로 6개의 방이 있다. 뒤쪽 벽의 6개의 방과 오른쪽 방중에 첫 번째만이 스님들이 사용할 수 있게 돌로 만들어진 침대가 설치되어 있다.

돌로 조각된 침대는 뒤쪽 방의 형태와 다른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첫 번째부터 세 번째까지 방은 입구의 좌측에 의자가 설치되어 있고 그 다음 세 개의 방에는 입구의 우측에 설치되어 있다. 퍼거슨과 제임스 버제스는 18개의 방 모두에 스님들의 침대가 있어 그곳에 스님들이 머물렀다고 주장했지만 현재는 오직 7개의 방에만 안쪽에 침대가 조각되어 있다. 모든 방의 문은 차이티야의 아치형 문처럼 돌출되어 있었다. 또한 모든 문들은 철도처럼 연결되어 있다. 콘다네 석굴은 인도 석굴사원의 초기 양식을 보여준다. 초기불교인 소승불교 시대의 양식으로 차이티야 석굴과 비하라 석굴이 함께 조성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석굴은 소승불교 석굴 중 몇 가지 남지 않은 차이티야 석굴의 중요한 예 중 하나로 들 수 있다. 또한 바자 석굴과 유사한 점이 많은 것으로 보아 초기 석굴을 알 수 있는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문무왕 동국대 와이즈캠퍼스 외래교수 [불교신문37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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