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보문화재사찰 기림사, 숨겨진 이야기를 밝히다

 

거북이가 물 마시고, 최초의 한글 탱화가 있던 사찰

 

4월 30일은 석가탄신일이었다. 원래라면 사찰에서는 관련 행사가 진행되었어야 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일정이 한 달 뒤인 5월 30일로 밀려지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찰에는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다. 대표적으로 경주 기림사에서는 꽤 더운 날씨임에도 어른부터 아이까지 마스크를 착용하고 사회적 거리를 두며 관람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기림사는 보물 5건, 시도유형문화재 2건, 문화재자료 3건을 보유하고 있는 사찰이지만, 경주 기림사 부주지 영송스님은 지정된 문화재 말고도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기림사에 담겨있다고 말한다.

 

 문화재자료 제252호 "기림사 약사전" 내부 헌다벽화 ⓒ CPN문화재TV

 

기림사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2000년 전 인도에서 광유스님이라는 분이 오셔서 터전을 잡고 개사를 하셨는데 이름이 '임정사'였습니다. 동남해안 일대의 사찰을 인도에서 직접 경전을 가지고 건너오거나 석탑을 가지고 건너와서 지은 절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기림사 사적기에는 선덕여왕 때 이름을 기림사라고 바꾸었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특히 문화재자료 제252호 기림사 약사전 좌측내부에는 급수봉다라고 하는 헌다(차를 바친다)문화가 형성되었다는 증거가 담긴 벽화가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두드러지지 않고 있지만 이를 통해 기림사가 한국 차문화의 발상지로서 활동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림사 문화재 가람 배치, 거북 구 모양으로 형성되어 있다 ⓒ CPN문화재TV

 

문화재들을 위에서 바라보면 거북이가 보인다고요
​"보물 제833호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위에서 바라보면 거북 구(龜) 모양으로 문화재 배치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사적기에 나와 있는 내용에 따르면 기림사의 산에서 용이 나는 것 같고 봉황이 춤을 추는 형태였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거기에 신령스러운 거북이가 물을 마시는 형국과 같다는 언급을 통해서 가람배치를 해 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거북이가 물을 마시는 것으로만 끝내고 물에 아예 들어가지 못하도록 눌러주는 역할을 했던 가람도 있었습니다. 터만 남아있는 목탑지입니다. 사적기에는 삼청전이었다고 하는데요. 사적기가 1700년대에 작성된 것이니 적어도 그 시기에는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거기에 전광여래(가석불, 석가모니 이전의 부처)의 사리와 함께 3층 크기의 목탑이 설치되어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복원을 위해 정확한 조사를 준비 중인 상황입니다."

 

 약사전 내부에 봉안되었었다고 전해지는 "안락국태자전변상도" ⓒ 경주 기림사 제공

 

최초의 한글이 기록된 탱화가 있었다고요.
"사적기에 따르면 약사전 내부에는 사천왕이 그려진 탱화 1점과 사라수왕(경주 기림사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진 인도 쪽의 왕, 약사전 헌다벽화에도 묘사되어 있다)의 탱화가 있었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두 유물 모두 기림사에 없는 상황인데, 사천왕 탱화는 행방을 알 수 없고 사라수탱화는 일본 고지현 청산문고라는 곳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사라수왕이 그려진 탱화는 급수봉다(헌다)뿐만 아니라 오는 과정에서 부인과도 이별하는 과정이 그려져 있으며, 안락국태자가 다시 건너와서 상봉하는 과정이 모두 그려져 있는 변상도(종교화)입니다. '안락국태자전변상도'라고 보통 칭합니다. 이 변상도에 최초의 한글이 쓰여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즉, 사라수왕탱화는 기림사의 창건설화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곁에 없으나 기림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도 중요한 유물이 기림사에 있다. 이런 흥미로운 사실은 문화재 안내판으로는 전혀 담겨있지 않았으며, 관계자들에게 인터뷰를 하지 않은 이상 알 수 없었던 이야기다.

기림사의 숨겨진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따스한 봄날, 기림사에 화려하게 피어난 꽃들과 흐르는 물길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마이뉴스 임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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