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뜸자리, 마루
마루는 가장 높은 자리를 의미하는 말이다. 산꼭대기를 ‘산마루’라고 하고 지붕의 제일 높은 곳을 ‘용마루’라고 한다. ‘마루’의 어원이 되는 알타이어 ‘말’은 꼭대기와 종주(宗主)의 뜻을 지닌 우리의 옛말로서, 달리는 말(馬), 말(言), 마을(理)과 관련 있는 뜻이었다. 즉 일(事)과 만물(萬物)의 으뜸자리라는 뜻이다.
한옥에 있어서 마루는 단지 나무판으로 된 물체를 뜻하기보다는 좀더 풍부하고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다. 신라시대 부족회의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왕을 ‘마립간(마루한, 높은 왕)’이라 하고, 그가 앉은 자리는 ‘마루’라고 불리게 된다. 이 뜻은 한반도에만 국한된것이 아니라 대륙까지도 이어진다. 몽골의 전통가옥인 게르(Ger)에서 문과 마주하는 가장 높은 자리를 ‘허이마르’라고 한다. 왼쪽구역은 신이 보호하는 남성의 구역이고 오른쪽은 태양이 보호하는 여성구역으로 구분되는데 가장 성스러운 허이마르 지역은 불상이 놓이거나 악기 마두금, 주인의 개인무기 등 귀중한 것들이 놓이게 된다. 여기서 ‘마르(Шал)’는 ‘마루’와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
기술과 리듬을 지닌 말(馬)과 이념과 사상을 표현하는 말(言), 그리고 커뮤니티의 중심으로서 ‘아랫말’, ‘웃말’처럼 쓰이는 말(里)이 한옥을 결정하는 환경적인 중심코드라고 한다면, 실제로 한옥에 사는 한 집안의 마루는 가족들의 모든 일이 벌어지고 중재되는 중심공간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루에서는 집안의 가장 중요한 행사인 제례의식이 행해지거나 중요한 손님을 맞이하는 신성한 장소로 사용된다. 항상 성주신을 모시는 자리고, 제례행사가 진행되는 경우 제삿날 2~3일 전부터는 제사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가 당일에는 도포를 입은 집안 어르신들이 도열하여 제례를 행하는데, 새로 집을 짓게되어 대청을 계획할 때 그 집안의 형제의 수를 감안하여 짓는다. 즉 제사를 지낼 때 한 항렬이 일렬로 설 수 있도록 계산측량하는 것을 보면 ‘마루’의 위상을 알 수 있다.
온돌과 마루의 복합구조
한옥의 주요한 특징으로 이야기되는 것이 온돌과 마루의 복합구조이다. 이 구조는 마루널 또는 청판이라고 하는 나무널판으로 구성된 바닥과 땅을 파서 고래를 놓고 넙적한 돌판을 덮어 바닥을 구성한 온돌이 같은 높이에서 이루어진 형태를 말한다.
이 구조는 남방 문화와 북방 문화의 결합이 낳은 산물이다. 즉 고온다습한 남방지역에서 습기를 피하기 위해 바닥을 지면에서 높게 설치하던 풍습과 북방에서 추위를 피하기 위한 바닥 난방 시스템 이 결합된 것이다. 마루에 사용하는 목재는 충분히 건조가 되어야 하는데 2년 이상 자연 건조된 목재를 켜서 마루판을 짜맞춘다. 그런 뒤에도 3개월 뒤, 6개월 뒤, 그러고도 2년까지 살펴봐주어야 틈이 벌어지지 않고 오래 쓸수 있다.
마루는 틀을 짜는 방식과 위치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된다. 장마루나 우물마루는 마루 틀을 짜는 방식에 따른 분류이고, 다락마루, 대청마루, 누마루, 툇마루, 쪽마루 등은 위치에 따른 분류이다. 그밖에 방 안에 마루를 까는 청방이 있고, 여름이면 마당에 내어놓고 많이 쓰는 평상도 마루의 한 종류라 하겠다.
