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다양한 보(樑)

보는 놓이는 위치에 따라 대들보(大樑), 중보(中樑)·종보(宗樑), 충량(衝樑), 툇보(退樑), 소꼬리보(牛尾樑, 우미량), 귀보, 그리고 홍예보(虹霓樑) 등이 있다. 이해를 돕자면, 건물의 앞뒤를 연결하는 큰 보는 대들보이며, 대들보 위에 올라가는 중보와 종보, 건물의 좌우측으로 대들보에서 연결되는 충량과 소꼬리보, 툇마루 위에 툇보, 아치형의 홍예보가 있는데, 이들은 각기 다른 역할을 분담하여 지붕 무게를 분산해 준다. 또한 이 모든 보들의 명칭과는 상관없이 가공법에 따라 단면에서 모서리 부분을 굴려 깎아 다듬은 보와 보의 단면을 항아리처럼 깎은 항아리 보도 있다.

 

이 부재들을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모두 대들보에서 파생되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러한 구조들에는 각기 다른 여러 이야기가 있고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묻어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대들보, 가장 상징적인 보

보 가운데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가장 상징적인 것은 ‘대량’, 즉 ‘대들보’이다. 대들보는 수평부재로서 건물의 중심부에 위치하는데, 위로는 중보와 종보를 받치고 아래로는 수직부재인 기둥을 통해 무게를 분산하는 중요한 부재다. 즉 대들보는 한옥건축물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대들보와 관련하여 동량지재(棟梁之材, 대들보가 될 만한 훌륭한 인재)라는 사자성어나, 가정에서도 가장 또 는 장손을 일컬어 대들보에 비유하는 것, ‘대들보가 무너지면 집안이 주저앉는다’는 속담 등이 있을 정도이다. 이렇듯 대들보는 한옥에 익숙하지 않은 현대인에게도 친숙한 구조물이다. 대들보 위로는 중보 또는 종보가 있다. 종보는 말 그대로 맨 위의 마지막 보를 뜻하고, 중보는 집의 규모가 클 경우 대들보와 종보 사이에 있는 중간보를 말한다. 집이 작은 3량 집에는 중보나 종보 없이 대들보 위에서 종도리가 형성 돼 마감이 된다.

 

집짓는 일 중 대들보를 치목할 때 목수들은 특히 심혈을 기울인다. 보의 몸통 4면을 대패로 다듬고 면을 부드럽게 잡고, 굴리고, 소매걷이, 훌치기 등의 온갖 기법과 정성을 들이는 것이다. 여기에서 보의 뺄목 보머리를 살펴보면 그 형상의 종류가 여러 형태를 지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집의 크기, 부재의 굵기와 길이에 따라 달라지지만 일반적인 오량집의 경우 대들보의 보머리는 밖으로 약1자 정도가 빠져나와 거기에 초각을 하거나 장식을 하여 부재를 오려내 멋을 낸다. 집의 수명하고는 전혀 상관없지만 집주인의 종교나 목수의 예술적 취향에 따라 보머리 모양의 차이가 생긴다. 특이한 보머리의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경기도 화성에 용주사 사찰의 보머리가 있다. 이곳 보머리들은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거나 잉어를 물고 있는 형상을 보여준다. 정조가 꿈에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것을 보고 지은 용주사답게 곳곳의 보머리에 용이 조각되어 있다.

 

보와 함께하는 부재가 있는데 이 부재가 보아지다. 보아지는 지붕의 무게를 분산하는 역할을 한다. 지붕의 무게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이다. 지붕의 무게는 30평의 가옥일 경우 적심과 기와무게를 합쳐 약 70~80톤 정도에 이른다. 이 무게를 보 혼자서 감당하기란 힘들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기둥이 더 힘들게 될 것이다. 보아지가 없다면 기둥에 무리가 가서 변형이 생기고, 심하면 기둥이 갈라져 찢어질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여기에도 그림을 그리고 초각을 하여 건축 구조와 예술을 접목하기도 하였다.

 

선조의 과학과 미가 담겨져 있는 여러 가지 보

이 시대에 지어지는 집의 80% 이상이 오량집이다. 오량집이란 도리 5개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오량집이라 불리는데, 여기에서는 대들보 위에 종보(마룻보)가 올라타 마룻도리가 형성되어 마감이 되는 식의 구조를 보여준다.

 

종보는 지붕의 대공을 통해 무게를 가장 먼저 받아 대들보로 전달하는 부재이다. 종보는 대들보 길이를 나누어 동자주를 놓은 후에 짠다. 대들보 길이를 3분의 1로 나누어 동자주를 놓고 종보를 짜게 되면 3분변작법이요, 4분의 1로 나누면 4분변작법이 되는 정교하고 과학적인 구조를 보여준다.

 

측량, 측보, 충량보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충량은 대들보에서 좌, 우 측면 기둥 위로 연결하는데 측면 칸이 2칸 이상인 기둥에 연결되고 건물 크기에 따라 3개 정도까지도 걸려 건물의 균형과 무게를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는 부재이다. 다른 부재와 다르게 대들보 쪽으로 화려한 용 조각을 많이 하는데, 이는 용이 건물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종교적이고 또는 건축주의 염원이 깃든 것이다.

 

충량과 거의 같은 역할을 하는 우미량은 보에서 도리 쪽으로 걸침보이고 도리 밑에는 기둥이 없다. 그 자리에 기둥이 있다면 충량이 되는 것이다.

 

툇보(퇴량, 退樑)는 1고주4량 이상 건물에서 대들보 밖으로 빠져나온 보를 칭한다. 거기에 있는 마루를 툇마루라 부르고 그 공간을 툇간이라 한다.

 

둘 이상의 재목(材木)을 합쳐서 만든 보를 맞보(合梁)라 한다. 맞보는 문(門)이나 문루(門樓)같은 건물에서 주로 볼 수 있다. 맞보를 부부금슬 보라고도 불렀는데, 아마도 중심에서 합쳐지는 구조 때문에 가정의 중심을 이루는 부부가 하나가 되라는 바라는 마음에서 맞보를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한편, 무지개 형태를 띤 보를 홍예보라 부른다. 즉 아치형을 지니는 보들을 홍예보라고 일컫는 것이다. 사진 04의 홍예보를 자세히 보면 종보에서 대들보로 아치를 그리면서 양쪽으로 대들보에 꽂혀 완전한 무지개를 만들어 낸다. 가히 훌륭하다 아니 할 수 없는 건축물로서, 이것도 우리 한옥에서만 볼 수 있는 예술작품이다.

 

여러 보의 종류들을 살펴보면 우리 조상들이 만든 부재 하나하나에 과학과 미가 담겨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과학적이고 아름답고 우람한 우리의 대들보와 건물 위쪽과 옆쪽 등 요소요소에 숨어서 자기 역할을 하는 보들. 이렇듯 작고 부수적인 구조에서 의미를 드러내는 훌륭하고 아름다운 한옥에 다시 한 번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글. 이재균 (한옥연구소 소장)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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