장마루는 판재를 귀틀에 올려놓고 잇는 방식으로 다락이나 수장 공간, 쪽마루에 용되었다. 우물마루는 대청이나 마루간의 전후 기둥에 장귀틀을 건너지르고 그 사이에 동귀틀을 가로 걸어 사이사이에 마루널을 끼워서 만든다. 이러한 방식은 2층이나 다락, 정자 등에도 널리 쓰이는데 다른 나라에서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정도로 독특한 우리만의 방식이다. 짜임이 정교해서 우물마루를 잘 짜는 목수는 품값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온돌과 마루의 복합구조
나무는 우주의 시간을 담고 있다. 지구의 어떤 자리에 머물지만 황도를 따라 비춰지는 태양에너지를 받아 생장점을 틔워 자라면허 그 시간들을 기억하게 된다. 자전축의 기울기에 따른 계절의 변화가 그 시간의 기억을 낳는다. 즉 봄에는 부름켜의 왕성한 세포분열로 빠르게 성장하고, 가을에는 조밀하고 단단하게 성장한다. 이런 과정에서 우주의 변화를 제 몸에 담고 그것을 우리는 ‘목리(木理)’라고 부른다.
목수의 농담 중에 ‘여자 속과 나무 속은 귀신도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목리, 즉 나무의 이치를 이해하고 적재적소에 사용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특히 사계절이 분명하고 산악지형인 한국에서 자란 나무는 열대우림에서 곧은 결로 자란 이웃나라 일본의 나무하고는 그 성질이 다르다. 서돌(기둥, 보, 도리 등 구조를 담당하는 한옥부재)은 지붕에 흙과 기와의 짐을 실어 기둥이 걸어 나가지 않게 연하중으로 눌러서 나무의 성질을 잡지만, 문얼굴이나 수장재는 목리를 감안하여 방향과 배치를 잘 잡아야 한다. 미래를 예측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우물마루를 틈 없이 짜맞추고 오랜 세월을 견디게 하려면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다. 나무의 수축과 휨을 최소화하고 교정할 수 있는 기술들이 포함되어 있다. 장귀틀을 두르고 동귀틀을 끼워 그 사이에 청판을 차례대로 끼워 넣음으로 우물마루를 완성하게 되는데, 동귀틀을 끼울 때 평행으로 하지 않고 사다리꼴로 끼워 넣음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축된 청판을 교정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은 시간을 다루는 기술이다. 즉 우주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을 대칭적으로 마주하여 배치하는 것이다.
내부와 외부의 전이공간
마루 중에 대청마루는 집의 중심이면서 모든 동선이 거쳐 가는 허브 같은 공간으로서 가장 넓은 공간이기도 하다. 안방과 건넌방, 사랑방과 누마루, 마당 사이의 매개공간이자 완충공간이었다. 집의 광장이라고 할까.
날씨가 더워지면 안방에서 이루어지던 식사가 주로 대청에서 행해졌으며 취침도 마루에서 하였다. 취침, 노동, 여가, 독서활동 등 일상생활의 축이 되는 공간이자 접객, 연회 등 비일상 생활이 필요할 때는 비워진 공간으로서 사용되었다.
지역에 따라 대청의 문 설치 여부는 달랐지만 앞과 뒤를 모두 터놓으면 뒷마당의 찬 기운이 대청으로 밀려 와 더욱 시원하게 여름을 날 수 있다. 바람이 마루에 들어오듯이 사랑마루는 외부인들도 자연스럽게 마루에 앉을 수 있다. 지나던 길손이 잠시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쉬어갈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준다. 마루는 전이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방들을 분리하면서도 경계 짓고, 그러면서도 다시 연결하기 때문이다. 즉 방의 확장으로 사용되면서 감각되고, 내부를 향한 외부의 확장으로도 인식된다.
해지는 서산의 기억이 마루라는 장치를 통해서 세월이 지날수록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글. 조전환 (이연한옥 대표)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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